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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Sep 06. 2024

맛있게 먹어요

제 음식에 특별한 맛이 담기기를 원합니다.

가끔 지인들을 불러 집에서 집들이 겸 음식을 대접하고는 합니다. 사람들과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것만큼 유대를 쌓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도 드물죠. 저는 요리를 좋아하고 제가 만든 요리를 남들과 나눠 먹는 것을 즐겁게 생각합니다. 요리하는 시간이나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은 저에게 많은 기쁨과 성취감을 가져다주죠. 그래서 저는 꽤 자주 요리를 합니다.


요리에 있어선 장비도 실력입니다. 그래서 저는 꽤 많은 요리 도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늘과 생강을 갈거나, 웰컴주스를 만들 수 있는 믹서기와 녹즙기도 갖추고 있죠. 그리고 계절마다 찾아오는 다양한 해산물들을 찔 수 있는 커다란 솥과 찜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을에 꽃게를 찌기도 하고 겨울에는 대게와 홍게를 가득 사서 찜기에 찌고 이웃들을 불러 함께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아끼는 것은 저의 이름이 새겨진 칼인데요. 저는 이 칼을 날카롭게 벼리기 위한 작은 숯돌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도구들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하나하나 사 모으다 보면 조금 더 요리에 집착하게 되는데요. 저는 그것이 요리 실력을 올릴 수 있는 비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리를 하니 자연스레 맛에도 민감해집니다. 예전에는 음식을 만들 때 나만 맛있으면 되지 하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주로 혼자 요리해서 혼자 먹던 시절이었죠. 가령 라면에 김치와 계란과 조개, 굴, 콩나물 같은 것을 마구 넣고 내 입맛에만 맞게 조리해서 먹거나 누가 봐도 망한 요리지만 이리저리 향신료와 소스를 들이부어 자극적으로 내 입맛에 맞게 개조해 먹곤 했습니다. 정말로 나만 맛있습니다. 나만 맛있는 그 맛을 간혹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지만 그들은 한입 혹은 두 입 겨우 맛을 본 뒤 짧은 한숨을 내쉰 다음 고개를 내젓고야 말죠. 짜게 혹은 맵게 내 입맛대로 맞춘 음식들은 안타깝게도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음식으로서의 명을 달리하고야 맙니다. 누구도 거들떠 봐주지 않기 때문이죠. 


친구들을 초청해 나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쓰라린 패배를 맛본 뒤 저는 레시피대로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계량을 위해 컵을 사고 스푼을 사고 다양한 도구들을 또다시 사들였죠. 쉬웠습니다. 인터넷에 널린 게 레시피였고 놀랍게도 레시피대로 만든 음식을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만 맛있는 음식이 아닌 모두가 맛있는 음식으로 거듭나고야 만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일 것 같은 맛이라는 취향도 결국은 어느 정도 정형화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지요. 한데 또 문제가 생기고야 말았습니다.


모두가 맛있는 그 음식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저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형화된 맛이 가진 맛있지만 아쉬운 그 무언가 때문에 저는 꽤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고야 말았습니다. 저도 참 이상하죠. 직업으로서의 요리사도 아닌 제가 음식에 만족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다시 혼자 먹던 시절처럼 이리저리 소스를 들이부어도 보았지만 솔직히 그런 요리는 이제 저도 더 이상 먹지 못할 정도의 음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레시피의 조합도 이리저리 바꾸어보았지만 맛의 공식만 무너질 뿐 제가 추구하는 '참된' 맛에는 다가가지 못하는 듯하였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오늘은 칼국수를 끓입니다. 멸치와 양파, 다시마 몇 개, 파뿌리 그리고 국간장과 액젓 약간을 넣고 팔팔 끓인 육수에 나만의 비법이라고 생각하는 조미료 몇 가지를 넣습니다. 육수를 우려내기 위한 재료들을 건져내고, 물에 씻어 전분을 제거한 칼국수 면을 넣습니다. 끝으로 파와 계란을 함께 넣고 중간불로 시간을 들여 면을 익히고 다 익으면 큰 그릇에 면과 국물을 먹기 좋게 옮겨 담습니다. 더운 날임에도 불 앞에 서서 긴 시간 공을 들여 준비한 칼국수 한 사발이 지금 제 앞에 있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우선 숟가락 가득 국물을 퍼냅니다. 마음속으로는 이 칼국수 국물 속에 정형화된 맛이 아닌, 나만 좋아하는 그 맛이 아닌 특별한 무언가가 담겨 있기를 바라며 국물을 입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입 안으로 들어온 칼국수 국물의 맛을 한참 동안 음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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