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르스카&두브로브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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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정도 여행 속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크로아티아의 최대 휴양지라는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체로 두브로브니크인 듯하다. 붉은 지붕들이 다채롭게 모여있는, 그런 도시로 향한다. 스플리트에 정착한 뒤로 간만에 떠나는 여행이었다.
두브로브니크를 가는 길에 마카르스카를 들를 수 있다고 들었다. 현아의 서치 결과였다. 서치하는 게 꽤 좋다는 애다. 거대한 정보의 파도 속에서 필요한 것만 쏙쏙 골라내는 것은 여행자의 몫이다. 때론 정보가 너무 많아서, 때론 그럼에도 정보가 너무 없어서 고단하다. 정보가 너무 많은 곳에서는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끝마친 기분이고, 정보가 너무 없는 곳에서는 우리의 몸과 짐을 던져가며 직접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다.
1박 2일 여행이지만 거의 2박 3일 정도로 꽉 찬 일정이다. 목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금요일 자정에 돌아올 계획이었다. 예정대로 아침 8시에 나가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는데, 스플리트도 출근길 교통 정체라는 게 있었다. 유럽 사람들이 아침에 바삐 출근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생각지도 못했다. 다들 아침 9시, 10시는 되어야 나가는 줄 알았던 나의 알량한 착각이었다.
스플리트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마카르스카로 가야했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시내버스에서 멀미를 대차게 해버렸다. 꽉 막힌 공기에 꽉 끼는 청바지 때문이었다. 배고플까봐 먹고 온 바나나와 요거트가 속에서 스무디로 합쳐지는 것 같았다. 딱 붙는 바지를 오랜만에 입으니까 나의 체질과 체형이 기억났다. 먹고 앉아만 있으니까 불어나는구나, 나는 배부터 살이 붙는 체형이었지.
들뜬 정신과 달리 시작부터 고장나버린 신체였다. 평소엔 반대의 경우가 문제였는데, 참 예상할 수가 없는 게 여행이다. 시내버스에서 내려서 시외버스까지 열나게 달렸다. 달리다가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길래 냅다 타버렸다. 버스에 버스에 버스를 타는 여정이었다. 결국 1분을 남기고 시외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잘못 탈뻔 했는데 어떤 기사 아저씨의 다정 덕분에 게이트를 제대로 찾아갔다. 아주 느긋하고 선량한 사람이라서 순간 그분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카르스카는 뒷산이 어마어마한 돌산이었고, 앞으로는 바다가 있었다. 배산임수의 끝판왕인 이곳에서 우리는 별다른 계획 없이 동네를 활보하기로 했다. 스플리트보다도 작은 미니미한 시내였다. 바다 앞에 쭉 늘어선 카페테리아 말고는 모두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그러나 우리는 숨은 해변을 찾아냈고, 여기는 해변까지 돌이었다. 모래보다 깔끔하고 지압까지 되는 해변에서 한참 드러누워 햇빛을 만끽했다.
스플리트에서도 할 수 있는 광합성이고, 볼 수 있는 해변이었으나 차이가 있다면 이곳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준성수기라서 가게들도 오픈하지 않았고, 바다 앞에 앉은 사람도 없었다. 오랜만에 해가 뜨는 날에 맞춰서 온 여행인 만큼 그 장점을 최대한 누리기로 했다. 비록 새로 꺼낸 선글라스가 얼굴에 맞지 않아 계속 흘러내렸지만, 해변에 누워있을 때는 가볍게 얹어둘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사이즈가 맞는 누군가를 찾아 선물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난데없이 비가 오기도 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밥을 먹으려는데, 파라솔 틈 사이로 빗물이 떨어져내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산도 없이 비를 그냥 맞으며 걸어다녔고, 우리는 비에 젖은 파스타를 먹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옆 테이블로 옮겨갔다. 크로아티아에서 많이들 먹는다는 참치 스테이크를 시켜봤는데, 한국에서 꺼내먹던 참치캔을 덩어리로 두껍게 펼쳐놓은 것 같았다. 아마도 다시 먹지는 않을 느끼하고 익숙한 맛이었다.
2층짜리 작은 몰에서 크로아티아의 올리브영을 발견했다. 나는 필요했던 화장솜과 팩을 살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화장솜은 까먹고 팩이랑 염색약이랑 매니큐어랑 립스틱을 사서 나왔다. 조금 어이없는 쇼핑이었다. 현아 말에 의하면, 나는 쇼핑할 때 경주마처럼 달리다가 한번 구매하고 나면 흥미가 싹 사라진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다시 들어가서 화장솜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귀찮으니 나중에 집앞에서 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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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브로브니크로 옮겨갈 시간이다. 두브로브니크는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마음가짐으로 가야 한다. 당일치기로는 불가능한 곳이다. 스플리트에서 가면 버스로 4시간 반이지만, 마카르스카에서 가는 건 3시간 정도였다. 그쯤이면 참을 만했다. 이번엔 멀미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버스를 타자마자 바지 버클을 풀어버렸다. 지금까지 이렇게 딱 맞는 바지를 어떻게 입고 다녔나. 살이 찐다는 건 결국 체중계에 직접 서보지 않아도 감각을 통해 알게 될 일이다.
전날 잠을 설쳤기 때문에 이 버스 안에서는 머리를 휘두르며 열심히 졸았다. 덕분에 멀미할 새도 없이 도착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울렁거리는 속과 깨질 것 같은 두통만 없어도 세상이 이렇게 단순하게 아름다워진다. 실제로 두브로브니크는 피렌체만큼이나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붉은 지붕과 조명이란 게 이렇게나 조화로울 일인가. 도착하자마자 전망대에 올랐다. 다음날 해가 지기 전에 이곳을 뜰 예정이기 때문에 야경은 첫날의 몫이었다.
2분이면 케이블카를 타고 아주 높은 전망대로 오를 수 있었다. 왕복 8만원의 거금을 들여 오른 곳이었다. 우리의 소비에 이런 사치는 거의 없는 일이었으므로 일몰이 끝나고 해가 질 때까지 더 버티고 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모두 낮의 풍경을 보고 밥을 먹으러 떠난 듯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오는 동안 일몰을 보고, 전망대에 서서 야경까지 지켜봤다. 내가 챙겨온 빵과 현아가 챙겨온 과일을 야금야금 먹었다. 각자 소중한 것들을 꾸려온 간식이었다.
우리가 빵을 먹던 곳 옆에는 같은 야경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아마도 신혼부부나 은퇴부부쯤이 되면 저런 곳도 한번 가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내려오자마자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한국의 샌드위치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내 얼굴보다 큰 빵에 뒤덮인 샌드위치를 두개 시켜서 둘이 먹다가 남기고 왔다. 크로아티아의 전통 고기인 체바치가 들어간 것과 터키 햄이 들어간 것이었다. 아주 배부르고 충분한 맛이었다. 외국인들의 위장을 샌드위치로 채우려면 이정도 사이즈는 돼야 한다는 걸 짐작했다. 하긴 한끼 식사로 샌드위치를 먹는데 어지간한 크기로는 안 될 것이다. 겉이 딱딱한 빵에 입천장이 다 까진, 아주 배부른 식사였다.
오랜만에 하는 숙소 체크인이라 잠시 잊고 있었는데, 비앤비의 어려움을 간만에 실감했다. 우리는 집앞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고 문은 열리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도 보지 않는 것. 이 때가 밤 열시 반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약 열 곳의 숙소 체크인을 하는 동안 심신이 단련되어있었다. 이 정도의 변수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아닌 것이었다. 그냥 조금 기다리면서 여기저기 깔짝대기로 했다. 다른 게스트가 숙소에 들어가면서 굿 럭이라고 말해주었다. 동양인의 얼굴을 한 외국인이었다. 외국인 남자친구와 함께 영어를 구사하며 들어가던 그 언니가 여러모로 부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스트가 전화를 받고, 그의 엉클이 와서 안내해줄 거라고 했다. 엉클은 아주 피곤한 몸과 얼굴로 우리에게 왔다. 이제야 체크인을 하냐는 듯한 피곤이 어린 친절함으로, 물론 우리는 미리 말하고 온 거지만, 방과 화장실과 와이파이를 안내해주고 떠났다. 정말 딱 하루 잠만 자고 나올 숙소였다. 두브로브니크에서 4만원짜리 방이었으니까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실제로 그만한 기대에 적합한 숙소였다.
사실 그 엉클이 오기 전에 리셉션인 줄 알고 불이 켜진 방문을 열었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놀란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셨다. 주인분인 줄 알았는데 주인의 어머니쯤 되시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당황했지만 바로 아주 따스한 목소리로 여기가 아니라고 일러주었다. 노크도 없이 남의 방문을 열어버린 우리는 아주 미안한 마음으로 문을 닫았다. 참 알 수 없는 유럽의 비앤비였다.
이 집에서도 우리의 한국 드라마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새롭게 시작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가 아주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온 김에 시작한 드라마였는데, 현빈이 겪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래서 박신혜가 어떤 시련에 휘말릴지 두고두고 궁금했으므로 세수만 하고 드라마를 한편 시청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다가 졸 뻔했다. 하루치 여행의 노곤함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냄새가 좋은 침구, 재밌는 드라마 정도로 충분했던 숙소에서 평안히 자고 나왔다.
3
두브로브니크는 성벽 투어로 유명한 곳이었다. 사실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그게 전부이기도 하다. 이것 역시 아주 비쌌지만 안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관광 산업의 핵심인가. 물가가 비싼 곳으로 악명 높은 도시에서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성벽을 천천히 걸었다. 이 도시가 원래는 작은 공화국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어떤 나라였던 도시를 걷다 보니 느껴지는 풍요가 있었다. 성벽 안에서 수업 중인 학교도 보았다. 이 아이들은 성벽과 바다에 정말 감흥이 없을 것이다. 비싼 돈을 주고 성벽을 걷는 관광객들과 자주 눈이 마주칠 것이다. 우리는 신기하고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을 할 것이다. 작은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걸 보면서 우리는 마저 걸었다. 아주 비싼 돈을 주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사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에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걱정했던 차별의 양상은 성인 남성의 위압감이었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무지에 기반한 차별을 선보였다. 대체로는 우리가 지나갈 때 웃음이 터질 듯한 표정으로 신음 소리를 내거나, 버스에서 내리면서 신음 소리를 틀거나, 대뜸 인스타 주소를 알려달라는 등의 무례함이었다. 대체 왜 신음 소리가 우리와 상관 있는지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일본을 생각한 것 같다. 우리가 AV의 강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아직 무지한 걔네가 그 사실은 알고 있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초등학생 남자아이들을 보면 피하고 싶어진다. 곁에 보호자가 없는 어린애들이 무서워질 지경이라니. 신체적 위협이 아닌 극강의 불쾌함을 느꼈다. 저만한 아이들이 신음 소리를 안다는 것도 내겐 불쾌에 해당한다. 쾌와 불쾌의 기준도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아주 잘못된 인식이 박혀있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을 피하고 안타까워하다가 여행이 끝날 수는 없으므로 가던 길을 가기로 한다.
성벽을 걷는 동안 직사광선을 내리 맞으며 아주 나른해졌다. 내려오자마자 제로 콜라와 초콜릿을 사먹고 정신을 차렸다. 햇빛이 아주 뜨거운 김에 근처에 있는 반예 비치도 다녀오기로 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바다 수영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4월 말이면 비키니를 입고 누워있을 수는 있지만 물에 들어가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발만 담가도 차가워서 몸서리를 치게 되는데, 머리까지 담그고 수영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떨지 궁금했다. 추우니까 궁금해하기만 했다. 그래도 각양각색의 체형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배를 까놓고 있는 경험은 아주 짜릿했다. 살면서 비키니라는 걸 처음 입어본 날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그런 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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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정보가 아니라 여행을 하는 나와 나의 생각을 담으려고 했는데 아주 방대한 양의 여행기가 되어버렸다. 두브로브니크는 한번쯤 꼭 가볼 만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성수기에는 식당 메뉴판이 바뀔 만큼 아주 비싸다고 하니까 다시 올 때도 준성수기라면 딱 좋겠다. 아주 파아랗고 빠알간 이 도시에서 많은 사진과 생각들을 건질 수 있었다. 비록 스플리트로 돌아오니 저녁 열시반,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열두시가 조금 넘었지만 꾹꾹 채운 계획인 만큼 각오했던 바였다. 씻고 침대에 누울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곳이 주는 즐거움, 그 새로운 곳이 금세 익숙해지는 편안함 모두 좋다. 난생처음 보는 도시들이 쉽게 익숙해져버리는 여행이었다. 이제 스플리트는 거의 내 도시 같고, 이 한달용 숙소도 내 집 같고, 놀고 먹는 하루도 내 삶 같다. 동시에 내가 가보지 않은, 아주 많은 새로운 곳들이 궁금해지는 여행이다. 적절한 설렘과 두려움으로 사는 내내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길게 여행하는 만큼 진짜 집에서의 시간도 한층 달콤해질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