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서른전에는 비키니 입어야지'에 대하여
살빼라고 (아주 빼빼 마를 정도로) 다그치는 엄마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다.
보통 50대의 아주머니들과는 달리 자기관리가 철저한, 테니스만 20년째 치는 엄마의 입장에서
딸의 평균적인- 보통의 몸매는 성에 차지 않은지가 10년이 넘었다.
'서른 전에 비키니 입고 사진은 남겨야지.'
이 문장에서 '서른 전'과 '비키니 입고 사진'은 왜 함께 등장해야할까?
여자의 서른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서른이 넘으면 비키니를 입을 수 없는건가?
한 순간 찰나의, 영원히 다시 오지않을 아름다움인양 사진을 남기기까지?
문제는 이 소리를 몇번 듣다보니 어느 순간 나도 친구에게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언제 완벽하게 살빼나, 서른 전에는 몸매 만들어서 비키니 입어봐야 할텐데-'
그러자 친구는 한술 더 떠서 '당당하게'라는 수식어까지 추가한다.
'당당하게 입는게 포인트야!'
그러자 다시 예전의 의문으로 돌아와버린 나였다.
지금 입는 건 당당하지 못한가? 당당하려면 어느 정도의 몸매를 만들어야 가능할까? 아무리 살을 빼도 당당한 순간은 오지 못할것만 같았다. 정말 지금 입어도 당당하냐는 친구의 추가질문까지 이어졌다.
"난 그냥 빨간 비키니 입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모르겠다. 지금은 시선에 눌려 입지못하고, 마흔이 훌쩍넘으면 더더욱 눈치가 보여 입지 못할지라도
왠지 환갑이 넘으면 입을 수 있을것만 같다. 그땐 아무도 내게 관심없을테니까.
그리고 나도 나에게 훨씬 관대해지고 그때쯤이면 육체의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만 같다.
저 소리를 하니 친구는 딱 요즘스러운 책 제목감이라며 웃었다.
그래서 오늘 일기의 제목은 내가 뱉은 문장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