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의 협진
류마티스가 10년 정도 내 곁에 머물며 그 모습을 바꾸더니 최근 밀당을 시작했다. 놈이 멀어졌을 때 건강체와 다름없는 날을 보냈고, 내게 바짝 다가섰을 때 일상을 유지하지 못한 채 안방의 침대에서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자주 나타났던 증상은 아침에 발작적으로 다리나 발에 통증이 찾아와 신발을 신거나 걸을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증상의 발생 빈도가 높아져 궁여지책으로 -대학병원의 예약일이 너무나 먼 까닭에- 가까운 정형외과를 찾았다. X-ray촬영 후 결과를 보며 통증의 진위를 알아내지 못했고-류마티스의 세계를 모르는 정형외과 전문의- 나의 동의를 구한 후 통증이 있는 부위에 스테로이드를 주사했다. 2번째 찾아갔을 때, 그는 정형외과를 찾지 말고 류마티스내과 진료를 받으라고 진지하게 충고했다.
그 후로 곧 발작적 통증이 대학병원 주치의 진료 요일 정도는 가볍게 무시한 채 시작됐다. 대학병원 주치의 없는 날, 당일 진료가 가능한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역시 가지 않는 편이 나았다. 당일 진료가 가능했던 전문의가 내게 물었다.
“어디가 아픈가요?”
“여, 여기요.”
왼쪽 발을 가리키며 내가 답했다. 그녀는 크록스를 신고 있는 나의 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이런 신발을 신으니까 아프죠. 그리고 맨발이시네요.”
그날 아침, 발이 심하게 부어올라 손을 델 수도 없이 극한 통증이 있었고 양말은커녕 평소의 구두나 운동화는 신을 수조차 없었고 내 발보다 두 사이즈 큰 크록스에 간신히 발을 집어넣고 절뚝이며 간 참이었다. 예상치 못한 의사의 말에 나는 몹시 불쾌해졌다.
“아뇨, 아파서 이 신발을 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
“통증은 언제나 이유가 있어요. 양말을 꼭 신으시고 신발도 제대로 신고 다니세요. 여긴가요?”
촉진을 하는 것 같은데 역시 그녀는 환부를 누를 뿐, 내 표정을 살피지 않았다.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움찔하자 갑자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약을 이미 드시고 있네요. 진통제를 드리고 싶은데 기존의 약에 더 넣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요. 일단 더 두고 보시게요.”
내가 그녀를 만나려고 자동차로 몇 시간이 걸려 왔는지, 돌아가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몇 시간이 걸리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통증은 언제나 이유가 있다고? 류마티스 전문의가 할 말은 아니지. 내 통증에 이유가 있다면 이 병이 난치병으로 분류되진 않았을 테니까. 그녀는 확실히 나의 통증에는 관심이 없었고 내 맨발과 크록스에 집착했던 게다. 삶에 대한 애착이 심해진 감성적인 나에게 의사는 심하게 이성적이었고 그 이성이 머물렀던 곳 역시 나로서는 무용한 지점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새로운 부위의 통증, 왼쪽 손목 수근골과 척골이 만나는 부위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부어올랐고, 엄지손가락 뿌리 부분이 대칭적으로 튀어 오르더니 붓기 시작했다. 손목을 비틀어 사용하거나 무거운 것을 받쳐 들어야 할 때, 혹은 손을 바닥에 짚을 때 극한 통증이 일었다. 통증이 오르고 내리는 사인곡선(sine curve)을 그리며 아름답고 투명하게 자리 잡았다. 대학병원 류마티스 담당의에게 이 통증을 말해보았으나 그 통증은 류마티스의 통증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손을 뒤로 젖히는 것이 어려워지자 화장실에서 용변 후 뒤처리가 불가능해졌다. 평생 사용해 오던 손을 통증으로 못쓰게 되어 다른 손을 써보면 안다. 한없는 미숙함에 길들이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다쳐 숟가락질을 왼손으로 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젓가락질이 안 된다면 포크를 사용하는 등 차선의 방법이 있다. 용변의 뒤처리는 질적 차이가 존재해선 곤란하므로 인간 존엄에 관한 문제가 불거진다.
한쪽 편향이 건강체인 상태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통증으로 인해 한 부위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다르다. 더구나 치료 방법이나 통증 해소 방법이 묘연해졌을 때 느껴지는 절망감은 생각보다 큰 우울감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흔히 일어나는 일상다반사에서 불편감을 넘어선 우울감이 문득 기다렸다는 듯 찾아든다.
너무나 심한 통증을 견디다 못해 집에서 가까운 정형외과 의원을 찾았다. X-ray를 찍은 후 진료받았다. 나를 맞는 그의 모니터에는 나의 손목뼈와 손가락의 뼈가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 여기 뼈가 위로 솟듯이 올라 있죠, 잉. 이것은 원래 여기에서 끝나야 하는 것인데 위로 솟아 있단 말이요. 치료하려면 이제 이것을 조금 잘라내고 단면을 맞붙여서 길이를 맞추면 돼요. 여기 이것은 다른 고등학생 손목인데 그 치료를 받은 것이거든요. 이런 경우가 흔하다 말이요. 수술을 받아야 해요. 날짜를 잡읍시다. 그리고 그렇게 심하게 아프문 보조기를 쓰셔야 돼. 조금 나아졌다 하면 빼시믄 돼. 아셨죠, 잉?”
의원에서 내어 준 회색 손목 보조기를 착용했다. 손바닥 부분에 얇고 넓은 금속성 지지대가 받혀있어 통증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후 몇 주 뒤, 대학병원 류마티스 주치의의 진료를 받았다. 동네 의원에서 진단한 것이 맞다면 대학병원 정형외과에서도 수술을 권할 것이다. 수부 수술은 이십 대에 이미 받아봐서 안다. 복잡하고 위험하며 섬세한 부위여서 수술이 필요하다면 수부 전문가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했었다.
류마티스 주치의에게 통증의 양상을 말한 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정형외과 협진을 요구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이 통증은 류마티스가 아니라고. 정형외과 진료를 받아보고 싶어요.”
그는 조금 당황하며 시스템상으로 정형외과 협진을 신청해 주었다. 진료는 당일 안되고 수부 전문의가 출장이 잡혀있어 두 달 후나 가능했다. 나는 그날 진료를 받겠다고 예약을 했다. 기다리던 그날이 오고 나는 새벽에 일어나 버스와 택시를 이용해 대학병원 정형외과를 찾았다. 대기실에 앉아 있자니 전에 없이 마음속에 설렘이 일었다. 무언가 적극적인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은 내게 큰 위안이 되므로. 진료실에서 정형외과 수부 전문가가 내게 말했다.
“이 손은 이미 많이 망가졌어요. 80대 노인의 손이나 다름없다 생각하믄 돼요. 손을 많이 쓰시면 안 돼. 알겠어요? 그렇게 일을 할 수 있는 손이 아니거든요. 일을 하지 말아요. 그리고 손은 수술했을 때 반드시 잃는 것이 있는데 그럼에도 남는 것이 더 많다 생각될 때 수술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 손은 류마티스에 의해 다발적으로 염증이 일어나고 있고 이미 망가진 부분도 있어요. 수술 후 양상에 대해 예측을 하기 어렵고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것이므로 수술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원한다면 약을, 가만있어 봐라, 혹시 처방전 가져왔어요?”
“아뇨, 같은 병원 협진인데 제 처방전 보실 수 있지 않아요?”
그가 아차 싶은 얼굴로 마우스를 바닥에 긁고 버튼을 딸깍이기 시작했다.
“높은 수위의 약을 처방받고 있어요. 우리가 줄 수 있는 약이 없습니다. 일을 할 수 없는 손이다, 생각하시고 일하지 말아요.”
돌아오는 우등버스 안에서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혼자였다면 소리 내어 울었을 것이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말도 잘하지. 일하지 말라. 일하지 말라는 것은 왠지 그만 살라는 말처럼 들린다. 나는 살아 있고 또한 감당해야 할 내 몫의 노동이 있다. 그것을 하지 않고도 살 수가 있는 것인지 아니, 그것을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다. 나는 늘 아픈 사람이 아니다. 대개 아프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만큼 생명이 위중한 상태가 아니며 자리를 보전한 채 여생을 마쳐야 할 정도로 활동력 없는 사람이 아니다. 손을 쓸 수가 없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손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 지점이자 마무리의 의미다. 시작과 마무리가 공존하는 손을 의사의 조언대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왠지 그날은 대학병원에 되돌아가 나를 진료한 의사들을 앉혀 놓고 내가 스스로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나를 위해 얼마나 애쓰지는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유치하고 어리석게도.
항상 감사한 존재인 류마티스 주치의는 나의 모든 통증에 답하지 않는다. 이것은 류마티스가 맞지만 저것은 류마티스가 아니다,라고 구분한다. 나는 그럼 ‘류마티스가 아닌’ 통증을 누구에게 보여야 하나 묻고 싶지만 묻지 못한다. 의사의 모든 행위와 말은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확실성을 감지해야만 하므로 자신의 영역이 아닌 것에 대해서 확실성을 감지한다는 것이 대단히 위험할 것이라는 점 정도는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류마티스는 협진이 필요한 병증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분명히 내 몸은 여러 염증으로 문제가 있음을 표현하고 있고 류마티스 주치의는 그 모든 염증이 류마티스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한다. 그렇다면 류마티스 영역 밖의 염증을 담당하는 전문의가 있을 것이 아닌가? 나는 그것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마침내, 어쩌면, 새로운 치료의 방향이나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