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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Jan 13. 2020

TMI를 멈춰주세요

훅 치고 들어오는 공격에 어지러워 쓰는 글 

 

팀에 사람이 새로 들어왔다. 회사가 바쁜 시기에 사람이 바뀌게 되면서 맡은 업무와 더불어, 신입 직원 적응에도 신경 써야 해서 정말이지 정신없는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날도 그런 하루였고, 대표님이 나에게 잠시 신입 직원과 함께 차 한잔 하자며 콜을 하셨다. 10분이면 된다고. 마지못해 알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면서도 내키지가 않았다. 대표님이 10분만 내 달라 하면 보통 1시간을 예상해야 했으니까. 저는 그 시간에 그냥 일하는 게 좋습니다만... 늘 그렇듯이, 마음과는 다르게 얌전히 대표실로 들어섰다.  



 참고로 우리 대표님은 새로 직원이 들어오면 한동안 굉장히 들떠계시고 그게 티가 나는 분이다. 뭐, 이거야 당연하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우리같이 작은 회사는 어쨌든 활력이 도니까. 기대되는 바가 크시겠지. 그래서인지 이 시기엔 평소에 안 하던 행동들을 많이 하신다. 전에는 신입이 들어오자 갑자기 집에서 떡국 한 솥을 끓여 오셔서, 모여 앉아 함께 떡국을 먹은 적이 있고...꼬치용 어묵 수십 개를 댁에서 가져오셔서 회사에서 어묵탕을 끓인 적도 있다. (다시 생각해도, 무슨 의민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제는 외출 갔다 돌아오시는 길에 무려 빵을 한가득 사서 오셨더라. 난데없는 간식 어택에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이 티타임이 어떤 자리인지를 잘 알고 있다. 이 회사의 고인물로 있는 동안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겠는가. 며칠 동안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도 궁금하실 테고 회사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주고 싶으실 거고. 특히 이번 신입 직원은 경력직원이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거다. 

역시 10분은 무리겠지. 칼퇴에 대한 마음은 대표실에 들어서며 고이 접어두었다. 

예상대로의 대화가 흘러갔다. 나도 참, 이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길긴 길었는지, 대표님의 히스토리와 함께 다녀온 추억여행이 조금 재미있고 말았다! 그래. 어차피 칼퇴는 물 건너갔는데 어쨌거나 대화가 즐거웠으니 다행이지 하면서 자리가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는데... 갑자기 대표님의 마지막 말이 훅 치고 들어왔다. 



-우리 안개 팀장은 회사 앞에 저쪽 동네 살아요. 저기가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서 비싼 동넨데...



 응?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여기 누구 제가 사는 동네 재개발하는지 궁금해하신 분?

옆에 그 얘길 들은 직원은 그냥 아 그렇구나. 하는 표정이었지만 내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방심했다. 그래 우리 대표님은 이런 얘기하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시는 분이었지. 

그리고 이어서 더 강한 어퍼컷이 들어왔다.



-거기다 안개 팀장 명의로 되어있는 거야.

-네? 아닌데요. 엄마 명읜데요.

-그게 그거지 뭐. 아, 다른 데 갖고 있다고 그랬나? 

-아니. 대표님, 그 얘길 지금 왜 하세요...너무 TMI잖아요.



 글로 쓰면서도 TMI(Too Much Information)도 이런 TMI가 없겠다 싶을 정도라 민망하고 망측스럽다. 전부터 내가 사는 집이 누구 명의인지 몇 번을 여쭤보셔서, 굳이 엄마 집에 세 들어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친절히 몇 번을 말씀드렸건만. 저렇게 또 나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루머를 생성해내신다. 이 대단한 걸 하고야 마신다. 



정말 대단하신 TMI 선배님, 내 속을 뒤집어 놓으셨다!



 이런 얘길 하면 누군가는 아니 뭐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어떠냐 할 수도 있겠지만은 말했듯이 나는 이 회사의 고인 물. 대표님의 TMI, 게다가 저런 식으로 사실도 아닌 TMI로 인한 피해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란 말이다. 

저번에는 회사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부장님이 갑자기 나에게 "강남 출신이라며. 듣기론 회사를 취미로 다니는 거라던데...?"라고 하셔서 얼마나 황당했는지. 졸업한 고등학교가 강남 맨 끝자락에 있기는 했으나 그걸 가지고 내 스스로 강남 출신이라는 말을 한 적 없다. 사실 요새 어디 '출신'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지 않나? 

그런데 나는 어느샌가 강남출신에 회사를 취미로 다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기가 막혔다. 

그래. 농담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매일매일 치열하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선 저런 말이 설사 농담일지라도 듣기 달가운 소리는 아니다. 취미로 다닐 수 있는 회사였다면 벌써 100번은 그만뒀을 거라고요! 

 대체 어디서 들으셨길래. 라며 웃어넘겼지만... 어디서 들으셨겠나. 범인은 100% 예상이 가능했다. 대표님이지 뭐.



 이러니 대표님께는 사적인걸 점점 감출 수밖에 없다. 물론 악의적으로 그러시는 건 아니지만 그 누구도 저런 변질된 TMI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부분 처음에는 잘 몰라서, 물어오시는 대로 이 얘기 저 얘기 내어드리다가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았을 땐 너무 늦은 경우이다. 

지금은 퇴사한 직원 한 명의 아버지 직업이 의사였다. 사실 누가 동료 부모님 직업까지 궁금해한단 말인가.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 이상. 그런데 대표님은 이 친구가 입사하는 날부터 부모님이 의사란 걸 모두에게 친히 알려주셨고, 얼마 뒤에는 그 병원 건물의 건물주인지 세입자 인지도 물어보셔서 모두를 경악케 했던 일이 있다.





 모르겠다. 예전에는 이렇게 서로의 사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져하고 그런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미덕이었는지도. 또 누군가는 나름대로 친밀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농담인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그치만 나는 너무나 불편하다. 타인의 입으로 전해지는 나의 TMI들이. 

TMI는 대부분 듣는 사람도 알고 싶지 않은 정보다. 말하는 사람 외엔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게 만든다. 지금 단지 몇 개의 에피소드를 적었을 뿐이지만, 이 문제는 꽤나 지속되어 왔고 이 글에 담기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미 대표님과 서로 얼굴 붉힌 적도 있었지만 (물론 대표님은 기억 못 하시는 것 같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나 이렇게 적어 내려 가 본다. 

제발, TMI를 멈춰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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