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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피셔 Mar 19. 2018

홀로 떠난 일본 다카마쓰 여행기 #1

2017.11.19 - 22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내 삶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예측 불가능하다. 난 예측 불가능한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단 그냥 인정하고 존중한다. 어차피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을 컨트롤하려 애쓰고 힘들어하느니 그냥 두는 게 더 나으니까. 그래서 난 지금 내 삶을 좋아하진 않더라도 존중한다.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도 있었는데'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달라졌으면 수십수백수천수만 번은 했겠지. 내가 만난 친구들, 좋아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 난 모두 아주 소중한, 희박한 가능성이 만들어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 이런 삶의 방식들이 피곤할 때가 있다.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싫어하는 상황을 접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 할 때가 생기니까. 다 놓고 버리고 떠나버릴 수도 있지만 그 정도 용기는....


때문에 나는 매년 내 생일이 오면 나를 위한 선물 같은 걸 준다. 어쩌면 정말 귀한 거고 어쩌면 정말 흔한 것. '혼자 있기'. 혼자 영화를 보거나 길을 걷거나 카페를 간다. 혼자 있으면 누군가를 만날 일도 없고 이런저런 일들에 치일일도 없겠지. 2017년 생일엔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다카마쓰는 3년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한국인이 많이 없다고 했다. 일본은 해외여행 가기에 가장 편리한 곳이다. 저렴하고 가까우니까. 문제는 그 때문에 한국인이 매우 많다. 한국인이 많고 한국어가 많이 들리면 내가 굳이 한국을 떠날 이유가 없다. 다카마쓰는 아직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났다. 기본적인 정보만 들고 갔다. 갈 곳 두 군데 정해놨다. 리쓰린 공원과 기타하마 앨리의 카페. 그 외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무려 3박 4일 일정인데.



난 심각한 길치이기 때문에 혼자 여행하기엔 아주 문제가 많다. 실제로 10분 거리에 있는 숙소를 못 찾아서 30분을 헤맸다. 지도까지 있었는데. 구글맵 때문에 살았다. 구글맵이 최고다. 구글맵 때문에 여기저기 잘 다녔다. 다카마쓰에 도착한 첫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뭘 먹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았다. 그냥 상점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왔다. 애초에 비행기 시간도 늦은 편이었고, 숙소 찾느라 시간을 많이 써 무언가를 보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TV에서는 야구를 했다. 한국이 일본에게 졌다.



둘째 날 아침, 리쓰린 공원으로 향했다. 검색해보니 갈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탈 수도 있었다. 나는 그냥 걸었다. 구글맵을 보니 숙소에서 30-40분 거리라고 했다. 날씨는 참 좋지 않았다. 비가 왔다. 보이는 편의점에서 우산을 구입했다.


리쓰린 공원에 가기 전 근처 우동집에서 시누키 우동을 먹었다. 본래 나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먹는 것으로 뽑지만, 이번 여행은 그럴 수 없었다. 정확히 여행 이틀 전 난 심각한 급체가 왔고, 떨어진 식욕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우동은 맛있었다. 셋째 날 먹었던 반숙 계란 튀김은 기가 막혔다.


밥을 먹고 리쓰린 공원으로 향했다. 한국인 여행객은 따로 신청하면 리쓰린 공원 무료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 나름 자잘하게 절약되는 것들이 많다. 가볍게 입장했다.



비가 그치고 가을이 왔다. 서울은 겨울이 오고 있었고, 다카마쓰는 가을의 절정이었다. 끝인 줄 알았던 20대의 마지막 가을이었다. 리쓰린 공원은 고즈넉하고 조용했다.

많은 생각을 할 줄 알았는데 아무 생각 없었다. 멍하니 걷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고 사람들 구경하다, 괜찮아지면 다시 걸었다.


여자 친구, 친구들,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무덤덤 답장을 하려 핸드폰을 들었을 때 번뜩 실감 났다. 내가 한국을 떠났고 다카마쓰에 있음을. 내가 혼자 있다는 걸. 난 혼자 여행 중이구나. 실감 났다. 완전 혼자구나.


Written By. 낭만피셔
Photo By. 낭만피셔
Instagram : @romanticpi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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