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쭈 편

반도파민적 인간

by 최열음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도 유튜브가 제일 먼저 소개되는 이유는 나 역시 알고리즘에 익숙한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기능이란 건 무언가, 생각을 쉬게 하는 것 아니었나. 화면을 보는 동안은 일상과 분리되는 것이다. 간혹 일상과의 연결점을 찾고 싶어서 볼 때도 있지만… 아무튼 잠들기 전에는 유튜브를 보는 게 일상이지 않나!


유튜브를 보는 나는 잔뜩 이완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복잡한 생각을 하기 위해 유튜브를 보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해쭈는 내게 유쾌하고 분명한 휴식을 준다. 유럽에서도 매일 거르지 않고 보았던 건 해쭈의 먹방과 가족 브이로그였다. 현실감이 사라질 때마다 해쭈를 봤다. 나의 일상은 여전히 나의 손에 있다고 상기시키고 싶었다.


해쭈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선 콘텐츠가 아닌 사람만으로 볼 때, 그는 아주 귀엽다. 인간 쿼카 같다. ‘안녕하세요 햇~~쭈예요!!!><!!!‘를 듣는 동시에 앙큼해진다. 그는 주로 가족, 먹방, 챌린지 등을 브이로그로 찍는다. 처음 좋아하게 된 건 코로나 때였다. 집에만 갇혀 있는 나에게, 우리에게 기적처럼 다가온 해쭈……


나는 해쭈의 친구인 햄튜브를 구독하던 영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햄튜브가 병약미라면 해쭈는 튼튼미다. 너무 잘 먹고 잘 웃고 잘 지내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많은 게 거뜬하게 느껴진다. 세상에 거뜬하지 않은 게 있으면 해쭈 앞에 가져다 놓고 싶을 만큼. 그러나 그가 언제나 튼튼하기만 한 인간은 아니라는 걸 안다. 가끔은 우울하기도, 슬프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다. 쉼 없이 기쁘기만 한 존재는 어차피 없으니까.


보통은 자기 전에 해쭈를 본다. 잠들기 전에 도파민이 분비되는 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냥 고요하고 잔잔하게 잠들고 싶다. 해쭈의 여행, 또는 해쭈의 먹방을 보면 잠이 솔솔 온다. 하도 많이 봐서 다음은 무슨 메뉴가 나올지도 알고 있다. 좋아하는 영상은 거의 열 번 이상 본 것 같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본다. 어째서인지 그게 편하다. 해쭈는 다다익선이다.


크로아티아에서 한 달을 살 때가 피크였다. 매일 거르지 않고 봤다. 같이 살던 친구도 내가 해쭈를 보지 않으면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그 때 그렇게 익숙한 것에 매달렸던 이유는 모든 게 너무 낯설기 때문이었다. 구글맵을 켜지 않고는 밖에 나갈 수 없고, 우리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을 지나쳐야 하고, 그리운 한식을 온전히 만들어먹을 수도 없었다.


현실감이라는 게 자주 나의 손을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다. 쥐면 쥘수록 더 쉽게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다. 무언가를 그리워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가진 것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해외 거주자에게 유튜브는 참 좋은 기능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화면이기는 하지만 한국어, 한국 음식, 한국인들이 가득하니까.


실제로 본 적은 없어도 어딘가 이 귀여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됐다. 해쭈는 호주에 살고 있다. 그가 가끔씩 한국을 그리워하는 걸 본다. 해외에서 지내기 전까지는 그 점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았다. 가족과 교회, 배우자가 다 함께 있는데 한국이 많이 그리울까. 하지만 타지는 타지일 뿐이고… 나는 본토가 주는 안정과 평화 속에 있을 뿐이었다. 해쭈는 언제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언제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이 그를 슬프게 할 것도 같았다.


그의 남편인 쁘큐보이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호주에 사는 크리스천 부부인 이들은 ENFP와 ISTP 인간의 전형이다. 해쭈의 재롱 앞에 쁘큐보이는 무심한 듯 상냥하다. 그는 70만 유튜버의 남편이지만 아직도 카메라와 낯을 가린다. 영영 그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영상 속에서 쁘큐보이를 보는 게 더 소중해진다. 그는 희소성을 토대로 빛이 난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카야와 라니, 바로 해쭈의 조카이다. 해쭈의 영상에는 내가 원하는 게 전부 있다. 신앙과 유쾌함, 사랑과 우정, 가족과 아가들, 그리고 음식과 호주의 풍경까지…… 너무 많은 포인트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건 해쭈로 인해 의미를 갖는다. 앙큼한 해쭈, 쁘큐보이, 카야와 라니를 보고 있자면 나까지 앙큼해지는 기분이다. 실제로 구독자들의 이름은 ‘쭈친(해쭈 친구)’인데, 우리에게는 ‘앙큼 불여우’라는 제2의 별칭이 있다.


그래서 쭈친을 만나면 일단 믿고 본다. ‘너 혹시.. 해쭈 봐?’라고 묻는 사람에게는 이미 마음을 반쯤 열어젖힌다. 주변에 그런 동생이 하나 있다. 쭈친이라는 이유로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애. 우리는 해쭈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몸에 익은 그녀의 잔재를 공유한다. 이미 현실을 앙큼하게 살아가는 불여우가 된 것이다. 같은 정서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심란할 때도, 심심할 때도 해쭈를 찾는다. 물론 해쭈‘만’ 찾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삶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러나 이미 그녀가 나의 일상이 된 건 확실하다. 역시 좋은 게 좋은 이유를 설명하는 건 어렵다. 진짜 잘 담고 싶어서 진짜 어렵다. 그저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존재할 해쭈가 행복하고 재밌는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 해쭈를 보는 나도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하고.


배경화면 출처: 해쭈 인스타그램 (@hae_jooooo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