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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Nov 18. 2019

#13, 이탈리아가 그럼 그렇지

이탈리아에서 교통사고 처리하기


뒷목 잡고 내리는 건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직접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동네에 위치한 작은 보건소에 들러 생후 35일째의 둘째 예방접종을 예약해두고 볼 일을 보러 잠시 나가는 길이었다. 그리 높지는 않은 경사도를 올라 오른쪽의 작은 바(Bar)를 끼고돌면 대형 슈퍼가 나오는 동네 초입 빨간불의 분명한 신호대기 중이었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쿵’ 소리와 함께 몸이 꽤나 앞으로 쏠렸던 것 같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리는 와중에 외친 단 한마디

“아기!


생후 35일 둘째는 미동도 없이 배시넷에 뉘인 그대로 곤히 자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순간 너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니 그제야 허리도 아픈 것 같고 목도 뻐근하고 두통과 약한 구토 증세까지 있는 듯하다.


3중 추돌사고를 당했다.

매일 드나드는 동네 초입에서 말이다.


신호대기 중의 제일 첫 차 우리와 우리 뒤의 동네 작은 바 사장님 그 뒤로 동네 순환 미니버스 88번

88번 버스가 도미노처럼 우리를 한 번에 밀어붙였다.


한국에서도 한 번 경험하지 않았던 교통사고를 안 겪어도 될 그 일을 굳이 이탈리아에서 말이다.


88번 미니버스 기사는 동네 버스 운전한 지 이틀째라 했다. 사고에 대해 기사는 다행히도 발뺌하지는 않았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3중 추돌은 쌍방 합의가 불가하며 반드시 경찰을 불러야 한다고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교통사고는 처음이었다. 남편도 나도 이론적인 처리방식만 알았지, 굳이 실천해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 처음을 함께 경험했다 물론 생후 35일 생 둘째도 함께 말이다.


뒷목 잡고 싶진 않았는데 거짓말처럼 뒷목이 아파왔다. 아프면 구급차를 불러줄게 라고 했다. 당장은 정신도 없는 틈에 어디가 아픈지 안 아픈지도 정확히 모르겠고 교통사고는 당장은 몰라도 자고 나서 혹은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는데 깨지고 부서져 피 투성이 아닌 이상 지금 당장 구급차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리고 고작 35일째인 내 아이는?


이탈리아는 교통사고도 뭐 이따위로 밖에 처리를 못하나 싶고 또다시 화가 머리 끝까지다.


차량은 뒷 트렁크 쪽이 훅 들어갈 만큼 박혔다. 한국에서 언젠가 스치듯 보았던 ‘찌그러진 곳 펴 드립니다’ 문구가 간절했지만 여기 이탈리아에서 가능할 리 만무하고 솔직히 실력도 의심스럽다


꽤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동네 지구대 순경들이 출동했고 사건 경위서 작성과 아픈 곳은 없는지 재차 묻곤 “아프면 말해, 구급차 불러줄게”


- 머리도 허리도 아픈 것 같지만 지금 당장 구급차 타고 갈 정돈 아닌 것 같아, 많이 놀라서 일시적 같은데 그런데 만약 자고 나서 그때 아프면? 아기는 오늘 겨우 35일 생이야, 물론 아프면 아기도 울겠지, 우는 것만이 현재 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발언이지만 지금은 모르잖아, 이 사고로 인해 아이가 나중에라도 아프게 되면 그땐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 줄 건데? 구급차만 불러주면 다야? 성질이 버럭 났다.


경찰은 나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당장 구급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내일이라도 아프면 구급차 불러 병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보험에서 해결이 안 되더라도 이탈리아 의료시스템은 나와 아이를 지켜줄 거라도 했다.


‘퍽이나 그렇겠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저 자고 일어나서도 별 탈 없기를 바라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차량 수리는 버스회사 보험에서 처리된다 했다

한데 그 보험으로 수리 가능하다는 것이 이런저런 절차를 밟으며 꽤 번거롭기만 하다. 우리나라처럼 사고 현장에 보험사 직원이 나타나지도 않고 보험사가 알아서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보험 적용하여 수리 가능한 정비소 리스트 알려주면 사고 당사자인 우리가 직접 찾아가 차량 상태 보여주고 견적 받아와 보험사에 전달한다. 그러면 그제야 내가 받아 온 견적서를 상대 보험사에 전달, 보험으로 차량 수리 처리할 건지 견적서대로 현금으로 줄 건지 확인만 해준다. 수리를 해주든 돈으로 주든 제발 뭐라도 빨리 좀 해달라고!!!

사고 난 지 4개월째, 보험사에서는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고 우리 차는 여전히 뒷 범퍼가 박힌 채 운행 중이다.


이태리가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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