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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와 나영석이 한 화면에?!

유진 양 화내지 말아요. 가나다 순입니다, 김나박이도 그렇잖아요?

by 담담댄스

나영석과 김태호.


방송국 PD를 꿈꾼다면, 굳이 예능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두 이름. 예전에 두 PD의 발자취를 장편의 글로 다뤘던 적이 있지만, 많이 Outdated 됐다고 판단해 굳이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투샷을 보게 되다니. 지금이야말로 이 글을 다시 꺼내는 데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연프(짝짓기 프로그램)를 극혐하는 사람이다. 연프에는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외모나 직업, 재산 등 스펙이 어느 정도 갖춰진 출연자들만 나올 수 있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에 공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나마 <나는 솔로> 좋아했는데, 그것도 몇몇 출연자들의 관종짓과 헛발질을 차마 맨정신으로는 볼 수 없어 끊었다.



그런 내가, 이 레전드 PD들의 투샷을 보기 위해 꾹 참아가며 지난 주말 연프를 시청했다. <사옥미팅>. 역시 나영석과 김태호의 후배들이라 그런지 기획이 신선하다. 두 PD가 수장으로 있는 회사의 PD들이 직접 출연자로 역할하는 연프. 내 관심은 출연자들의 리얼리티보다 두 PD의 리액션에 집중돼 있었지만, 이내 연프도 이렇게만 하면 재밌겠구나 싶을 만큼 몰입해서 보게 됐다.


이 콘텐츠를 계기로 예전에 두 PD에 대해 썼던 그 글을 다시 꺼내보려 한다. 여전히 '내가 뭐라고' 이런 글을 쓰나 싶지만, 쳐낼 것은 쳐내고 새로고칠 것은 새로고쳐서 보여주려 한다. 모쪼록 재미로 읽어주시길.






1. 재미와 의미, 재미의 의미


재미에 가치를 더하는 요소는 의미이며, 의미를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재미다. 김태호와 나영석, 이 두 프로듀서는 재미 속 의미를 추구했고, 의미를 전하기 위해 재미를 선택했다.


우선 김태호 PD는 사회적 이슈나 현안을 직접적으로 콘텐츠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감탄한 작품은 무한도전 <나비효과> 특집 편이다.



7명의 멤버를 3:3:1로 나눠 1명의 선택에 따라 3명으로 이뤄진 각 팀에 벌칙이 주어지는 구조를 짜놓은 것도 천재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1명이 에너지를 과소비할 때마다 그 선택이 일으키는 영향(효과)이 북극의 얼음집을 녹이고, 녹은 물로 몰디브를 침수시키는 아이디어는 지금 봐도 소름이 돋는다. 지구 온난화에 대해 이토록 즐겁게, 하지만 와닿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콘텐츠가 또 있을까. 1층의 몰디브 숙소에서 에어컨을 틀면, 실외기가 달린 2층의 얼음집이 녹아 1층을 침수시킨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일까.



반면, 나영석 PD는 사회적 이슈를 콕 집어 에피소드로 삼기보다 좀 더 큰 방향성을 주제의식으로 삼은 프로그램 자체를 기획하는 편이다. 이는 tvN 이적 이후, 프로그램에 대한 재량권이 많아진 나PD에 내린 축복으로도 볼 수 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긴박한 속도감에서 벗어나보고자 예전 같으면 <1박 2일> 한 회차의 분량으로 산촌특집을 기획했겠지만, 아예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버린 셈이다.


김태호 PD는 명확한 주제의식을 갖고 꼼꼼히 기획해 2~3회 차 안에서 완성도 높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라면, <삼시세끼> 이후 나영석 PD의 작품은 좀 더 느슨한 주제를 갖고, 심플하게 긴 호흡으로 구성하는 편이다. 그래서 김태호 PD의 콘텐츠는 몰입감이 뛰어난 반면, 나영석 PD의 작품들은 대개 굳이 몰입해서 보지 않게 된다.



예능에 메시지를 담을 필요는 없다. 웃기면 장땡. 하지만 이 두 명의 PD를 다른 프로듀서들로부터 구별지은 결정적인 요인은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를 위트라는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했다는 데 있다. 이 두 명의 등장으로 예능 프로그램과 그 종사자들이 더 이상 하대 받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그들이 인정받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2. 나영석, 김태호라는 브랜드


두 PD 각자 잘하는 것이 명확하다. 우선 두 PD 모두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예능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나영석 PD는 여행요리를 소재로 한 기획력이 훌륭하다. 한 인터뷰에서 밝히길, 본인이 이 두 가지를 좋아하다 보니 이런 주제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김태호 PD의 특장점은 추격전음악에 있다.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꼬리잡기>, <공동경비구역>(개인적으로 최고의 추격전으로 꼽는 편) 등 무한도전의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 낸 추격전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김태호 PD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무엇보다 김태호 PD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농담처럼 시작한 <강변북로 가요제>부터 <올림픽대로 가요제>,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 <자유로 가요제>, <영동고속도로 가요제>까지 2년을 주기로 개최하는 무한도전 가요제는 당시의 나를 포함,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나왔다 하면 음원차트 최상단을 줄세우는 위력 탓에 가요제에 참여하지 않는 가수들은 해당 시기에 음원 발매를 하지 않는 것이 국룰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하게 된 두 사람은 결국 본인만의 색깔을 가진 몇 안 되는 제작자의 반열에 올랐다. 최근 나오는 작품들에도 이러한 성향이 반영되고 있다. 나영석 PD의 최근작인 <뿅뿅 지구오락실>(이하 지락실)은 전 세계 여행지를 배경으로 한다. 남양주 펜션에서 했어도 됐을 법한 게임들 위주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나라마다의 절경과 정취는 말초적인 웃음을 중화시키며 프로그램의 퀄리티를 한층 높여준다. 김태호 PD 역시 <댄스가수 유랑단>과 <Good Day>라는 음악예능을 선보였다.


영리한 사람들은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하려고 하지, 굳이 못하는 영역에 발을 담그지 않는다. 영감과 경험이 얽혀 각자의 영역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트렌드를 만들어 냈고, 트렌드가 그들을 브랜드로 만들었다. 다만, 브랜드 자체가 언제나 트렌드일 거라 생각한다면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잘하는 것을 했던 두 PD의 최근 야심작(<지락실3>, <Good Day>)들은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3. Player vs. Observer


두 PD의 스타일이 극명하게 나뉘는 지점은 각자의 역할에 있다. 두 PD의 레전드 작품이자 전성기를 이끌었던 <1박 2일>과 <무한도전>은 특히 방영 초기,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틀에서 무척 비슷한 포맷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노홍철이라는 무도의 핵심 멤버가 1박 2일에도 고정으로 출연하는 등 1박 2일이 무한도전의 <무인도> 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많았다.


이런 논란은 '1박 2일=복불복'이라는 단순한 구성과 출연진들의 케미가 안착하면서 사그라들었는데, 여기서 1박 2일을 무한도전과 구별 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제7의 멤버'다.


<1박 2일> 제7의 멤버는 단언컨대 나영석 PD다. 예능에서는 거의 최초로 PD를 위시한 제작진과 스태프가 프로그램 전면에 대놓고 등장하기 시작했다. 출연진 대표 강호동과 스태프 대표 나영석은 수시로 복불복 결과를 걸고 내기를 진행했는데, 이처럼 PD가 플레이어로서 출연진과 대등한 위상과 분량으로 노출된 사례는 전무했다.



무한도전 제7의 멤버는 늘 연예인이었다. 게스트로 몇 번 출연하면서 멤버들과 좋은 예능 합을 보여주면 언론은 그들을 '제7의 멤버'로 거론하며 한껏 띄우기 바빴다. 차태현부터 김현철(개그맨), 지상렬, 김영철(개그맨), 데프콘 등 수많은 제7의 멤버가 있었지만 김태호 PD가 언급된 적은 별로 없었다.


김태호 PD는 스스로 출연하는 데 극도로 몸사리는 편이다. 무한도전을 보면서 김태호 PD가 직접 출연한 장면을 본 것이 열 번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나영석 PD가 본인을 플레이어로 출연시키면서 현장에서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 내고 이것을 재미포인트로 삼는 스타일을 굳혔다면, 김태호 PD는 에피소드별로 애초의 룰 세팅(Rule Setting)을 빡세게 가져가는 대신, 출연진과 타협의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아 촬영과정에서 의도적인 변수를 거의 없앴다.


<사옥미팅>을 보면 나영석 PD가 '나도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건 아니'라고 항변하는데 냉정하게 즐기는 면도 있는 것 같다 ㅋㅋ


두 사람은 이러한 스타일을 더욱 날카롭게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 그 결과 나영석 PD는 <채널 십오야>라는 자사 유튜브 채널에서 스트리머 같은 역할로 나서며 콘텐츠의 주인공으로서 기능하고 있고, 그 결과 백상예술대상 남자예능인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반면 김태호 PD는 TEO의 창업자이자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전략적으로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기업 경영에 방점을 찍고 있는 분위기다.



4. 선호하는 캐릭터


운 좋게 나영석 PD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꽃할배의 성공 이후 만들어진 자리였는데, 나 PD가 출연진 중 가장 어려웠다고 손꼽은 출연자는 박근형이었다. 꽃할배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에피소드마다 문제없이 전체 출연진을 아우르며, 짐꾼 이서진에게도 몹시 의지가 되는 역할이 박근형이었다. 몹시 의외였다.


박근형 선생님은 연기를 참 잘하시는 배우세요.
그래서 꽃보다 할배에서도 어떤 역할을 상정하고 들어오신 것 같더라고요.
다른 선생님들은 그냥 본인 그대로를 보여주셨기에 캐릭터를 잡기 편했는데,
박근형 선생님의 캐릭터를 잡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김태호는 발견하고, 나영석은 발굴한다.


김태호 PD는 예능인으로서 훌륭한 순발력과 감각을 지닌 인재를 등용하는 편이다. 무한도전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이 많지만, 사실 대부분 어디선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예능영재들을 빠른 침투력으로 섭외해 출연시킨 것이 좀 더 맞다고 본다.


없없무(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의 세계관 역시, 이런 예능 인재들이 가장 폼 좋을 때 출연하기 때문에 수많은 밈과 드립들로 나오게 된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인재 등용에 인색한 탓에 김태호 PD는 늘 하는 사람하고만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김태호 PD가 시작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에는 언제나 익숙한 예능인이 꼭 한 명씩은 들어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무한도전뿐만 아니라 이후 <놀면 뭐하니>나 OTT와 선보인 다른 예능에서도 김태호의 페르소나라고 할만한 사람들의 작중 역할 변화는 거의 없는 편이다. 최근작 <Good Day>에서도 지드래곤과 검증된 최고의 케미를 자랑하는 정형돈과 데프콘을 붙였다. 이미 구축된 캐릭터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셈이다.



나영석 PD는 앞서 박근형과의 에피소드에서도 보이듯, 실제 본성에 가까운 날 것의 캐릭터를 좋아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호동보다 이서진과 자주 프로그램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송용으로 만들지 않고, 카메라가 돌든 돌지 않든 한결같이 쿨하고 츤데레로서 매력을 지닌 이서진을 담는 것이 나영석 PD의 취향인 것이다.


그래서 나 PD는 예능 프로그램에 예능인을 자주 쓰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를 가끔 듣기도 한다. 또, 나영석 PD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주로 배우나 가수)들은 다른 예능에서 크게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이는 다른 PD들이 나영석 PD만큼 캐릭터를 발굴해 내고 덧입히는 능력이 부족한 걸 수도 있고, 해당 출연자가 나영석 PD의 작품에서만큼 부담 없이 스스로를 보여줄 수 없는 컨디션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결코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많은 예능 PD들의 To-be였지만, 방송국이라는 안락한 시스템을 버리고 As-is로서 광야에 나와 사각의 링에 스스로 올랐다. 그 결과, 그 대단한 나영석 PD도 이영지와 안유진의 남다른 텐션에 기 빨리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고, 천재라 불리는 김태호 PD 역시 유튜브의 세계에서 '지적질'이라는 걸 당하기도 한다.


OTT를 필두로 유튜브까지, 예능 플랫폼의 경계는 사라지고 콘텐츠의 수위랄 것도 없어지는 추세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추세에 몸을 내맡겼다. <무한도전>과 <1박 2일>의 콜라보를 기다리던 수많은 팬들의 외침에 응하지 않았지만, 후배 PD들의 아이디어가 괜찮다고 판단하니 기꺼이 동반 출연을 결심한 것만 봐도 이들이 왜 최고의 꾼들이고, 남다른 촉을 가졌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나저나 이렇게 현실감 있는 연프는 꽤나 매력적이다. 에그녀와 테오남이라니 ㅋㅋㅋ 이거 왤케 재밌냐… 그래, 결국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겠지.




*표지 이미지 출처_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 중 "선배가 퇴근시켜 줬잖아? 그럼 이딴 거 안 나왔어 | �사옥미팅"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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