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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늘 해답의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들이 모르는 그들의 말이 늘 내게 전해지고 있었다.

by 김로기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예전에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요즘은 어린 시절이라고 썩 반기지 않는 눈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어린 시절이라면

하루종일 놀기에 바빴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는 어린이들도 이른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의 대인관계나

한참을 앞서 시작하는 선행학습.

그리고 걱정한다고 뭐가 나아지긴 했을까 싶은

집안 어른들의 사정까지.

어린 나이라고 해서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그 여린 마음으로 감당하기 힘들 법한 걱정들에

잠 못 이루는 날도 참 많았던 것 같다.

나름의 고민과 걱정을 한가득 품에 안고

수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눈치챈 건지

엄마와 아빠는 내게 묻곤 했다.

"딸, 무슨 고민 있지?. 뭔데 말해봐."

엄마 아빠는 언제나 나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에게는 나의 얕은 거짓말 같은 건

통하지 않겠다고 진작에 생각했었다.

종종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해답을 주기도 했고

나의 걱정이 결국에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후에도

고민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오히려 어린 날의 걱정은 애들 장난감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걱정은 장난감을 실사로 만들었을 때보다

더 크고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한 번씩 그런 걱정이 가득한 날이면 생각이 나곤 한다.

어린 날 내게 해답을 주던 엄마와 아빠처럼

지금도 누군가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지는 않을까.

물론 엄마와 아빠가 여전히 내 옆에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제 예전처럼 모든 근심이 얼굴에 드러나던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 표정으로 부모에게 더한 근심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예전에 비해 사는 것이 조금 어려워졌다면

아마 누군가를 위해 나의 고민을 내색하지 않는

커버린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헤쳐나가야 할 것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는 했지만

어린 날 들었던 엄마 아빠의 지혜로운 말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보탬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때 그 말들이

지금의 나에게 종종 해답의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모르는 그들의 말들이

늘 내게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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