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잠깐 그 말 괜찮은데?? 메모 좀 할게

인생을 바꾸는 가장 작은 습관

by Rinnie

평생을 걸쳐 가장 큰 도약이 있었던 시점을 단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여지없이 고등학교 1학년이다. 아마 앞으로 남은 인생을 다 합치더라도 고등학교 1학년 때만큼 큰 변화가 생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의 고등학교 3년은 코로나와 함께 했다. 2020년, 고등학교에 입학하긴 했지만 학교를 가기는커녕, 대부분의 세계인이 그랬듯 난 그저 방 안에 갇혀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거대한 공백이 생겼다.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에는 늘 그랬듯 관성적으로 드라마와 유튜브 시청, 소셜미디어 사용 만이 내 온 일상을 지배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것 이외에는, 정말 그것 말고는 하는 것이 없었다. 마침 나는 내향인인지라 사람을 못 만난다는 이유로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향인인 것과는 상관없이 코로나 블루, 우울감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사춘기 말미에 있는 여고생에게는 진로와 미래, 자아정체성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왔더니 전 세계적 공황을 갑작스레 맞이했다.


사회적으로 코로나가 안타까운 재난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기회였다. 나에게는 일상 속 충분한 공백이 필요했다. 아무리 수많은 영상을 보고 인터넷을 헤집어도 시간은 넘쳐났다. 종일 방 안의 불을 꺼놓고 어두침침한 상태로 인터넷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지치는 순간이 왔다. 히키코모리처럼 어떠한 생산성도 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생겼고, 우울감은 미친 듯이 증폭했다.


의외로 뜬금없는 곳에서 나를 바꿔줄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즐겨보던 국제커플 유튜버가 자신의 영상 속에서 우울은 곰팡이처럼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에 잘 들러붙기 때문에 그러니 계속해서 움직여줘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그 영상을 본 날부터 온라인 수업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집밖으로 나갔다. 코로나 때문에 놀러 가지 못해서 하지 못했던 화장을 하고, 괜히 꾸며 입은 상태로 집으로부터 반경 3km 내외를 산책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까르르 웃고 있었고, 바람에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고, 햇빛이 꽤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분명 평소에도 매일 봤을 법한 풍경인데 목적 없는 발걸음이 거의 처음이라 그랬나, 굉장히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일상을 목격하고 관찰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다. 사실 산책을 제대로 해본 것이 이때가 처음인 것 같다. 그전에는 어딘가를 향해 가기 바빴지, 목적 없는 걷기는 하지 않았었다.


산책하며 보았던 장면 중 하나


그 뒤로는 정말 매일매일 산책을 나갔다. 평생을 살아온 우리 동네에서 다녀보지 않은 길을 걸어보고, 새로운 가게를 발견해 보고, 길가에 사람들이 해놓은 낙서를 구경하고.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집 근처 공방에서 대뜸 자수 원데이클래스도 들었다. 일부러 음악도 듣지 않는 것을 넘어 종종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그저 끊임없이 걷다 보니 환기가 되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의도적인 공백이었다. 머릿속의 쿰쿰한 공기를 내보내고 빈 공간을 만들어 맑은 공기가 들어오게 하는 것이 내게 필요한 일이었다.





환경 조성하기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거나, 혹은 딱히 우울하진 않더라도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우선 가장 작은 변화부터 만들어보아야 한다. 벌써부터 온갖 자기 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어려운 것들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다 보면 쉽게 지치는 건 물론이고 시작하기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우선 딱 아래 두 가지만 염두해서 환경을 조성하자.



1. 일상 속에 의도적인 공백을 만들자.

앞서 산책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띄웠지만, 이런 의도적 공백은 일상적인 행위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 시간을 내서 목적 없는 산책을 할 수 있다면 물론 정말 좋다. 하지만 요지는 산책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자극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샤워를 할 때는 물줄기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길을 걸을 때는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할 일이 없을 때는 창문을 열어두고 새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일상적인 일을 할 때 그 조그만 따분함을 견디지 못해 매번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틀어두거나. 꼭 무언가를 동시에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일상 속에 이미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자극만으로도 충분하다.



2. 소셜미디어 사용을 30분이라도 줄이자.

소셜미디어의 문제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것이다.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던지, 타인과의 비교로 인한 우울감이라던지.. 하지만 그런 결과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당신의 뇌에 끊임없이 불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스크롤은 당신을 그저 중독으로 데려갈 뿐이고, 당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사실 대부분 그다지 의미 없는 자극적인 문구들이다.


물론 나도 소셜미디어를 좋아한다. 흥미로운 콘텐츠를 구경할 수 있고, 그것들이 영감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저 즐겁기 때문에 좋기도 하고,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보는 것도 재밌다. 개인이 영향력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도 재밌다. 사회적 흐름을 관찰하는 것도 살아가면서 꽤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의 대부분의 내용은 당신에게 그다지 쓸모 있지 않다. 어떤 좋은 내용이고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당신의 뇌가 직접 움직이는 것만큼 의미 있는 것은 없다. 특히, 아무리 좋은 내용들이더라도 그중 한두 개에 진짜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그런 내용을 무한정으로 제공받게 된다면, 당신이 보고 있는 콘텐츠들의 가치는 점점 떨어진다.


우리에게는 빈 공간이 필요하다. 당신의 뇌가 수동적으로 무제한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정보를 탐색하고 떠올릴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이 이리저리 떠돌도록 놔두어야 한다. 소셜미디어를 평소 사용하는 것보다 조금만이라도 의도적으로 줄인다면 더 효과적인 공백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종 지인들과 나누면서 좀 놀랐던 점이 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생각이 계속 떠오르고, 그 생각이 이리저리 튀는 게 싫어 차라리 자극을 택한다. 끊임없는 인풋을 받으며 뇌는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택한다는 것이다.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되고 나도 꽤 자주 그러기는 하지만, 이제는 이런 회피로부터 의도적으로 멀어져야 한다. 깨끗한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해 주기적으로 머릿속을 환기하고, 그곳에 생각이라는 바람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저번 글에서 수영장을 비유해 이야기를 했는데, 이 환경 조성은 물의 저항을 이기고 바닥에 닿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만드는 일이다. 올바른 자세를 만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발버둥을 치고 수영을 해도 물의 저항을 이기기 어렵다.


완벽한 도파민 디톡스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조금씩 공백을 만들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거의 매일을 목적 없이 걷고, 그러다 잠시 벤치에 앉아서 세상을 관찰하고, 그러다 집에 돌아오곤 했다. 산책뿐 아니라 샤워를 할 때는 따뜻한 물이 내 몸의 굴곡을 따라 스치는 것을 느꼈고, 스킨케어 제품을 바를 때는 그 차가운 제품이 얼굴에 닿는 느낌을 즐겼다. 음악을 들을 때는 가사를 읽고 부르며 오로지 음악만을 감상했다.


머릿속에 빈 공간이 생겨서 새로 들어온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떨 때는 번뜩이는 미술 작업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어떨 때는 괜히 안 좋은 기억을 헤집기도 했다.


기록을 시작한 건 사실 그저 작업 아이디어를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것들은 또 쉽게 휙 쓸려가기 마련이다. 어딘가에 붙잡아두지 않으면 영영 내 손을 떠나버렸다. 그게 너무 아까워서 하루는 친구와 다이소에 가서 평범한 노트를 한 권 사 왔다.



그 노트 속 아이디어들 중 실제로 탄생하게 된 첫 번째 작품. 지금 보면 어설프지만 아직도 여전히 애정하는 그림이다.


분명 작업 아이디어를 기록하기 위한 실용 목적으로 산 노트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머릿속 빈 공간에 불어온 내 모든 상념을 적기 시작했다. 온갖 생각과 기분을 기록했고, 정말 어딜 가든 노트와 펜만큼은 지니고 다녔다. 핸드폰보다 더 많이 만진 물건이 있을까 하면 아마 그 당시 사용하던 노트와 펜일 것이다.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수업 중, 밥 먹는 도중. 장소와 시간을 막론하고 무언가 생각이 나는 것이 있다면 닥치는 대로 적었다.


미술 작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창작활동이 아닌 더 깊은 층위를 포함한다. 어쩌면 미술은 “그린다” 혹은 “만든다”라는 행위보다 “생각한다”가 더 핵심적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작업 아이디어를 모은다는 게, 단순히 그에 대한 추상적인 상상처럼 그저 스케치를 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내 생각과 기분 무엇이라도 적으면 작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닥치는 대로 적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생각나는 것, 정말 모두를 적기 시작했다.


이 끊임없이 강박적일 정도로 유지했던 이 메모 습관은 내 인생을 바꾸는 가장 큰 핵심이었다. 겨우 메모 따위가 인생을 바꾼다니 우스울 수 있겠지만, 진실이다. 앞으로는 이 메모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기록의 위대함, 그 기록이 바꿀 수 있는 것, 그를 통해 찾은 정신적 안정감, 단순히 까먹지 않기 위해 적는 것을 넘어서 메모를 통해 영감을 끊임없이 얻는 방법… 수많은 연쇄 효과를 몇 편의 글에 걸쳐 이야기할 것이다.




"진짜 기록" 시작하기

이전 글에서 기록의 진화 3단계를 소개했다.

1단계: 내가 까먹더라도 적어두기만 하면 찾아볼 수 있는 것
2단계: 나 자신과 내 생각을 문자로 객관화하는 것
3단계: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최고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하는 최고의 촉진제


1단계는 사실 모두가 아는 기록의 기능이다. 아마 할 일을 스케줄러에 써보거나, 인상 깊은 이야기를 포스트잇에 적어 모니터 아래에 붙여두거나, 그날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잠시 일기를 쓰는 그런 기록은 해보았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교과서 내용 말고도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 적는 것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하지만 그뿐,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이 1단계를 단순 필요 그 이상으로 해본 적은 없었을 것 같다. 내가 말하는 그 이상의 1단계란,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바를 가능한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글로 남겨두는 것이다. 추후에 돌아보고 아 이랬구나, 할 수 있도록.


여기서 하나의 프레임워크를 제안하자면, “why”를 명심하도록 하자. 우리는 일상에서 이해되지 않거나 모호한 상황에서 습관적으로 ‘왜 그럴까’라는 말을 내뱉곤 하지만 실제로 왜 그런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은 드물다. 아무리 메모를 할 것이 없더라도, 평소에 대충 넘어갔던 ‘왜 그럴까’를 다시 짚으며 생각해 보면 적을 것이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염두해야 할 것은 꼭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 화려한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글 연습을 위해서라면 시도해 보는 것은 좋다.) 당신이 쓰는 이 기록들은 누군가 읽지는 않고 혼자 간직하게 될 테니, 솔직해지도록 하자.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이 일기를 쓸 때 혼자서만 읽는 일기인데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때는 가능하다면 한 곳에 모아 기록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잠시 떠오른 생각도, 일기도, 영감이 되는 문장이나 단어도, 간단한 드로잉도, 책 필사도, 아이디어 모으기도, 친구에게 전할 편지도, 당장의 기분도, 해야 할 일도... 분류를 하기보다는 모두 한 곳에 작성해 보도록 하자. 기록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분류를 먼저 시작하면 미리 지쳐버려서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보통 기록을 분류할 때 목적과 주제에 따라 분류하게 되는데, 우리가 하는 기록은 추후에 언제든지 어디에든지 활용할 수 있고, 늘 목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분류라는 것이 초반에는 특히나 크게 의미 있지 않다. 애초에 우리가 할 기록의 목적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시작 단계에서는 그다지 실용적인 이유로 시작하는 것은 아닌지라. 우선은 기록을 그저 많이 하는 것이 첫 번째다. 당신의 기록 허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뒤에야 이 기록의 진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고3 때 적었던 노트들 중 극일부



그리고 초보 기록자일수록 노트와 볼펜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용은 같더라도 물성과 매체가 무의식에 꽤 큰 영향을 준다. 특히나 이 글을 읽고 기록을 통해 심리적인 부분을 다스리고 싶다면 더더욱 손글씨로 메모하는 것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글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나 같은 경우, 고1부터 스무 살까지 4년간 실물노트만을 사용했다. 그 이유는, 가로로 쓰던 세로로 쓰던 대각선으로 쓰던 자유롭고, 글뿐만 아니라 간단한 그림을 그려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샤프가 아니라 볼펜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잘못 적고 줄을 그어 취소를 하고 다시 글을 써가는 그 과정도 모두 당신의 의식 흐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과정조차 남기겠다는 일종의 집착이 필요하다.


초기에 사용하던 노트들. 물론 지금은 이보다 몇 배로 노트가 쌓였다.




제품이야 당신이 원하는 걸 골라 사용할 수 있지만, 시작 전에 어떤 노트와 볼펜을 사용할지 고민된다면, 나는 무인양품 제품을 추천한다. 초기에는 이런저런 여러 노트를 사용해 보다가 결국 노트도 펜도 이것들에 정착했다. (광고 아님..)


무인양품 슬림 노트

두껍지 않고 40 매라 부담스럽지 않다. B6사이즈라서 크지 않고 여기저기 넣어 다닐 수 있어서 휴대성이 좋다. 한창 사용할 때는 한 달에 한 권 정도씩 썼던 것 같다. 백화점 구경하는 겸 설렁설렁 가서 두세 권 사 오곤 했다. 미색이 약간 있는 무지 종이라서 보기에 편안하다.



무인양품 볼펜

뚝뚝 끊기지 않고 부드러운 필기감이 정말 좋다. 무인양품 문구류가 디자인이 깔끔하고 보기 편안하다. 한창 공부할 때는 0.38만 고집했었는데 생각보다 0.5도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물론 이 준비물은 당신에게 편한 제품으로 골라 준비하면 된다. 이제 노트와 펜을 준비했다면, 이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매 순간 기록해야 한다는 일종의 무의식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단순 의지력에만 의존하기는 어렵다. 본인이 실제로 기록의 위대함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경험해 보아야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다.


아마 초등학생 시절 억지로 일기 숙제를 해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시나 집에 그 일기장이 남아있다면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너무 오래되어서 이미 다 버린 지 오래라면, 한창 공부할 때 쓰던 문제집이나 스터디 플래너 같은 것도 좋다. (내 학창 시절 스터디 플래너를 열어보면 공부하기 싫다는 메모 밖에 없긴 하다.ㅋㅋ 하지만 이런 메모조차 소중하다.) 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면 친구들과의 옛날 카톡 내역을 찾아보거나,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게시물, 스토리도 좋다. 최대한 글로 만들어진 기록을 무엇이든 좋으니 찾아보길 바란다. 오래된 기록들을 회고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점은, 단순 무언가를 했다고 나열한 기록보다 그 사이사이에 껴있는 당신의 기분이나 생각, 배운 것 같은 요소들을 더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좋다.


당장 그런 기록들을 찾기 어렵다면, 나의 일화를 하나 이야기해 주도록 하겠다. 혹시 매실이 매화나무의 열매라는 것을 아는가? 어쩌면 너무 민망할 정도로 상식을 묻는 질문이겠지만, 나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 이 뻔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쓴 충효일기 덕분이다. (충효일기는 부산이 고향이라면 모두 알만한 초등학교 저학년 용 일기장이다.)


미술 작업에 몰두하며 지내던 고등학생인 나는, 마침 작업적 아이디어를 얻고자 어린 시절 일기를 펼쳐보았고, 그 새파란 일기장 속에서 꽃구경을 하러 간 날 아빠가 해준 이야기를 어린 내가 적어두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 부끄러운 상식 수준에 변명을 좀 하자면, 난 이 사실을 아예 모르고 살아온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잊고 지냈을 뿐이지.




1단계: 내가 까먹더라도 적어두기만 하면 찾아볼 수 있는 것

이 1단계의 의미는 단순히 기록을 해놓고 덮어두지 않고 언젠가는 다시 찾아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가 하려는 이 기록습관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회고이다.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성장하고 나아진다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간다. 그 의미는, 과거의 나에게서도 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에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혹은 과거에 더 반짝였던 나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다.


메모를 꾸준히 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머릿속 사고방식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시작은 큰 변화의 기대보다는 그저 과거의 나와 공명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천천히 시도해 보길 바란다.



오늘의 내용을 요약해 보도록 하겠다

1. 환경 조성: 일상에 의도적인 공백 만들기 → 머릿속에 빈 공간을 만들어 환기하기
2. 그렇게 새롭게 떠오른 생각들을 하나의 노트에 모조리 적어버리기


뻔해 보이는 기록 1단계에 대해서 이리도 길게 적은 이유는, 이 기록의 진화 3단계는 건물을 지을 때처럼 기초부터 튼튼하게 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초가 불안정하면 기록을 아이디어 촉진제로 만들어가기는커녕, 내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는 것도 어렵다. 1단계 > 2단계 > 3단계를 순서대로 점프하듯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1단계를 잘해야 2단계를 할 수 있고, 1단계와 2단계 모두 습득이 되어야만 3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3단계를 잘하다가도 1단계와 2단계가 무너지면 3단계는 시도조차 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 기록으로 나를 이해하고 나와 친해지는 이 일은, 내가 글로 풀어내는 것보다 아마 훨씬 더 긴 여정이 될 수도 있다. 내면을 충분히 성장시키고, 기록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기록을 온전히 내 기술로 만들어 내 영감의 근간을 만들고, 그걸 글로 풀어낼 정도가 된 건 기록을 시작한 지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가능해졌다. 물론 효과가 7년 뒤에나 생긴다는 말은 아니다. 기록을 시작한 지 한두 달 안에 효과는 여실히 느끼고 있었지만 내 것으로 온전해지는 데까지 7년이 걸린 것일 뿐이다.



2단계: 나 자신과 내 생각을 문자로 객관화하는 것

다음 글에서부터는 2단계에 들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1단계에서 얻은 습관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제부터는 약간의 집중력이 필요할 것이다. 더 집요하게 글을 쓰며 더 집요하게 당신 스스로를 파고들 것이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 내가 이 브런치 글을 쓰는 목적은 당신이 더 수월하게 수영장 바닥을 찍어볼 수 있도록 튼튼한 사다리를 설치해 주는 것이다.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이 무작정 헤맸던 몇 년 전의 나를 기억하며 이 강력한 힌트들을 보낸다.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한동안 꽤 유명했던 짤이다. 이 글의 제목도 사실 이 짤에서 가져온 문구다. 나도 이 짤을 보고 되게 많이 웃었었는데, 사실 나도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솔직히 공감을 많이 했다. 그리고 기록을 제대로 시작한 이후부터는 친구들과 대화하다가도 "어 잠깐 그 말 괜찮은데? 메모 좀 할게."라고 하며 같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최대한 빠르게 노트에 글을 휘갈기곤 했다. 당신도 오늘의 이 글을 통해 저 래퍼 남친처럼 매 순간 메모에 진지하고 진심인 사람이 되길. . .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