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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Dec 12. 2018

서울, 이곳은

응답하라 1994, tvN 2013

오늘도 지하철을 거꾸로 탔다. 서울엔 지하철 노선이 왜 이리도 많은지, 같은 노선에서 다른 목적지로 가는 열차가 있기도 하고 빠르게 가는 열차, 느리게 가는 열차가 나뉘기도 한다. 웬만큼 똑똑하지 않고서는 서울에서 살아가기 힘들 것 같다.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시리즈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리즈다. 어릴 적 들었던 가요가 흘러나오고, 그때의 패션, 자동차, 골목길들을 보여주며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향수를 자극한다. 삼천포가 신촌 하숙을 처음 찾아온 날, 서울역에서 신촌까지 가는 열차를 기다리다 하루를 다 보냈다. 택시를 타고 3천 원이면 갈 거리를 삼천포는 요금을 2만 원이나 냈다.



"저기요 신촌행 열차는 언제 오나요?
지금까지 의정부행 열차 총 3번 청량리행 열차 총 3번
그리고 의정부 북부행 열차 총 3번.
도대체 신촌행 열차는 언제 오나요?"



 나는 2008년, 스물 네 살에 서울로 올라왔다. 옷가지 몇 상자와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집을 떠나왔다. 기업들은 모두 서울에 몰려 있으니 자연스레 졸업 때 즈음이 되어서는 서울에 가야만 한다고 결정했다. 이제는 보기 힘든 서울시 메트로에서 나눠주는 종이 지하철 노선도를 해지도록 들고 다니며 여러 기업에 면접을 봤고, 곧 괜찮은 직장에 취직했다. 한 해를 휴학한 탓에 친구들보다 졸업이 1년 늦었고, 친구들이 벌써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친구네 자취방에 신세를 지게 됐다. 친구들과 함께 살던 집은 순환하는 2호선 신도림역에 내려 까치산행으로 갈아타야만 갈 수 있는 신월동이었다. 서울의 전철은 같은 승강장이면서 어떤 것은 급행이고 어떤 것은 일반 열차다. 잠깐이라도 딴생각을 하면 어김없이 다른 열차를 잡아타게 했다. ‘촌-놈-’ 지하철마저도 나에겐 깍쟁이 같았다.



"서울의 첫 번째 밤,
그 포근하면서도 서걱거리던 이불의 감촉과,
뜨거우면서도 서늘했던 밤의 공기를 난 아직도 기억한다.
1994년의 서울이란 딱 그랬다.
분주하면서도 외롭고, 치열하면서도 고단하며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도시.
그리하여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도시.
우린 당당히 서울시민이 되었지만,
아직 서울 사람은 될 수 없었다."


고향 친구들 사이에서 서울에선 택시기사가 사투리를 쓰면 빙빙 돌아간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택시를 탈 때면 택시기사가 우릴 서울 사람으로 착각하도록 말을 되도록 짧게 하자며 모의했고, 출발 후엔 지방 사람임을 눈치챌 수 없도록 서로 대화를 일절 하지 않았다. 실화다.
“기사님 ~ 신사역~ 이…요….

 서울이란 도시 특유의 차가움과 낯섦은 서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까, 그게 어떤 날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고 참…외롭게 하기도 했다. 사는 게 힘들어 술 한잔을 기울이고 싶을때도, 자취방에서 혼자 이불을 뒤집어써야 했고, 엄마의 따뜻한 밥이 그리운 밤에도 라면을 끓여야 했다. 우리는 직장을 옮기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오빠야-해봐!”라고 놀림당했고, 직장에선 사투리를 고치길 강요받았다. 지금 나는, 사투리보다 서울말이 편할 때가 있는가 하면, 택시를 타거나 물건을 살 때는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부터 사투리를 쓰는 남자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아무래도 쓰레기 오빠 탓) 지방에서 올라와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드라마 때문에 사회적인 시선까지 바뀌었겠느냐마는,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드라마 때문에 괜스레 당당해졌고 문득 혼자가 아닌 것만 같았다. 소음이 가득한 이 지하철, 한 공간에 있는 이들이 어쩌면 나와 같이 멀리에, 엄마와 작고 따뜻한 방 한 칸을 남겨두고 떠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한다. 꿈을 찾아 떠나온 이들의 지친 퇴근길이겠구나, 그러니까 나는 지금 따뜻한 이들 속에 있는 거라고. 그래서 어쩌면 서울 이곳이, 너무 차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말이다.






응답하라 1994, tvN 2013 / 이우정


드라마 명대사를 인용하여, 작가 개인의 삶을 이야기 한 에세이 "엄마, 왜 드라마 보면서 울어?" 의 브런치 연재 글을 모아, 브런치 북으로 재 발간합니다. 출간 후, 작가가 직접 일부 수정하였으므로 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왜울'의 종이 책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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