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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폴 Oct 19. 2020

메이드 인 소사이어티

영화 <화이>

너는 다르다고 너는 순수하다고? 아버지가 더러워? 창피해? 아버지들이 괴물인데 너도 괴물이 되어야지. 


- 석태가 화이에게, 영화 <화이> 




영화 <화이>의 주인공 화이는 ‘낮도깨비’란 범죄 집단이 유괴하여 키운 소년이다. 화이는 자신의 과거를 모른 채 다섯 명의 범죄자들을 양아버지로 여기며 자라왔다. 양아버지들은 그에게 정상적인 교육 대신 범죄 기술을 가르쳐준다. 낮도깨비의 우두머리인 석태는 화이를 자신들과 같은 범죄자로 키우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노부부를 제거해달라는 살인청부를 받은 석태 일당이 범행 현장에 화이를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화이는 석태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한 남성을 총으로 살해한다. 그런데 나중에 자신이 죽인 그 남성이 바로 오랜 기간 유괴된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자신의 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석태가 고의로 화이를 유도하여 친부를 살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일로 극도의 분노에 휩싸인 화이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을 키워 준 양아버지들을 한 명씩 제거해 나가기 시작한다. 

  

범죄자는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범죄자로 태어나는 걸까? 인간의 범죄성이 양육과 본성 중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느냐의 문제는 적어도 범죄학계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이다. 범죄사회학에서는 그릇된 양육방법, 어린 시절의 학대 경험, 부모와 관계 단절, 학교 부적응, 또래의 부정적 영향 등 성장과정에서 겪게 되는 부정적 경험이 평범한 사람을 범죄자로 성장시킨다고 보는 입장을 취한다. 관점을 전체 사회로 돌리면 빈곤, 불평등, 차별, 사회격변, 물질만능주의, 공동체 해체 등이 범죄자가 양산되는 구조적, 문화적 환경을 조성한다고 여긴다. 


이에 반해 범죄생물학과 범죄심리학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인간의 타고난 기질에서 범죄의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유전자 속에 담겨 있는 정보가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요체라고 간주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범죄 기질이 가깝게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멀게는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적응과정 속에서 장구한 세월에 걸쳐 진행되어 온 진화의 산물이다. 


화이는 석태에 의해 살인 병기로 양육된다 - 영화 <화이>


영화 <화이>는 범죄성의 기원을 둘러싼 대립되는 두 관점을 잘 드러낸다. 화이의 친부 형택과 낮도깨비의 우두머리 석태는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함께 자라난 친구 사이다. 보육원 이사장의 아들인 형택은 신앙심이 깊고 동생들을 잘 돌보는 착한 청소년이었다. 이에 반해 석태는 엄친아인 형택을 선망과 질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점점 성격이 비뚤어져갔다. 급기야 석태는 자신이 관심을 두었던 여학생이 형택을 좋아하자 질투심에 그 여학생을 강간하고 범행 현장을 목격한 형택의 다리를 쇠갈퀴로 찍어 불구로 만든다. 그런데 놀랍게도 형택은 이런 끔찍한 사건을 겪은 후에도 석태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 그럴수록 석태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더욱 악랄하고 잔혹해진다. 

  

석태가 화이를 납치하고 자신을 닮은 범죄자로 키우려 한 데에는 형택을 향한 뿌리 깊은 경쟁심이 도사리고 있다. 아마도 형택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화이를 괴물로 만들어 타고난 선한 본성 따위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선한 행실로 열등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형택을 비아냥거리고 싶었을 것이다. “자 봤지? 사람은 다 똑같아. 깨끗한 척해도 똥밭에서 구르면 몸에서 냄새가 나는 법이지.” 자기가 낳은 아들의 손에 살해당하는 형택을 바라보며 석태는 짜릿한 승리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생물학적 DNA가 패배하고 환경적 DNA가 승리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선한 인간도 자신처럼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화이는 길러준 아빠들과 같아지길 끝내 거부한다. 그럴수록 석태는 조바심에 화이를 더욱 다그친다. “너는 다르다고 너는 순수하다고?”, “아버지가 더러워? 창피해?”, “아버지들이 괴물인데 너도 괴물이 되어야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침내 도깨비 아빠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훌륭한 살인 병기가 된 화이를 바라보며 석태는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너도 이제 나와 똑같아졌잖아.”



화가와 도화지


존 로크(John Locke)는 인간의 성격과 행동이 전적으로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입장을 취한 철학자 중 하나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마치 백지상태와 같다. 갓 태어난 아기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깨끗이 비워있는 공간은 그 아이가 삶을 통해 겪게 되는 경험으로 채워져 나간다. 


마음이 이른바 백지라고 가정해보자. 이 백지에는 어떤 글자도 적혀 있지 않으며 어떤 관념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하여 이 백지에 어떤 글자나 관념이 있게 되는 것일까? 마음은 어디에서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갖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나는 한 마디로 경험에서라고 대답한다. 

- 존 로크 

  

경험 이전의 마음은 흔히 ‘타불라 라사’(tabula rasa)로 묘사된다. 라틴어인데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서판(書板)’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글을 쓰기 위해 밀랍으로 만든 작은 서판을 사용했다. 서판은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했는데 글을 새로 쓰려할 때마다 밀랍을 녹여서 표면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다. 타불라 라사는 이처럼 깨끗하게 지워져 있어 새로운 글을 쓸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를 의미한다. 로크는 이렇게 비어 있는 서판과 같은 마음을 채우는 것이 바로 인간의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마음과 행실이 악하다면 이는 타고난 악한 본성 탓이 아니라 마음이 악한 경험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도 인간의 본성에 대해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자연 상태 속 인간은 평화롭고 비폭력적이었다. 스스로를 사랑했고 그만큼 타인도 배려할 줄 알았다.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동정심을 느끼는 선한 존재였다. 문명사회가 세워지고 탐욕, 이기심, 폭력성에 의해 타락되기 전까지 인간은 소위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이었다. 자연 상태는 인간이 선악을 알기 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연 상태 속 인간이 악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선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악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의하며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나무 열매를 따 먹자 비로소 선악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에 죄의 씨앗이 잉태된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그런데 원시 상태의 사람들만큼 온순한 자들이 없었으니, 그들은 자연에 의해 짐승들의 어리석음과 문명인의 꺼림칙한 지식의 중간에 놓여 본능과 이성에 따라 자기를 위협하는 악으로부터 몸을 수호하는데 그쳤고, 타고난 연민으로 인해 해를 끼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었으며, 남에게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해칠 마음이 들지 않았다. 

- 장 자크 루소

  

인간 정신이 타불라 라사와 같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 사람들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다. 심리학자 존 브로더스 왓슨(John B. Watson)은 인간 행동의 원인을 인간 내부의 정신상태가 아니라 외부 자극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 행동이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극의 변화를 통해 얼마든지 조종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왓슨은 생후 9개월 된 아기 앨버트를 데리고 흥미로운 실험을 실시한다. 


처음에 앨버트는 어떤 동물이나 물건이던지 거리낌 없이 손을 뻗어 만지는 아기였다. 흰 쥐나 강아지를 만지는데도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실험이 시작되었고 앨버트가 흰 쥐를 만지려고 할 때마다 쇠막대를 두드려 그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같은 자극을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수차례 반복했다. 그런 후 앨버트에게 쇠막대 소음 없이 흰 쥐만을 보여줬다. 그러자 아기는 울음을 터뜨리며 겁내기 시작했다. 더욱이 앨버트가 두려워한 대상은 흰 쥐만이 아니었다. 흰 쥐에 대한 공포가 토끼, 개, 모피코트와 같이 털이 있는 동물과 사물에게로 확장되었다. 심지어 흰 수염 달린 산타클로스 가면조차 무서워하기에 이르렀다. 연구 결과에 한껏 고무된 왓슨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나에게 열두 명의 건강한 아기를 주고 내가 직접 하나하나 꾸민 세계에서 그 아기들을 키우게 한다면, 장담하건대 나는 어떤 아기라도 그 재능, 기호, 경향, 능력, 소질, 조상들의 경력과는 무관하게 내가 선택한 유형의 사람 – 의사, 변호사, 예술가, 상인, 심지어 거지나 도둑 –으로 길러 낼 수 있다. 

- 존 브로더스 왓슨  

  

환경의 영향에 대한 왓슨의 주장이 다소 극단적으로 들리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범죄학자들은 어린 시절의 양육환경이 아이의 범죄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대해 대체로 수긍한다. 예를 들어, 범죄학자 트레비스 허쉬(Travis Hirschi)와 마이클 갓프레드슨(Michale Gottfredson)은 낮은 자아 통제력이 모든 범죄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범죄는 즉각적인 만족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다. 그런데 이러한 단기적 욕구가 발동할 때 이를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자아 통제력이다. 허쉬와 갓프레드슨에 의하면 자아 통제력은 대략 5세 이하의 아동기에 형성되는데, 일단 한번 형성된 자아 통제력은 어른이 되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속담처럼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것이다. 

  

낮은 자아 통제력의 가장 주된 원인은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다. 타고난 기질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부모의 적절한 양육을 통해 아이의 태도와 성격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허쉬와 갓프레드슨의 주장이다. 그릇된 양육방식을 요약하면, 첫째, 아이의 행동을 세심히 관찰하지 않거나, 둘째, 아이가 잘못된 짓을 저질러도 알아채지 못하거나, 셋째,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도 제지하지도 혼내지도 않는 태도이다. 결국 아이의 행동에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아이의 성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자아 통제력이 낮은 사람들은 장기적인 성취에 무관심하고 손쉽게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지식, 기술을 갖추기 어렵다. 삶의 방식에 있어서도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위험과 스릴을 즐긴다.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다. 참을성이 부족하고 충동적이기 때문에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눈앞에 놓인 범죄나 일탈의 기회에 쉽게 이끌려 들어간다. 타인과 대립하는 상황이 오면 쉽게 폭력을 동원해 충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어린 시절의 자아 통제력은 그 사람의 일생을 통해 전 방위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의 한 연구는 1천 명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어렸을 적 자아 통제력과 서른두 살의 성인이 되었을 때 삶의 방식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바 있다. 허쉬와 갓프레드슨의 주장처럼 자아 통제력이 가장 낮은 집단의 범죄자 수가 가장 높은 집단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었다. 자아 통제력이 낮은 아이들일수록 성인이 되어서 비만이 되거나 성병에 감염되거나 마약 또는 알코올에 중독될 위험성이 높았다. 자아 통제력은 성인기의 재정 상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낮은 자아 통제력의 아동들은 성인이 되어 저소득 무주택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이들 중에는 홀로 자녀를 키우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아동기에 형성된 자아 통제력은 그 사람이 성인이 된 후 범죄성뿐만 아니라 건강상태, 재정상태, 결혼 관계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준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결과이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 바로 아동기의 부모 양육이다. 부모는 아이라는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넣는 화가인 셈이다. 



호모 레플리쿠스


2002년 2월 10일 미국 뉴욕 주의 한 교도소 감방에서 살인범 잭 애벗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한 때는 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었지만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뒤 자살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잭은 태어나자마자 위탁가정에 맡겨졌고 열두 살부터는 비행소년이 되어 소년원에서 살았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훔친 수표를 부정 사용한 죄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복역 중에는 다른 재소자를 칼로 찔러 죽이기까지 했다. 그 후 가까스로 교도소를 탈출한 잭은 은행강도짓을 하다가 다시 붙잡혀 교도소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잭은 독서에 심취하게 된다. 


한 번은 유명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노먼 메일러에게 편지를 보내어 교도소 안의 생생한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때부터 잭은 매번 20여 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메일러에게 보냈고 잭의 유려한 글 솜씨에 메일러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 메일러는 잭의 편지를 엮어서 「야수의 뱃속에서」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했다. 책은 곧바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잭은 일약 재능 있는 젊은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더욱이 메일러의 적극적인 지원 덕택에 놀랍게도 얼마 후 잭은 가석방을 받아 풀려나게 되었다. 출소 직후 잭은 곧바로 뉴욕시로 가서 문학계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하였다. 

  

그런데 가석방으로 풀려난 지 불과 6주가 지난 어느 날 맨해튼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잭은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화장실 사용 문제로 웨이터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가지고 있던 칼로 그를 살해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범행 바로 다음날 뉴욕 타임스에 「야수의 뱃속에서」에 대한 비평가들의 극찬이 실렸다. 전날 밤 발생한 잭의 범행이 미처 세상에 알려지기 전이었다. 몇 달 후 잭은 도주 중 경찰에게 붙들려 다시 교도소로 보내졌다. 스타 작가의 갑작스러운 몰락이었다.  

  

그런데 잭은 재판에서 자신의 폭력성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열두 살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소년원, 교도소 등 정부시설에 수용된 채 보냈는데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폭력을 학습하게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맨해튼 카페에서 저지른 살인도 이러한 학습의 결과일 뿐이다. 어려서부터 폭력이 난무하는 교도소 환경 속에서 성장해야 했고 위협적인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 폭력뿐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체득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교도소는 학교였고 그는 착실한 학생이었을 뿐이었다. 

  

조폭 두목의 착실한 학생이 된 말리크 - 영화 <예언자>


영화 <예언자>는 교도소라는 냉혹한 환경 속에서 한 소년이 거물급 범죄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랍계 청년 말리크는 어린 시절 고아원을 전전하다가 열아홉 살에 6년형을 선고받고 소년원에서 교도소로 이감된다. 두려움에 가득 찬 말리크에게 코르시카계 조폭 두목이 접근해 살인을 청탁한다. 그리고 말리크는 그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를 계기로 말리크는 두목의 신임을 얻게 되고 본격적으로 범죄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조폭들은 백지상태와 같이 순진한 말리크를 노련한 범죄자로 훈련한다. 살해할 대상에게 접근하는 법, 입 안에 숨긴 면도칼로 순식간에 상대방의 목을 따는 법, 마약 밀거래하는 법을 말리크에게 차근차근 가르친다. 말리크는 가르치는 모든 것들을 빠르게 배워간다. 

  

말리크가 배운 것은 범행 기술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두목을 위해 일하는 도구로서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했다. 주어진 기회와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야망을 키워간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 두목을 배신하고 스스로가 범죄조직의 우두머리가 된다.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를 나서는 말리크는 더 이상 예전의 미숙하고 순진했던 소년이 아니었다. 교도소 안에서 6년의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하고 사회로 귀환하는 야심만만하고 냉혈한 거물급 범죄자였다.

  

에드윈 서덜랜드(Edwin Sutherlnad)는 범죄행위가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이론으로 발전시킨 범죄학자다. 그는 범죄가 주로 친밀한 집단 내에서 의사소통 과정에 학습된다고 주장했다. 학습내용에는 구체적인 범죄 기술뿐만 아니라 범행 동기나 범행 욕구, 범죄를 정당화하는 태도 등도 포함된다고 보았다. 서덜랜드 이론의 핵심은 범법행위를 긍정하는 가치나 태도에 더 자주 오랜 기간 노출될수록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언자>의 말리크가 소년일 때에는 잡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조직폭력배들과 접촉하고 어울리게 되면서 폭력을 단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소극적 수단이 아니라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서덜랜드는 범죄학습이 다른 분야의 일반적 학습과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범죄를 배우는 것이나 요리를 배우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언자>에서도 이러한 서덜랜드의 주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말리크가 교도소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세 유형의 학습이 동시에 진행됨을 알 수 있다. 살해하는 방법이나 마약을 밀거래하는 방법 등 범죄학습이 첫 번째 유형이다. 다음으로 말리크는 틈틈이 재소자들을 위한 교육과정에 참여해서 글쓰기와 읽기, 경제학 등을 배운다. 마지막 유형의 학습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이루어진다. 말리크는 아랍 혈통의 프랑스인이면서도 교도소 내에서는 코르시카계 조직폭력에 가담하고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랍계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점차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범죄는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단순모방을 통해서도 학습될 수 있다. 그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학습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의 유명한 보보 인형 실험은 모방에 의한 폭력 학습을 잘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성인 모델로 하여금 보보 인형을 마구 때리는 장면을 연출하고 세 살에서 여섯 살배기 아이들에게 그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보 인형이 있는 같은 방에 들여보낸 뒤 행동을 관찰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좀 전에 성인 모델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보보 인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보보 인형에게 장난감 총을 겨누는 등 모델이 연출하지 않은 더 높은 수위의 공격적 행동을 보이기까지 했다. 단지 관찰만으로 폭력행위를 학습한 것이다.

  

인간의 모방 능력에 대한 뇌신경학적 설명도 있다. 1990년대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신경생리학자들은 원숭이의 뇌를 연구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원숭이가 직접 어떤 행동을 할 때와 다른 개체의 그러한 행동을 관찰할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신경세포가 동일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나중에 ‘거울 뉴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세포는 뇌가 다른 개체의 행동을 관찰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행동하는 것처럼 인식하도록 만든다. 뇌세포의 작용으로 인간은 관찰을 통한 간접경험만으로도 학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 폭력이 사람의 폭력성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범죄학계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이다. 2013년 미국 코네티컷 주의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 폭력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 사건에서 범인 애덤 란자는 무려 27명의 학생과 교사를 살해한 후 자살했다. 그런데 범인이 살던 집 지하실을 수색했더니 다수의 폭력 비디오 게임이 발견되었다. 란자가 평소 혼자서 컴퓨터 게임으로 슈팅 연습을 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범죄와의 관련성이 의심되었다. 


한 해 전인 2012년에는 미국 콜로라도 주 한 소도시의 극장에서 전례 없는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해 12명이 사망했다. 당시 극장에서는 배트맨 시리즈 중 하나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상영되고 있었다. 범인 제임스 홈즈는 영화 속의 악당 복장을 하고 상영관에 침입해 영화를 보고 있던 관객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했다. 그의 범행수법이 어쩌면 영화로부터 영감을 얻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좀 더 오래된 사례로는 1971년 영국에서 상영된 세계적인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가 있다. 개봉 후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갱을 흉내 낸 폭력범죄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러자 영국 사회 전반에 영화가 폭력을 조장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급기야 감독이 자진해서 상영을 중지하도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미디어 폭력의 영향은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서도 입증되어 왔다. 한 실험 연구에서는 5세에서 11세 사이 아동들에게 약 20분 정도 분량의 폭력영화를 보여 준 후 다른 아이들과의 학업활동을 관찰하였다. 예상대로 폭력영화를 본 아동들은 비교집단 아동들에 비해 거칠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훨씬 더 많이 했다. 미디어 폭력이 두뇌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이 연구에서는 70명의 청년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각각 폭력적 비디오 게임과 비폭력적 비디오 게임에 약 25분가량 노출시켰다. 그러고 난 뒤 이들에게 평범한 비폭력적 사진과 폭력적 장면이 담긴 사진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뇌파 운동의 변화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 폭력적 비디오 게임 집단의 청년들이 폭력적 사진을 보았을 때 뇌파 변화의 폭이 비교집단에 비해 적었다. 뇌가 이미 폭력적 비디오 게임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폭력에 무덤덤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병든 사회 속 아이들


영화 <시티 오브 갓>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최대 빈민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곳의 주거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지만 경찰은 뇌물을 받아먹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방치된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무리 지어 다니며 돈을 빼앗고 물건을 약탈하기에 바쁘다. 정글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은 서로에게 총을 쏴대며 일찌감치 생존의 방식을 터득해간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청년이 되었고 같은 곳에서 마약을 팔아먹고 살아간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을 남들보다 앞서 깨달은 몇몇 겁 없는 녀석들이 마약상들을 모조리 죽이고 구역을 접수한다. 점차 갱들 간의 영역 다툼이 고조되더니 결국 대립하던 두 갱단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전쟁에 동원되고 그들 손에 총이 주어진다. 일 년간 이어지던 충돌은 한바탕 격전이 벌어진 뒤 구역을 온통 피로 물들인 채 파국을 맞이한다. 갱단은 와해되고 보스들은 죽임을 당한다. 주인이 사라진 거리에 총을 든 아이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


정글 속 소년들이 살아가는 법 - 영화 <시티 오브 갓>

  

브라질에서는 슬럼을 ‘파벨라’라고 부른다. 파벨라는 1960년대부터 농민들이 도시로 대거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졌고 가난한 사람들이 이곳 빈민촌으로 밀려들었다. 영화 <시티 오브 갓>의 공간적 배경 역시 이러한 대규모 빈민촌 중의 하나다. 파벨라는 극심한 빈곤, 높은 실업률, 인종차별, 빈부격차, 무질서로 악명이 높은 지역이다. 이곳의 범죄문제는 브라질 경찰조차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특히 마약 밀거래를 둘러싼 갱들 간의 이권다툼으로 총성이 그칠 날이 없다. 2017년 브라질에서는 총 63,880명이 살인으로 사망했는데 하루 평균 175명꼴로 살해된 셈이다. 살인율로 계산하면 인구 10만 명당 30.8건으로 1.7건에 불과한 한국보다 18배가 넘는다. 살인사건의 상당 부분은 파벨라에서 벌어지는 라이벌 갱들 간의 마약전쟁에서 발생하고 있다.    

  

일찍이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범죄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란 그저 부정형의 재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영향에 의해 주조되고 변형되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 본성이 사회현상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현상의 결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뒤르켐의 대표 저작인 「자살론」은 바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경험적 근거에 해당한다. 자살처럼 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현상조차 알고 보면 사회적 원인에 뿌리를 둔 사회현상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이런 모든 사실에서 나오는 결론은 사회적 자살이란 사회학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시기에 그 사회의 정신적 상태가 일시적인 자살의 빈도를 결정한다. 따라서 각 사회는 그 국민을 자살로 이끄는 일정한 양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집합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자살자의 행동은 얼핏 보기엔 개인적 기질을 나타내지만 실은 그들이 외적으로 표출하는 사회적 조건의 보완이며 연장인 것이다.

- 에밀 뒤르켐 

  

뒤르켐은 개별적인 자살 사례들의 원인을 이해하는 일과 사회 전체의 자살률 분포를 설명하는 일은 별개라고 인식했다. 각각의 자살 사례를 놓고 보면 과도한 빚, 우울증, 가정불화, 애정문제 등 극히 사적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한 사회의 전체 자살률 변동이나 서로 다른 사회 간의 자살률 차이는 이러한 개인적인 자살 동기로만 설명될 수 없다. 자살의 전체 발생량을 결정짓는 요인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인 상황이다. 뒤르켐은 이러한 보편적 상황으로 사회적 연대감의 약화와 개인주의 강화, 그리고 급격한 사회변화로 인한 도덕적 규제의 부재 상태, 즉 ‘아노미’를 제시했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분업이 심화되고 사람들 간의 집합 의식이 약화되었다. 반면에 무제한적 욕구를 추구하는 개인의식은 강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사람들의 행동에 제어장치 역할을 하던 전통적 사회규범이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를 뒤르켐은 ‘아노미’라고 불렀다. 즉 ‘사회규범의 부재 상황’, ‘사회규범의 모라토리엄’이다. 아노미 사회에서 발생하는 자살과 범죄는 일종의 사회적 병이나 마찬가지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환절기에 신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급속한 사회변화로 인해 집합 의식과 사회적 도덕규범이 약화되어 범죄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진 상태가 아노미이다. 그리고 사람이 환절기에 쉽게 감기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노미 사회에서는 자살과 범죄와 같은 일탈행위가 더 쉽게 발생한다. 

  

이러한 뒤르켐의 시각에는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사회는 마치 생명체와 같고 사회제도는 신체기관이며 개인은 세포에 해당한다. 사회에 속한 개인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세포가 신체의 일부로 생성되듯이 개인도 사회의 일부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존재해 있는 사회적 조건과 제도에 포섭된다. 한국에 태어난 사람은 한글이라는 기호체계와 원화라는 통화체계에, 미국에 태어난 사람은 영어라는 기호체계와 달러라는 통화체계에 속하게 된다. 가부장적 전통이 뿌리 깊은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은 관습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의무와 도리가 도덕적으로 강제된다. 그런 의미에서 부권에는 생물학적 의미와 사회학적 의미가 동시에 함유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유기체는 상호의존성을 특징으로 한다. 신경계, 소화계, 면역계는 하나의 유기체 안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한다. 몸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신체의 모든 기관과 세포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속한 개인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바이러스가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듯 사회적 요인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뒤르켐은 이러한 보편적 상황이 개인의 의식에 반영된 결과를 살펴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보편적 상황 그 자체를 조사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체온을 일일이 측정한 뒤 왜 체온이 높은지 원인을 찾으려고 개개인을 검사하는 건 부질없는 노력이다. 그냥 욕탕 물의 온도를 재보면 체온이 높게 나오는 이유는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뒤르켐이 말한 보편적 상황이 도시 전체가 아니라 한 도시 안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시티 오브 갓>의 파벨라가 바로 이러한 사례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시티 오브 갓’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서편 외곽에 위치한 대규모 빈민촌의 이름이기도 하다. 시디 오브 갓은 1960년대 도시환경개선 차원에서 리우데자네이루 도심에 있던 슬럼을 도시 외곽으로 옮기면서 형성되었다. 당시 새로운 공공주택단지를 만들어 빈민가의 주민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그런데 ‘신의 도시’라는 뜻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이곳 주민들은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 지옥과 같은 환경에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치안당국의 공권력도, 지역공동체 차원의 통제력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이곳에서 어쩌면 주민들이 의지할 것이라고는 신의 자비뿐인지도 모른다. 

  

신의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천국과 같은 휴양 해변인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가 나타난다. 영화는 눈부시게 푸르른 바다와 새하얀 모래밭 그리고 해변 위를 뛰어노는 청소년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아름답게 묘사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피로 얼룩져 있는 신의 도시와 선명한 대조를 이룰 뿐이다. 바로 지척에 세계적인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의 화려한 불빛이 밤하늘을 밝히지만 신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외국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도심지 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신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폭력을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이다. 

  

왜 범죄는 같은 도시 안에서도 특정한 지역에만 집중될까? 1920년대 미국 시카고대학교 범죄학자들의 궁금증도 여기에 있었다. 당시 시카고는 미국의 다른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 남부에서 올라온 흑인들, 그리고 농촌을 떠나온 이주민들로 북적거렸다. 가난한 이민자들은 값싼 주거지를 찾아 도심으로 몰려들었고 그곳에 슬럼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민자 집단거주지에서 범죄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슬럼지역의 높은 범죄율이 그곳에 사는 이민자들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간 본성에 대한 우생학적 주장과 타 인종과 민족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초기 이탈리아 범죄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우생학자들은 유전적, 신체적, 인종적 특징 속에서 범죄의 원인을 찾고 있었다. 따라서 슬럼지역의 높은 범죄율은 범죄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한 지역에 모여 살면서 나타난 현상 정도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시카고대학교 범죄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시카고 시 우범지역의 범죄율 변화 추세가 이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민자 집중 거주지역의 주류 인종과 민족이 폴란드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중국인 등으로 계속해서 바뀌어 나갔다. 그런데 이 지역의 범죄율은 다른 지역보다 항상 높은 상태를 유지했다. 만약 생물학자나 우생학자들의 주장대로 범죄의 원인이 특정 인종이나 민족과 연관되어 있다면 지역주민의 변화에 따라 범죄율도 함께 변하는 게 상식적이다. 시카고대학교 범죄학자들은 범죄의 원인이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지역공동체 자체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해당 지역에 어떠한 생물학적, 인종적, 심리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누가 거주하던지 그 지역의 환경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범죄율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환경과 조건 때문에 한 도시 내에 우범지역이 형성되는 것일까? 시카고대학교의 클리포드 쇼(Clifford R. Shaw)와 헨리 맥케이(Henry D. McKay)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상당한 수작업이 수반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은 분석을 위해 약 5만 6천 건의 소년범죄 기록을 시카고 시의 법원으로부터 입수했다. 무려 30년에 걸친 방대한 기록이었다. 그리고 처벌 전과가 있는 청소년들의 주소지를 지도 위에 일일이 점을 찍어 표시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범죄지도를 그리기 위한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점들은 도심의 상업지역 외곽에 동심원 형태로 형성되어 있는 이민자 밀집지역에 새카맣게 집중되었다.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시카고 시의 우범지역을 시각적으로, 통계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쇼와 맥케이는 이렇게 확인된 우범지역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이 내린 결론은 ‘지역공동체의 해체’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지역공동체라면 주민들 사이에 일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자연스럽게 지역 구성원들은 지역공동체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의식하고 행동을 제약받는다. 만약 지역사회 공동의 이익을 해치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 그런데 해체된 지역공동체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공존하는 이곳에서는 대립되는 도덕적 가치로 인해 서로 간의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다. 극심한 빈곤은 사람들로 하여금 먹고사는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만들고 제한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 간의 충돌이 갈수록 격화된다. 수시로 낯선 얼굴들이 지역으로 유입되고 알고 지내던 이웃들은 각자 살 방도를 찾아 떠나간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지역공동체는 와해되고 주민들에 대한 사회규범의 영향력은 실종된다. 뒤르켐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국지적 아노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규범적 진공상태에 빠진 지역사회를 범죄와 무질서가 채워나간다.

  

미세먼지가 도시를 가득 메우면 시민들은 오염된 공기를 호흡할 수밖에 없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실내로 피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한 어떤 식으로든 미세먼지는 호흡기를 타고 나의 몸속으로 들어온다. 영화 <시티 오브 갓>의 네드는 파벨라에 살고 있지만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갱단의 두목이 자신의 여자 친구를 강간하고 가족을 살해하자 복수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갱들 간의 전쟁에 뛰어든다. 처음엔 무고한 사람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려 한다. 하지만 동료 갱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르면서 규칙에 예외가 생겨난다. 그러다가 은행을 터는 과정에 경비원을 고의로 사살하게 되고 이때부터 예외가 새로운 규칙으로 바뀐다. 사회규범이 힘을 잃은 곳에서 규칙과 예외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기만 하다. 그 속에서 개인의 신념에 의지해 도덕적 원칙을 지켜나가는 건 너무 버거워 보인다.  

  

<시티 오브 갓>에서 신의 도시가 처한 상황은 참으로 절망적이다. 마지막 격전에서 갱단의 보스는 가까스로 살아나지만 어이없게 조무래기 아이들 손에 최후를 맞는다. 돈벌이에는 마약이 제일이라며 이리저리 총을 흔들어대는 꼬맹이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가슴이 서늘하리만큼 오싹하다. 무리 지어 가는 녀석들의 뒷모습은 새로운 갱단의 탄생을 예고한다. 파벨라는 범죄자들이 양육되는 인큐베이터와 같다. 그곳에서 어린아이들은 마약과 폭력을 섭취하며 성장한다. 사회규범 대신 약육강식의 원리가 이들을 위한 교과서이자 행위준칙이다. 갱단들이 벌이는 마약전쟁은 배운 걸 실습해 볼 수 있는 훌륭한 기회다. 전쟁으로 죽어간 갱들과 이들이 흘린 피는 다음 세대 갱을 위한 거름이 된다. 이렇게 폭력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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