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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야만 얻는 것과 차마 놓을 수 없는 것에 관해

<If I ain't got you> - Alicia Keys

by 담담댄스

오랜만에 담담댄스 님의 사연이네요.


ㅡ 안녕하세요, 담디님. 오늘 있었던,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는 일을 사연으로 보냅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샤워실로 왔습니다. 락커에 있는 샤워용품을 꺼내려고 손목에 있는 락커 키를 잡아 빼는데 잘 안 빠지는 거예요.


아오, 이거 왜 안 빠져?!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오는데, 아뿔싸! 바보 같이 밴드를 찬 손에 핸드폰을 꽉 쥐고 있었던 거 있죠? 핸드폰까지 통과시켜 키를 빼려고 하니 됐겠어요?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한참을 서서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두고 나서야 아주 쉽게 비로소 손목에서 키를 빼낼 수 있었네요.


예전에 어린 손주가 할아버지가 아끼는 도자기에 구슬을 넣었는데, 그 구슬을 꺼내려다 손이 안 빠져서 최후의 방편으로 도자기를 깨보니 손으로 구슬을 꼭 쥐고 있어서 그랬더라는 얘기도 생각났고요 ㅎㅎ


그러다 갑자기 제 옛날 직장 선배가 떠올랐어요. 그 선배는 욕심이 많고, 아주 야망에 이글이글! 불타는 분이었거든요.


팀장이 되고 싶어 안달난 분이었는데, 역량은 충분했고요. 근데 위에서 그 선배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그 조직을 탐탁지 않게 여겨 그 선배를 팀장으로 만들기 위해 위인설관, 즉 팀을 나눈다거나 멀쩡한 팀장을 교체할 만한 움직임은 전혀 없었죠. 무엇보다 팀 안에도 본인보다 몇몇 선배들이 팀장 자리를 기다리며 적체돼 있었기에 좀 꼬인 면이 있었고요.


그런데 이 분이 글쎄 다른 회사, 그것도 네임드 회사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다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그렇게 원하는 팀장으로요. 그래서 당장 옮기라고, 축하한다고 얘기를 건넸죠. 그랬더니 그 선배가 글쎄


올해 성과급을 아직 못 받았잖아 ㅠㅠ
이거 너무 아까워서 내년 초에 성과급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어
한 석 달 남았으니 그때 되면 가는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지 뭐...


악!!! >.< 그 회사는 팀장 직책은 물론, 연봉도 지금보다 더 준다고 했다더라고요. 세상에... 그렇게 원하는 팀장 자리를 내년에 얼마 받을지도 모르는 성과급 때문에 포기하다니. 심지어 그 성과급을 포기해도 내년부터는 더 많은 연봉이 보장된 것인데. 그렇게 똑똑한 양반이 그 성과급을 포기 못해서... 더 설득하려다 그만뒀어요. 본인 팔자죠, 뭐.


이후로도 그 선배는 결국 팀장을 못했고, 팀장이 되려고 다른 팀으로 섣불리 옮겼다가 커리어가 완전 꼬여버렸다능 ㅋㅋㅋㅋ


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데, 대가가 필요 없는 경우는 잘 못 봤어요. 잃는 것 없이 뺏어오는 게 베스트겠지만, 세상사 어디 그리 만만한가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가진 것을 내려놓거나 과감히 상대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 눈앞의 작은 이익에 얽매여, 길게 보면 누릴 수 있는 편의나 행복을 놓쳐버리고 마는 어리석은 일을 저도, 이 사연을 듣는 많은 청취자 여러분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몇 자 적어봤어요.






하지만 차마 놓을 수 없는 것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어렵게 락커 키를 빼면서까지 놓지 못했던 핸드폰처럼요.


사실, 이 노래를 들으니 오랜만에 좀 푹 젖었습니다. 아마 누군가를 놓아버리진 못했을 테고, 놓쳐버린 모양이에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한 사람.


잠깐 딴소리해서 죄송한데, 저는 절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고요. 어떤 재능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는 슬픈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Michael Jackson이나 Usher, Nas 같은 사람들이요.

특히 Alicia Keys를 보면 더욱 그런데요. 소리가 나오는 성대를 길로 비유하자면, Alicia Keys가 지닌 소릿길의 벽면엔 특수한 무늬나 요철이 있는 것만 같아요. 긁힌 소리도 났다가 휘어지기도 하고. 거대한 폭풍이 사자후처럼 그 길을 지났다가도 산들바람마냥 간지러운 미풍도 드나들죠. 우와! 이런 탤런트는 감히 질투도 안 나네요.

감탄? 이런 말로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가창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무대엔 가(歌, 노래)도 있고 창(唱, 부름)도 있군요.


당신이 없다면 내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 노래가 왜, 핸드폰을 꽉 움켜쥔 제 손목을 보고 떠올랐는지. 까닭은 도통 모르겠습니다.


Everything means nothing,
if I ain’t got you




P.S. 담디님, 이런 새벽 2시 싸이월드 감성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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