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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Apr 23. 2021

왜 유치원은 늘 부족하고, 부모들은 힘들어해야 할까?

공공보육의 대안으로 협동조합 유치원은 어떨까?

이사할 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어린아이를 맡길 수 있는 주위 여건이 되는지 여부다. 나름 보육환경이 좋은 지역으로 옮겨가더라도 새로이 진입하는 공공보육시설의 입소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한다. 애써 신청하다 보면.... 몇 번째가 아닌 몇백 단위에 머무른 경우를 많이 본다. 운 좋게 순위에 들어가더라도 동순위 추첨은 또 얼마나 가슴 떨리는 순간이던가. 추첨에서 떨어진 부모의 당혹스러움과 죄인처럼 느껴지는 심정은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입소가 무슨 로또 확률도 아니고,  대부분의 부모들의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뀐다.


다행히 우리 집은 다둥이 가족인지라 막내를 맡겨둘 어린이집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이 선순위가 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게 주어진 혜택에 불과하다. 일부에게 주어진 행운이 다른 이들에게 불행을 주는 것은 불편한 현실이다. 두 명 이하의 아이를 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오매불망 순번을 기다리다가 해를 넘기고, 결국에는 들어가기 쉬운 사립유치원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과 공간에 관한 모든 것. 즉, 보육문제다.


농경사회에서는 크게 고민이 되지 않았던 양육문제가 현대사회에서는 큰 문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때는 느슨하게 연결된 마을공동체가 있어 공동육아가 가능했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 시절의 얘기다. 부모들 또한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아이들로부터 눈길이 멀어지지 않았던 특수한 환경 때문이었다.(그래서 그때는 자기 먹을 건 자기가 갖고 태어난다는 얘기도 의미 있었다.)


2021년 대한민국의 어느 봄날.

길을 가는 어떤 부모에게 아이 키우는 어려움에 대하여 묻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운 고개를 가로로 세차게 내저을 것이다.(심지어는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은 한 마을이나 한 가정이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한 시대가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생계를 위해 집 밖에 나가 있고, 아이들은 각종의 보육시설이나 가까운 가족 또는 타인의 손에 맡겨져 있다. 가족을 포함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사회적 비용이나 마음 부담은 온전히 부모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의무교육이나 공적부조는 피상적인 구호에 불과할때가 많다. 어린 아이들의 일상을 살피기에는 부모들의 삶도 피곤함 그 자체여서 여러면에서 역부족이다.


아이들 보육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부모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아이들을 잘 자라게 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

종국적으로는 국가가 주도하는 공공보육이 그 답이다. 국가의 가장 큰 역할은 근간이 되는 국민의 숫자뿐만 아니라 양질의 생존환경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존환경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침입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구성원의 일상 속에 최소한의 고통만 남도록 배려해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생존이다. 그 생존에는 부모와 아이들의 온전한 일상이 핵심이 될 것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공공서비스의 보편성은 아이들 보육문제와 교육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고도 산업사회로 진입할수록 부모들의 경제활동은 더 바빠지고 삶의 여유는 줄어든다. 이러한 부모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더 양질의 환경에서 아이들을 자라게 할 수 있게끔 하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 주도의 보육은 복지국가의 최선봉이 되는 국가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부모들의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해주고 아이들을 전문가들의 손에서 제대로 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보육이다. 우리나라도 국가 총예산 중 보건복지나 행정 분야 다음으로 큰 분야가 교육분야다(예를 들어 2021년도 예산 558조원 중 약 71조원). 하지만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분야이면서도 가장 큰 불만을 남기는 것도 교육분야다. 저출산 시대에 부모에게 육아책임을 전담시키는 것은 시대적 요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모성 및 영유아 보호체계는 국가적인 과제임에도 여전히 미완의 상태에 머무른다.



아이들의 보육문제가 공적 영역에서 다루어지지 않을 때 아이들과 부모들은 시장논리의 광풍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일부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에 의해 보육의 본질이 훼손당했던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발생했던 사립유치원 운영과 관련된 개혁 3 법의 문제가 그 전말을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공공서비스인 보육문제의 보편성은 시장논리의 불가침 영역을 확보할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국가가 직접적으로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주위의 국공립 단설유치원을 보면 그 규모나 효과 측면에서 단연 획기적이다. 다만 단기간에 이러한 국가 주도의 공공보육환경 여건 조성은 어려울 수 있다. 이때 보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민관 합동의 보육시설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협동조합 형태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과도한 국가예산이 들지 않고서도 수요자나 수혜자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안중 하나다.


최근 경기도의회와 경기도교육청에서 주관하여 사회적협동조합 형태의 <협동조합 유치원>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는 국가 주도의 국공립 유치원 설립의 어려움과 사립유치원의 운영상의 폐해를 막기 위한 절충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형태의 유치원은 본질적으로 비영리법인이면서 학부모가 조합원이 되어 운영하는 구조다. 학부모와 조합에서 채용한 교사가 운영주체가 되어 국가로부터 일정 부분의 지원을 받게 되면 공공성과 투명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다.


협동조합형 유치원은 수혜자의 적극적 참여라는 측면에서 민주성을 확보하고, 공급자와 수요자의 일체성으로 인해 사익추구와는 거리가 멀어 현재의 사립유치원 형태의 폐단을 방지할 수도 있다. 또한 자발적이고 개방적 조합원 제도는 지역사회의 협동성과 사회안전망 구축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것이다.  


다만 비전문가인 부모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게 되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에서 이에 관한 각종 운영지원을 해주면 더 바람직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더불어 교육청 등 각종 지원기관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돌봄 교실, 방과 후 과정의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여 육아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지원을 하는 방안은 어떨까.


시설 확보 측면에서는 각종 초등학교 유휴시설과 국공유시설, 폐원한 유치원의 공공매입을 통해 유치원 측에 임대하면 된다. 단설 국공립유치원처럼 부지선정부터 건물 준공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도 현재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사회적 비용절감 효과도 크다. 유시민 작가도 이와 유사한 제안을 2017년 12월에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제안한 바 있다.


이처럼 민간이 주도하는 공공형 유치원이 많아지면 지금까지 다자녀 가족에 주어졌던 혜택이 더 많은 가정에 분배될 것이다. 사실 한 자녀 가정이나 다자녀 가정 모두 육아는 부담이다. 아이의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가정환경에 차별받지 않는 보육환경의 구축은 사회계층 간의 위화감 해소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장기적으로는 아이들이 행복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가 많이 만들어질 때 부모들의 삶의 만족도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보육환경은 아이들과 부모들, 선생님들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여건의 조성이다. 저출산 문제와 보육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공공보육시설의 확충이다. 어쩌면 예전보다 지금이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마을공동체가 노력해야 할 시대가 아닐까 싶다. 유아기부터 초등학교까지 전 과정의 공공보육이 가능한 시대의 도래를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아이들과 부모들의 평온한 일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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