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언니 Mar 31. 2020

하이체어의 난(?)


본능일까?


23개월 차이의 연년생 아닌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집 안 곳곳에 널브러진 육아 템이 한가득, 금세 이어받아쓸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어쩌면 장점이 될지도 모른다 


바닥 난방이 전혀 불가한 이탈리아 집에 살다 보니 입식 생활은 익숙한 듯 낯설 때도 있다.

첫째 아이의 이유식 시기에 맞춰 비싸진 않아도 그럭저럭 쓸만한 하이체어를 구입했고 제법 잘 앉고 하더니 얼마 전엔 도통 일반의자에만 앉으려고 하는 거다. 





아, 동생이 태어나니 이제 아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형아는 하이체어보다 일반의자에 더 앉고 싶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고 어쩌면 부피 큰 하이체어를 집 안에 또 들이는 것보다 이 참에 동생에게 물려주는 편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당연스레 형의 하이체어를 물려 쓸 요량으로 둘째 의자는 생각지도 앉았고 둘째가 생후 170일이 되던 날 첫 이유식 준비만 했다

한데 의외의 복병이 생겼다. 

첫째가 하루 종일 하이체어에서 내려오질 않는 거다, 평소 같으면 밥만 먹고 곧장 내려오더니 더구나 요즘은 하이체어에 앉아 있던 적도 잘 없었는데 당황스러웠다 


“ 오늘 동생이 처음 맘마 먹을 건데, 엄마가 동생 의자를 아직 못 샀어, 오늘만 형아 자리 좀 앉게 해 주면 안 될까? “


간곡히 부탁해보았지만 묵묵부답, 미동도 하지 않더라, 무려 카톡 ‘읽씹’ 당한 기분 


아쉬운 대로 흔들리는 바운서에 앉아 둘째의 첫 번째 식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날이후로도 그는 하이체어에서 내려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의자 위로 곧장 올라간다,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심지어 유튜브 동영상 시청도 꼭 의자에 앉아서만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의자 위에서 보내는 셈!!


본능적으로 본인 것을 뺏앗길거라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아 그게 뭐라고 쓸데없이 애한테 불안감을 안겨주나 그냥 내가 빨리 포기하자 싶다가 부피 큰 하이체어를 또 하나 더 들이려고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려올 것도 같은데 싶고 이를 어쩌나 한참을 고민하다 저렴한 이케아 용이라도 하나 사서 쓰다가 옮겨줄까 싶은 거다 

 


둘째는 이케아 하이체어 새 것(?)을 얻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장녀 장남, 첫째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둘째들의 애환(?)이라고 해야 할까, 


지인들을 통해 듣기로 본인 소유의 새 것! 없이 대부분 물려받고 당연스레 물려 쓰게 되는 것이 꽤 싫었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더더욱 임신했을 때부터 둘째라고 꼭 다 물려 쓰게 하진 말아야지 했었건만 연년생 아닌 연년생이 되다 보니 사실 시기상 몇 번 못썼던 것들도 아깝고 굳이 있는데 또 사자니 아깝고 자연스레 자꾸 형 쓰던 것 쓰고 하게 되긴 하더라 

더구나 금전적인 부분을 떠나서 하이체어는 부피도 상당하니 두 개까지는 내 주방이 답답해져 내심 나도 싫었던 건지도 모르지 


만약 내가 둘째 입장이라면? 

정답 없는 억지 추측이라도 하며 둘째의 심정을 이해해보려 해 본다. 


쿠션 빵빵한 조금은 더 편안한 자리의 물려 쓰는 ‘ 형’의 것과 비록 딱딱하고 등받이도 젖혀지지 않는 다소 불편하지만 ‘내 것’이라는 명분의 새 것 사이에서 어떤 것을 더 좋아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19,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