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반강제 자가격리 라이프
소풍 전 날 들뜬마음의 어린아이처럼 쉬이 잠이 오지았았다.
2020년 5월 4일 , fase2 (이탈리아 봉쇄 완화) 첫째 날
외출금지령 반강제 격리로 집에서만 지낸 지 두 달 만이었다
집 근처 마트에만 국한되지 않고 통행증 작성 없이 먼 거리의 마트를 다녀올 수 있고 공원이 열렸으며 여전히 외식은 불가하지만 테이크아웃은 가능해졌다. 가벼운 산책과 외출은 마스크를 필수로 한다는 전제이다.
공식적으로 집 밖을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코로나 19 사태가 아니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감정
바(Bar)에 가서 꼬르네토(크로와상)와 에스프레소 한 잔 하고 싶건만 봉쇄 완화 첫날에 바 오픈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간간이 문 연 곳들도 있긴 하지만 지정된 날짜가 아니다 보니 여전히 대부분 바는 문이 굳게 닫혔고 두 달만의 첫 외출에 꼭 커피 한 잔 하고 싶어 혹시나 하며 외곽 순환도로 휴게소를 찾으니 다행히 열려있다
마스크를 쓰고 주문을 하고 테이크아웃으로 빵이 든 봉지와 커피 두 잔을 가지고 나와 커피 한 모금 홀짝 들이키는데 쌍 따봉 절로 나오는 너무나 그리웠던 이탈리아 커피 향과 맛
퍽퍽하고 어쩜 이렇게 맛이 없냐며 그동안 푸념하기 바빴던 꼬르네토도 퍽퍽하면 좀 어때, 이 맛이 이탈리아 인걸, 두 달 만에 맛 본 꼬르네토는 참 꿀맛이었다.
봉쇄 두 달 동안 웬만해선 집 근처 마트도 외출이니 자제했고 수강신청 저리 가라 할 만큼 치열한 배송 예약을 잡으며 대부분 온라인 장보기만 하다가 두 달 만에 처음 먼 거리 마트에 장도 보러 다녀왔다
나선 김에 한인마트도 다녀오고 아기용품점에도 들러 아슬아슬하던 기저귀와 분유도 잔뜩, 다행히
어린이날 선물도 구입했다.
봉쇄 완화 첫날인데 마치 나는 내일이면 여전히 집 밖을 못 나가는 봉쇄 중 상황처럼 사고 또 사고 하루에 500유로가 넘게 장을 봤다.
이 봄날 적어도 나와 아이에겐 더욱 완벽함을 선사할 맥도날드도 두 달 만에 먹을 수 있었다.
테이크아웃은 가능하다고 했지만 전체 지점이 오픈하는 건 또 아니었다. 세 곳의 맥도날드를 갔지만 여전히 닫힌 문을 보았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지점이 떡 하니 열려있었다
Siamo Aperti
우리는 열려있습니다
이게 뭐라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비단 나만 이렇게 기다렸던 건 아니었는지 드라이브 쓰루 줄은 말도 못 하게 길었고 동화책에 햄버거 그림만 나와도 먹고 싶다 조르던 아이도 늘 그리웠던 나도 더없이 행복한 한 끼 식사였다
이탈리아 봉쇄 완화 첫날
봉쇄 완화이긴 하나 여전히 이탈리아 내 확진자 수는 하루 1500명 내외로 안심하기엔 이른 단계이기에 가벼운 산책 또는 외출 가능이라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마스크 필수 전제가 어렵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었다기보다는 아이들이 답답해할 때 혹은 잠투정이 극에 달했을 때 요긴한 드라이브가 우리 가정엔 꼭 필요했건만 그것 또한 불가하다는 것이 큰 불편함이었다
하루 종일 특별히 한 것도 없다.
남편은 아이들과 차에서 기다렸고 모든 장은 나 혼자서 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다 함께 집 밖을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그토록 바랐던 커피를 햄버거를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야말로 너무나 당연스러웠던 그동안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일상의 고마움,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근래 오늘처럼 행복하고 매 순간이 감사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건만 역시 행복은 찰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경찰 컨트롤을 당했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니?”
- 장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응, 그런데 부모 한 명이 아이 한 명만 데리고 다닐 수 있어
카시트에서 잠든 둘째를 미처 보지 못한 줄 알았다
아이가 둘이라고 대답했다
부모 한 명이 아이 한 명 만을 데리고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조금 우습지만 남편과 나, 아이는 둘,
부모 한 명 당 아이 한 명씩 문제없지 않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했건만 되돌아온 건
“온 가족이 다 함께 다니는 건 불가해”
온 가족이 다 함께 나와서 행복했는데 불가하단다.
드라이브는 할 수 있지만 가벼운 산책도 가능하지만 다 함께는 불가하단다.
부모 한 명 당 아이는 한 명
우리는 각자 아이 한 명 씩을 데리고 마치 이산가족인 양 각각 다녀야 한단다.
(감염 우려라고는 하지만 한 집에서 다 함께 사는데 이게 대체 어떤 효과가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따질 수도 없다, 안되는 거니까 벌금이야! 해버리면!!! 그나마 벌금 안 받은 게 어디야)
이탈리아는 봉쇄 완화이지만 우리 집은 여전히 봉쇄인 거다. 이러려고 나는 그렇게 장을 보고 또 봤나 보다.
아이들의 잠투정 껄껄껄 웃으며 잠투정하기만 해 봐! 드라이브로 단숨에 재워버려야지 했던 꿈이 꿈같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봉쇄 완화 첫날,
완화인 듯 완화 아닌 우리는 여전한 봉쇄
온 가족이 함께 아무런 제제 없이 집 밖을 나설 수 있을 그 날이 조금 더 빨리 다가오길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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