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잃은 사법, 어디로 가는가
[2025.10.27.]
2025년 정기국회를 통과한 사법개혁안은 대법원과 정치권, 그리고 국민의 시선이 가장 첨예하게 엇갈리는 지점에 서 있다. 대법관을 기존 14명에서 26명으로 증원하고, 판결문을 전면 공개하며, 압수수색 영장에 사전 대면심문을 도입하겠다는 개혁안은 표면적으로는 ‘사법의 투명성’ 강화를 외친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법 독립’이라는 핵심 가치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 또한 내포하고 있다. 중심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침묵과 정치권의 입법 속도전, 그리고 국민의 불신이 놓여 있다.
2025년 10월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대법원장 조희대는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단 1분도 답하지 않고 90분간 침묵을 지켰다. 질의에 응답하지 않은 것이 국회 출석 관례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부의 정치적 편향성과 오판을 은폐하려는 방어적 침묵”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고, 국민의힘은 “사법부의 중립성 수호를 위한 고뇌의 표현”이라며 조 대법원장을 옹호했다.
그의 침묵은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사법부가 처한 현실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는 방증이자, 사법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국민적 체감의 반영이다.
10월 20일, 더불어민주당은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대대적인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법관 수 증원 (14명 → 26명)
대법관 추천위원회의 구성 다양화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대면심문제 도입
법관 평가 제도 개선
이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단연 ‘재판소원’ 도입이다. 이 제도는 대법원 판결조차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사실상 헌법재판소를 제4심으로 격상시키는 구조다. 전국 고등법원장협의회는 이에 대해 “헌법 제101조에서 명시한 ‘최고법원은 대법원’이라는 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겨레 사설은 “헌법학계 일각에서 재판소원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국민적 공론화 없이는 위험한 선례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공론화 과정에서 사법부 의견을 충분히 내겠다”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 ‘속전속결’ 논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은 대법원에 접수된 지 단 16일 만에 판결이 선고됐다. 통상 상고심에만 3~6개월 이상 소요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신속 처리다. 특히 기록 인계일은 4월 22일인데, 4월 24일에 선고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7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단 이틀 만에 검토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사건은 정치적 중립성 훼손과 사법 절차 불신을 부추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귀연 판사의 내란사건 ‘지연 판결’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과 관련한 내란 사건 역시 국민적 논란이 된 사례다. 지귀연 판사는 공소 제기 이후 4개월 이상 재판을 열지 않고 지연시켜, ‘재판 거부권’ 논란까지 불러왔다. 이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는 "사법권의 남용"이라는 비판이,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재판 회피”라는 지적이 동시에 제기됐다.
사법 신뢰 여론조사
2025년 9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7.4%,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6.9%**에 달했다.
이는 2020년의 신뢰도(45.2%) 대비 17.8%p 하락한 수치로, 국민의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법개혁의 본질은 사법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번 사법개혁안은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 계산이 깊숙이 작용한 결과물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실제로 민주당은 당초 ‘재판소원 도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하루 만에 “공론화 후 검토”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는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의식한 정치적 유연성으로도 해석된다.
야당은 “대법원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사법권력 분산이 아닌 장악을 시도하는 것”이라며 “삼권분립 훼손”을 경고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국민 권리 보호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맞서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사법개혁 관련 법안은 총 17건에 달한다. 그중 9건은 여당 주도이며, 나머지 8건은 야당이 발의한 법안이다. 문제는 여야 모두 사법개혁을 ‘권력 투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제도 변화 이전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공감이다. 즉, 사법부가 왜 그렇게 판결했고,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침묵이 '공정성'의 수호인지, '책임 회피'인지를 판단할 수 있으려면, 그 침묵이 아닌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개혁의 방향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방식이 틀리면, 그 개혁은 독이 될 수 있다.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 판결문 공개 등은 국민의 사법 참여와 감시를 가능케 하는 좋은 출발일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정치 개입, 밀어붙이기식 입법, 공론화 없는 제도 변경은 사법 신뢰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금 사법 불신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법 시스템 전반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결과물일 뿐이다. 법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판결하며, 국민 앞에 설명하는 사법부만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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