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딸의 마음.
길쭉한 포도송이 앞에 서서
남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과일이라며
혼자 먹어야 하는데 하며 망설이는 딸의 얼굴을 보고는
엄마는 냉큼 포도를 집었다.
딸은 그렇게 담겨진 카트 안에 포도를 다시 매대 위에 올려 두었다.
자신이 사 줄 테니 그냥 먹으라며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와
그럼에도 망설이는 딸의 대립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딸은 포도를 사지 않았다.
엄마는 딸을 향해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딸의 마음을.
이상하게도 결혼하면서 좋아하는 과일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 혼자 먹겠다고
과일을 사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 되었다.
어느새부터인가
나를 향한 친절은 사치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런 딸의 마음을 엄마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너무 일찍 자신과 닮아 버린 딸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답답하고 속이 상할 뿐이다.
엄마는 딸이 자신의 인생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기를 바랄 것이다.
엄마가 되면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맨 뒤로 밀리는 자신을 지켜보며
나는 괜찮지만 딸은 그런 인생을 살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딸의 모습이 자신과 닮아가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엄마는 미안하다.
결국 딸도 자신의 모습을 닮게 한 것 같아서.
어쩌면 조금은 스스로를 더 챙기고
가족들보다 조금은 앞에 자신을 두는 삶을 살았다면
어쩌면 그랬다면
딸이 제 먹을 포도 한 송이를 앞에 두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며.
평생을 가족의 뒤에서 자신보다 그들을 더 아끼는 삶을 살았던 자신이
조금은 후회스럽기도 하다.
엄마는 그렇게 뒤늦은 후회를 한다.
하지만 엄마는 알까.
그런 엄마의 모습 덕분에
딸은 진짜로 가족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을 아끼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늘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게 해 준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