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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Mar 26. 2020

여전히 새로고침 중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반강제 자가격리 라이프


아이들을 재우다 곁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잠 결에 더듬더듬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찾는다


이동 금지령이 내리고 현관문 밖도 나가지 않고 온전히 집에만 머문 지 여러 날 째

이탈리아에 머물면서도 각종 매체를 통해 이탈리아 소식을 접하고 집 밖에선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치 딴 세상 같이, 아니 솔직히 가능하다면 외면하고픈, 그저 꿈이길 바라는 세상!


외출금지령이 내려지기 전 꽤 여유 있게 봐 두었던 식료품, 생활용품은 슬슬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통행증을 작성하고 마스크와 라택스 장갑의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춰 마트를 직접 나가볼 텐가, 꾸역꾸역 견뎌내 볼 텐가 고민 속에서 온라인 배달이 가능한 마트는 세상 가뭄 속 단비 아니던가



"여긴 이미 어디든 배송 불가능이야!

두 달치 예약이 꽉 찼다지 뭐야!

로마는 좀 어때?"



지인을 통해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이 사재기 등으로 심각하다 했을 때 당연스레 해당 마트 앱에서 조차 배송 가능한 날짜는 없다고 했고 위기감을 느낀 나는 곧장 로마로 검색해보았다.

그쯤 로마는 상대적으로 심각성이 덜 했던 탓인지 다행히도 꽤 여유 틈이 있어 로마는 그나마 나은 편이구나 했던 그것이 아주 큰 착각이었다.




이틀의 새로고침 속에서 얻은 값진 배송 오던 날




물론 그 이후 로마의 사정, 아니 이탈리아 전역의 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진 것이 단단히 한 몫했겠지만 이미 배달하려 했을 때 남아있는 여유 날짜는 전혀 없는 상황, 잠시나마 안도했었던 내가 멍충이지 뭐


무한정 결제 대기에 놓인 나의 쇼핑품목들을 (그래 봤자 열흘 정도의 먹거리와 아이들 기저귀가 전부 인) 장바구니 속에 채워두고 틈이 날 때마다 배송날짜 새로고침을 한다.


 



베송 가능한 날이 하루도 없다



중간 취소가 생기는지, 여분의 예약을 풀어줬는지 방식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운이 좋았던지 이틀의 새로고침 끝에 3일 뒤 배송으로 예약을 잡을 수 있었고 (4주 이상 배송 예약이 꽉 찬 상황) 다행이라며 잠시 잠깐 생각하다가 이젠 불현듯 사태가 이다지 심각한데 배송이 안 오면 어쩌지 하는 또 다른 불안감만이 증폭됐다.


이전에 몇 차례 이용해 본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배달이라니 감히 상상도 안 해봤건만 꽤 다양한 루트에서 온라인 장보기를 홍보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프로모션 행사의 로마 전 지역 무료배송이 구미를 당겼다. 비교적 보기 쉽고 조작하기 쉬운 앱과 대체 가능이나 할는지 의심스러웠던 하루 배송은 물론 이탈리아에서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던 시간 약속까지 하나하나 의문투성이였지만 꽤 과감하게 그 시작을 해보았는데 세상에나! 로마에서도 정말 이게 가능하다고??


요즘 이탈리아에서는 (일부) 마트 배달은 물론 패스트푸드, 피자 등 다양한 배달이 가능해졌다.

물론 빠르진 않다, 최근엔 그나마 오토바이 배달 비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초기엔 자전거로 배달을 하거나 걸어서 배달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아직도 그런 곳도 있는 듯하더라, 그러다 보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우리 집 경우는 그 어느 곳도 배달 불가라 하니 여전히 로마에서의 배달문화는 마냥 부러운 그림 속의 떡이었다.

한데, 오직 단 하나 이 곳 마트는 배달을 해준다. 심지어 집 현관 앞까지 가져다준다.


세상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다니 연신 감격하면서도 막상 배송비 무료 프로모션이 끝나고 나니 7유로 (한화 약 9,800원) 배송료가 조금은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신선식품을 직접 보고 구입할 수없다는 점이 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 가족이 함께 마트에 가고, '이 것 좀 먹어볼래? 저것도 좀 사자!' 하며 다 함께 장을 보고 카트 한 가득 실린 먹거리는 뒤로 한 채 마트 내 작은 피자집에서 조각 피자 하나를 나눠먹던 그 시간이 어쩌면 더 좋았던 건지도...


장점과 단점의 경계에서 결국은 단점의 부각으로 살짝 등한시했던 그 어플을,

평범했지만 소중했던 일상을 잃은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매일 밤낮으로 새로고침을 한다.


일주일째, 잠에서 깨고 잠들기 전 심지어 자다가 잠결에도 틈만 나면 혹여나 배송 가능한 날짜가 있을까 새로고침 하지만 나는 아직도 다음 배송 일자를 잡지 못했다.


여기까지 쓰고 편집하던 차에 이젠 버릇처럼 새로고침이 자연스럽다.

3주 뒤의 딱 하루 배송날짜가 오픈되었고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재빠르게 예약했다.


'후우~'

마스크와 라택스 장갑의 무장 태세에서 반걸음쯤은 뒷걸음질 가능했다는 안도감과 결국은 내가 해내고 말았구나 하는 승리감에 채 완전히 젖기도 전에 언제나 현재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을 탐하는 인간인지라

배송 가능 날짜만 있다면 그게 언제가 되어도 좋다 했건만 막상 3주 뒤가 되니 조금만 더 빠른 날은 없을까?

혹여나 조금 더 당겨볼 수 있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 오늘도 여전히 기약 없는 새로고침을 한다.


P.S. 이 글 작성이 끝날쯤 마침내 2주 뒤 배송으로 날짜 변경 완료했음을 전합니다

이 쯤되면 만족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버릇처럼 새로고침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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