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당신도 들을 수 있는 질문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데 지금까지 아주 여러 개의 우물을 팠다. 미래보다 현재의 만족을 중요하기 생각했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보다 포기가 쉬운 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조직이라는 단체 생활에 나를 끼워 맞추다 보니 어느새 내 색깔이 사라지는 게 익숙지 않았던 탓이다.
본질적인 삶의 이유를 찾아서
언제부턴가 킨포크 매거진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삶의 작은 순간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는 킨포크 매거진은 다양한 일상 이야기와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매거진이다. 첫 시작은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농부, 요리사, 작가 등 40여 명의 지역주민이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하여 창간한 것으로 다양한 삶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다뤘던 잡지였다고 한다.
킨포크 매거진 같이 일상과 작은 것들에 찬사를 보내던 와중에 <와비사비 라이프>라는 책을 발간했다. 킨포크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줄리 포인터 애덤스는 유유자적하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 우리에게 삶의 멋을 전달해주고자 했다.
'와비사비'란 일본어 와비와 사비와 합쳐진 말이다. 와비란 단순한 것, 덜 완벽한 것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의미하며, 사비란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인 오래된 것, 낡은 것을 뜻한다. 전 세계를 누비며 본질적인 삶을 살아온 생활자를 만나온 저자는 와비사비가 단순히 미학적인 개념에 머무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도 깊숙이 들어왔음을 표현한다.
킨포크 매거진을 좋아하게 된 것도, 와비사비란 단어를 정감 있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본질적인 삶의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인지 포기가 쉬웠다. 물론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부족해도 덜 완벽해도 그게 인생이라 믿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돈을 덜 쓰는 사람들
시간적 여유가 생긴 프리랜서는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한다. 시간이라는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난 건 너무 행복하지만, 반대로 부족함이라는 속박의 굴레로 다시 나를 밀어 넣게 됐다. 예전만큼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있는 게 아닌, 매 달 다른 날짜에 나 스스로 들어오는 돈을 확인해야 한다는 새로운 어려움에 봉착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삶의 질이 높아졌냐며 질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 불과 2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땐, 이직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질문의 유형이 확연히 변한 걸 체감할 정도다. 최근 사회적으로 '프리터(Freeter)족'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통해 지인들의 질문의 이유를 알게 됐다. 프리터족이란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한시적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프리터족이 생활에 만족하는 1위로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기 때문'이란다. 남들에게는 불안해 보이는 삶일지 모르지만 프리터족은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 제약 없이 '나'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가 중요한 그들은 현재를 잘 사는 것이 바로 '미래'를 잘 사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며 삶을 살아간다.
프리터족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기분이 나쁘기보단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규범화시키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사람은 한 개체를 특징지어 분류화시킬 때 이해가 쉽다고 하니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니만큼 나를 이해하고 싶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그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무소유보다, 소유가 더 좋은 거 아니야?
아홉 살 인생을 살아온 난, 거실에 앉아 법정스님의 <무소유> 읽고 있는 아빠에게 위의 질문을 했다. 소유와 무소유의 관념을 설명하기에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아홉 살 인생의 내게, 아빠가 읽어주었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도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자연스레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필요'를 질문하는 사람이 되었다. 소유를 최소화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만으로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다. 그래서일까. 삶이 자유롭고 단순해지는 기분이다.
얽매이지 않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추구하기로 한 난, 베스트셀러였던 <무소유>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때 이해할 수 없었던 구절을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곱씹을 수 있게 된 건, 그만큼 집착하며 살았다는 반증이다.
제대로 된 월급을 받으며 집착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열심히 영업을 했고, 사람들을 만났는데. 내 실적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아픔. 고작 이 정도밖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허탈감. 그렇게 자꾸 숫자에 집착하게 되었고, 비교를 일삼았다. 팀원들은 더 움직이길 강요하며 나의 집착에 불을 지폈다. 압박은 또 다른 소유욕을 불러일으켰다. 불필요한 옷을 사서 입고, 비슷한 가방을 사고. 그렇게라도 나를 위로해 줄 방법을 찾아다녔다.
주객전도된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내게 채색된 색깔이 빛을 잃어갔다. 무엇인가를 가지면 가질수록 많이 얽혀있다는 법정스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간소화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무소유>의 의미를 또다시 생각해볼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싶다.
프리터족이 생겨나고, 미니멀리스트의 삶이 읽히는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매 순간 감사하며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본질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당신은 지금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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