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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지 않은 척 올리는 기도.

간절함을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

by 김로기

자꾸만 아직은이라고 말하고 싶은 날들이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날들.

어느새 그만큼 귀한 날들이 되어버렸다.

너무 귀해서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것.

쉽게 내뱉어 허공에 흩트려 트릴 수가 없는 말들이 있다.

너무도 귀한 말들이라서.

너무도 연약한 말들이라서.

누구에게나 인생의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

그 반짝임이 때론 너무 작고 연약해서

금방이라도 깨어질까 조마조마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저 반짝이는 순간이었다는 것만 기억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리라 간절히 믿는다.

하지만 내 간절함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마치 더 높은 계단 위에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나를 밀어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불안함이

언제나 나를 뒤덮는다.

너무 귀해서 너무나도 불안하다는 것이

이런 마음이구나 싶었다.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놓는 것 같이 불안하는 말.

지금으로서 그 말은 불안을 넘어서

불가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이런 마음을 가지고 몇십 년을 살아왔는지

사뭇 누군가의 대단함과 마음의 쓰임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기약이 있기는 할까 싶은

그 불안한 날들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를 살기로 다짐했지만

벌써부터 인생 뜻대로 되지 않음이 증명되는 날들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내게도 반짝이는 날이 있었음을

웃으며 이야기할 순간이 오리리 믿는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간절하지 않은 척 기도를 한다.

너무도 간절한 마음으로 무덤덤한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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