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의 속도로 산다는 것

by 윤아영

이 나이의 속도로 산다는 말은, 더 느려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야 나에게 맞는 속도를 알아본다는 뜻에 가깝다.

빨라야 괜찮다고 믿었던 시간을 지나, 내 호흡이 어디서 끊기는지,

무엇을 지나칠 때 마음이 남는지 알게 되는 나이.

그 감각은 늦게 오지만, 한 번 오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메리 파이퍼는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다.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고를 수 있게 된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자유란 더 많이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더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와닿았기 때문이다.


젊을 때의 속도는 대부분 바깥을 향해 있다.

마감, 기대, 기준, 비교. 그 리듬에 맞춰 달리다 보면,

이 속도가 나에게도 맞는지 묻지 않게 된다.

질문은 늘 나중으로 밀린다. 대개 지칠 때에야 떠오른다.


이제의 나는 조금 다르다.

하루를 시작할 때 계획보다 먼저 상태를 확인한다.

오늘의 몸은 어떤지, 마음은 어디쯤 와 있는지. 그다음에야 하루의 속도를 정한다.

어떤 날은 빠르고, 어떤 날은 느리다.

그 변동을 실패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

이 나이에 얻은 가장 큰 변화다.

상담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만난다.

“예전 같지 않아서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

예전처럼 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사람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묻는다.

“그럼 지금은, 무엇을 더 잘하게 되었나요?”

질문이 바뀌면 표정도 바뀐다.

놓치던 신호를 알아차리고, 무리하지 않는 선을 가늠하고,

관계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능력.

속도가 느려진 자리에, 감각이 들어와 있었다.


메리 파이퍼는 또 이렇게 쓴다.

“중년 이후의 삶은 성장보다 통합에 가깝다.”

이 문장은 오래 남는다.

더해가는 삶이 아니라, 흩어진 조각들을 한 자리에 두는 삶.

일과 관계, 몸과 마음의 속도를 하나로 맞추는 일.

이 나이의 속도는 그 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이제 선택한다.

모든 초대에 응답하지 않기로,

모든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기로.

그 선택은 냉담함이 아니라 다정함에 가깝다.

나에게 맞지 않는 속도로 나를 끌고 가지 않겠다는 다정함.


이 나이의 속도로 산다는 것은,

결과보다 과정에 머무르는 용기를 갖는 일이다.

오늘의 상태를 존중하고, 내일의 에너지를 미리 당겨 쓰지 않는 태도.

빠르게 끝내는 하루보다,

무리 없이 이어지는 하루를 택하는 결정.


요즘의 나는 성취를 묻기보다 안부를 묻는다.

얼마나 했는지보다, 어떻게 지나왔는지.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맞아졌기 때문에

나는 예전보다 덜 조급해지고, 덜 흔들린다.


이 나이의 속도로 산다는 것.

그것은 늦어지는 삶이 아니라,

나를 놓치지 않는 삶이다.

그리고 그 속도에서,

나는 비로소 오래 숨 쉴 수 있게 되었다.

수요일 연재
이전 05화다정함이 닿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