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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은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RIP)

by 봄날


9월 초 늦은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트윗을 보고 있던 아내가 “여보, 아르마니가 죽었대”하고 말했다. 향년 91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사망했다는 뉴스속보가 떠올랐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 패션계의 제왕이었던 그 Mr. Armani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나이가 있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몇 년 전 영화 음악의 거장 이탈리아의 엔리오 모리꼬네가 사망했다는 소식만큼 또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90년대 초, 처음 이탈리아 밀라노에 출장을 갔다. 늦은 밤에 알리탈리아 항공을 타고 시내중심인 두오모성당에서 한 시간 거리의 교외에 있는 리나테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독수리 로고가 박힌 EMPORIO ARMANI 브랜드의 대형 간판과 옥외 광고판을 보았다.


그 순간, 리나테공항이 아니라 엠포리오 아르마니 공항인 줄 착각했었다. 아르마니 시대의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그의 죽음을 듣고 그때쯤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문학사상)이라는 소설책이 떠올랐고 인터넷서점을 통해 바로 주문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1987년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출간한 이후 그 소설의 완결 편이라고 불렸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란 소설이 또한 대중의 인기를 끌면서 그 명성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관성에 따른 변화 없는 회사생활 속에서, 하루키의 소설과 그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재즈와 클래식, 와인과 명품브랜드 등이 그런 변화 없는 회사생활에 대한 활력과 신선함을 더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던가.



개인적으로 90년대의 허리가 잘록하고 재킷 총장이 길었던 아르마니 슈트와 캐주얼웨어, 그리고 그의 의식주에 관한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선망하고 좋아했었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역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의 일본 최고의 경제호황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땐 도쿄에 출장을 갈 때면, 전설의 소니 워크맨 신제품을 사기 위해서 제일 먼저 달려갔던 곳이 아키히바라 전자상가였다.



누군가와 아르마니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이야기의 처음은 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나오는 한 구절을 먼저 인용하곤 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아르마니의 넥타이와 소프라니 우모의 슈트, 와이셔츠도 아르마니였다. 구두는 로세티. 나는 딱히 복장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다. 필요이상으로 옷에 돈을 들이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청바지와 스웨터만 있으면 충분했다.


고석정 꽃밭, 철원


하지만 내게는 나름의 작은 철학이 있었다. 가게의 경영자라면 자기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되도록이면 이런 차림을 하고 와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차림을 본인 스스로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손님이나 종업원에게도 그 나름의 긴장감 같은 것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게에 얼굴을 내밀 때에는 의식적으로 비싼 양복을 입고 반드시 넥타이를 맸다. “ 그 소설의 주인공 하지메는 대학을 졸업하고 재즈바를 운영했다.



그 재즈바의 운영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자세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소설 속의 그 한 페이지는 아르마니 슈트를 입고 비즈니스를 할 때 자신감을 주었고, 그 주인공의 생각은 사회생활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소설의 큰 줄거리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지만 디테일은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삼십 대에 읽었던 그 소설을 지금 다시 읽어보면 어떤 느낌일까 그 차이를 알고 싶어서 다시 구매했다. 내 인생에서 나는 그렇게 아르마니와 하루키를 만났다.


버들마편초


뉴스에 따르면,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오늘 세상은 거인을 잃었다. 그는 역사를 만들었으며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추도했으며, 몽클레르의 최고경영자(CEO) 레모 루피니는 "'우아함은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다'. 고마워요 조르지오"라고 애도했다고 말했다.


또한,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그의 우아함, 절제미, 창의성은 이탈리아 패션에 빛을 더하고 전 세계에 영감을 주었다"며 "아이콘이자, 지칠 줄 모르는 노동자, 이탈리아의 최고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럭셔리 브랜드의 목표는 중산층에게 부자의 꿈을 파는 것이다. 그는 ‘우아함’과 ‘미니멀리즘’의 거장으로 불리며 세계 명품 시장을 선도했다. 이래저래 난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지 않고 지나갈 순 없었다.


그는 "나는 실용적이지 않은 의류나 액세서리를 만드는 건 전혀 가치가 없다고 본다"며 "실제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한다"는 패션 철학을 고수해 왔으며,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 옷을 만들어온 나의 우상이고 영웅이었다.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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