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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l 02. 2019

선생님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학교로 출퇴근합니다

한 달 동안 수입이 없더라도 참아보자 다짐했다. 고작 돈 몇 푼을 벌겠다고 서로 얼굴도 못 보는 삶을 살지 않겠노라 다짐한 우린 서로를 살뜰히 살피기로 약속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매달 빠져나가는 생활비쯤은 충당할 수 있을 돈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우리의 생활비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주 운 좋게 행복주택이 되었기도 했고, 할부도 거의 다 끝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초 생활비를 모으기 위해 각자 일을 찾았다. 나름 전문 직종인 그는 대학 졸업장과 동시에 취득한 실용음악 준교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최근에 군악대를 제대해 2년 동안 지겹도록 합주를 한 덕분에 밴드부를 이끌 수 있는 능력도 업그레이드됐다. 그리고 사범대를 졸업한 난 그나마 자신 있는 글쓰기와 관련해 강의를 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우린 함께 매일 교육청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음악 교사 자리가 나오면 바로 남편 카톡 방에 공유했고, 반대로 토론 논술이나 사회 교사 자리가 나면 내게 카톡이 왔다. 시급 3만 원에 일주일에 기본 한 번에서 많으면 두 번 정도 나가게 돼 충분히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아주 운 좋게도 그와 나 역시 한 분야를 특화시키고자 하는 교장선생님의 관심 덕분에 꽤 많은 차시를 학교에서 수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우리는 학교에서 만큼은 선생님이라 불린다. 아이들은 내게 묻는다.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세요?"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사실대로 말해주고 싶지만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꿈 많은 어른인데, 꿈 이루고 싶어서 열심히 글 쓰고 있어." 그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우리 친구들 말고 또 다른 친구들 가르치고 있어요!” 아이들은 오후에만 학교에 오는 선생님의 행적이 궁금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순수하다. 호기심이 많고 알고 싶은 게 많더라.


초등학교 학생들은 아직 하나의 대화에 5분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보다 표면적인 것에 집중하는 특성이 있다. 어리다 보니 취향에 기반해 자기중심적인 대화를 하다 보면 수업의 맥이 끊길 때가 있다. 그럴수록 선생님인 내가 너그럽고 온화한 마음으로 대해야 조금이라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나보다 훨씬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걸 전제로 참고 포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떻게 아이들과 잘 호흡할 수 있을지 우리 부부는 자주 대화했다. 매일 두 끼 이상 같이 먹으며 눈을 마주할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대화의 양보다 질이 향상했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는 걸까. 우리 부부는 요즘 학교 수업을 나가는 게 즐겁다.


아름다운 연주를 위해선 화음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맞춰나가기 위해선 홀로 연주에만 몰두할 수 없음을 아이들은 연주와 토론을 통해 몸소 체득하고 있다. 주변 친구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발로 부지런히 박자를 세고 손으로는 분주히 자신의 악기를 연주한다. 토론도 마찬가지다. 내 주장만 해서는 좋은 토론이 될 수 없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공감하는 연습을 하며 아이들은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은 화음 맞추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아이들을 통해 변했다. 증거는 부부싸움에서 나왔다. 싸울 때마다 우리는 귀를 틀어막았다. 빗장을 잠그고 서로에게 열어주지 않았다. 결혼 초반에는 한 명은 식탁에 또 다른 한 명은 침대에 누워 다음 날이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지금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같이 대화를 하며 침대에 눕는다.

 

날이 좋지 않던 어느 날, 수업 전에 분위기가 축 처져있어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오늘 기분이 어때? 한 마디로 표현해볼래?” 한 마디 속에 자신의 기분을 응축하는 능력을 보며 자동으로 감탄사가 나온다. “빔 프로젝트 같아요. 그냥 틀면 나와요. 매일 똑같은 게 재생되고 있어요. 인생이 재미없어요.”


어쩌다 보니 우리 부부는 학교로 출퇴근한다. 처음과 점점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진귀한 경험을 하는 선생님이 되고 있다. 두려움보단 설렘을 가득 안고 학교에 나간다. 가르치는 내용을 걱정하고 중요시했다면 이젠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풍부한 표현을 기대하는 선생님이 되길 기대하며 오늘도 함께 출근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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