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뉴진스(NewJeans)가 돌아왔다

by 담담댄스

예전부터 "뉴진스(NewJeans)가 보고 싶다"는 제목의 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글의 제목은 오늘부로 "뉴진스(NewJeans)가 돌아왔다"로 바뀌었다.


말들이 많았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님에도 뉴진스에게 젠더 프레임을 씌워 성(性) 갈등으로 몰아가는 양상이 몹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웠다. 정말 뉴진스가 옳은 결정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그들이 분명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였다.


나는


어른들의 싸움에 아이들이 무슨 죄냐


라든지


아티스트 뒤에 숨어 총알받이 시키는 거냐


는 식의 비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비겁한 어른들만 있고, 바로잡아줄 어른들이 없었던 점은 맞지만 미성년인지 아닌지를 떠나 그들 스스로도 사안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고, 진실을 밝힐 수 있었으며,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셈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날선 발언들 역시 자신들의 의지가 어느 정도 투영된 결과였을 거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과정에서의 진정성, 결과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낭비되지 않았어도 충분한 일들에 불필요하게 소모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하니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국정감사 자리에 나섰을 때만 해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 역대급 재능들을 무대보다 기자회견과 법정 앞에서 더욱 자주 보게 되니 열렬한 팬인 나조차도 피로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강렬히 남은 것은 떼쟁이 이미지뿐이었다.





복귀 소식을 듣고 불현듯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올랐다. 어떤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의 7년과 같았던 그 장면 말이다. 뉴진스를 기다린 지난한 시간들이 고작 1년밖에 안 되었던가 싶은 마음. 그리고 전성기의 폼을 보여주던 아이돌에게 1년의 공백은 과연 재충전의 시간이기만 했을지. 그들을 추앙해 오다 지쳐 떠나간 느슨한 팬덤은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 없었듯 그들의 복귀를 반길 수 있을지.


무엇보다 그들은 민희진 없이 진정한 뉴진스가 될 수 있을까.


뉴진스를 탑 티어의 걸그룹보다 더 윗길이라 생각했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민희진의 프로듀싱을 꼽았다. 재능 있는 연습생은 화수분처럼 쏟아지지만 그들이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능력 있는 프로듀서와 A&R팀을 만나야지만 그룹의 방향성을 잡고, 이에 맞춰 곡과 안무, 스타일링을 설정할 수 있다. 요즘엔 세계관이라는 서사와 스토리까지 입혀야 브랜딩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그걸 가장 잘하는 사람이 민희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도어의 A&R 조직에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잘 품어달라'든지,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잊고 심기일전해 달라'는 식의 감정적 바람을 전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좋든싫든 얘네들을 다시 한번 잘 써먹어서 누구 보란 듯이 우리도 큰돈 벌어보겠다‘는 오기와 자본주의 마인드로 접근해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내 주면 좋겠다.


현존하는 걸그룹 중 이런 무대는 그 어떤 걸그룹도 할 수 없으리라 확언하면서, 이제라도 돌아와서 참 다행이다.


Golden moon, Diamond stars
In a moment, we unite



아래는 뉴진스의 EP 발매 직후, 썼던 감상평입니다. 시간이 되면 읽어주시고 아니면 넘어가 주셔도 됩니다. 제가 뉴진스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글이라 포기가 안 되네요.





뉴진스의 새 EP <Get up>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


큰일 났네, 다음엔 뭘 하려나


쓸데없는 걱정이지만 정말이다. 뉴진스에게는 예측이라는 명확함보다 기대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이 어울린다. 뉴진스의 다음을 예측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늘 기대를 넘어선 무언가를 들고 나온다. 그래서 걱정이다, 커지는 기대가 익숙함의 유통기한을 단축시켜 금세 식상함으로 변질될까봐.


자, 안 좋은 소리를 먼저 다 했으니 이제 칭찬할 일만 남았다. @진지 작가님보다 뉴진스에 대해 더 잘 쓸 자신은 없지만, 나름의 감상을 남기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다.





뉴진스의 <Super Shy>가 나오자, 아내가 내게 물었다.


ㅡ 이번 뉴진스 노래 어때?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ㅡ 너무 좋아, 한 번 듣고도 노래가 기억이 나잖아


노래를 꽤 많이 듣는 나는 한 번 들어서는 웬만한 노래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Super Shy>는 정말 신기하게도 한 번 듣고도 계속 멜로디가 입속에 머물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됐다. 선공개곡이 이 정도인데! 이번 앨범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졌다.


앨범의 모든 노래를 듣고, 뮤직비디오와 안무를 본 후 내 생각은 이렇다.


동시대의 걸그룹, 아니 아이돌을 통틀어
이 정도 레벨에 오를 수 있는 경쟁상대가 있을까


우선 내가 이번 앨범에서 가장 놀란 부분은 음악이 아니었다. 이었다.


데뷔 시절의 뉴진스를 떠올려보자.(엄청 오래된 것 같지만 불과 1년 전이다) 또래에 걸맞게 꾸밈을 최소화한 헤메코(헤어/메이크업/코디)를 비롯해 비트와 멜로디 등 음악적 콘셉트는 신선했지만, 춤은 무척 쉽게 구성됐다고 보았다. 물론 디테일은 커버 댄스를 추는 아마추어들과 한참 차이나 보였지만, 동작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게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춤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만든 노래라는 생각까지 했다. 선공개곡인 <Super Shy>에서는 K-Pop의 메인 안무로 채택된 적이 없거나 아주 일부만 차용했던 왁킹(Waacking)이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다. 현란한 손놀림과 유연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왁킹 댄스는, 대유행을 일으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립제이를 통해 많은 대중에게 알려진 바 있다.


스우파 급의 전문적인 왁킹 댄스는 아니지만, 디스코와 같은 전문 장르에만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왁킹 댄스를 뉴진스의 음악에 이질감 없이 묻혀낸 전략. 이를 너무나도 잘 소화한 멤버들의 춤 실력이 이 노래와 무대를 현재까지 음원 1위로 유지시키는 원동력이 아닐까.



이번 EP 앨범의 모든 트랙마다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가 있다. 뉴진스의 안무는 치밀한 동선은 물론이고, 언제 어디서 어떤 멤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창의적인 구성, 각 잡힌 군무 속에서 멤버마다 손동작으로 다른 디테일을 부여해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풍성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냈다는 점에서 기존의 아이돌과 차별화된다.


이번 앨범의 모든 트랙 6곡의 러닝 타임을 더하면 채 15분이 되지 않는다. 가장 긴 <Super Shy>가 불과 2분 34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했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안무가 외우기도, 추기에도 너무 빡세서 곡을 줄였나 보다


라는 생각을 해 봤다 ㅋㅋ


안무의 장르 역시 다채롭다. 선공개곡 <New Jeans>에서는 섹시미를 강조한 여성적인 안무를, <ETA>에서는 쪼개지는 박자마다 타이트하게 이어지는 힙합 안무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놀란 안무는 바로 <Cool With You>다.



세상에, 무려 고전무용인지 현대무용인지 한국무용인지 모를, 어쨌든 무용을 안무에 차용했다.(자세히 확인해 보니 자유분방한 움직임을 추구하는 현대무용의 한 장르인 '컨템포러리 댄스'라고 한다) 무용이 유용해지는 순간이다. 다분히 현대적인 춤사위와 몽환적인 보컬이 무척 잘 어울리는 영상이다.






<Cool With You>를 감상하니, 문득 뉴진스가 노래를 이렇게 잘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아이돌 음악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성이다. 잔잔한 도입부(Verse)를 지나, 약간의 고음을 선보이는 훅(Hook)까지의 시퀀스를 두 번 반복한 후, 초고음을 자랑하는 브릿지(Bridge) 영역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가창력이라는 것이 폭발하고야 만다. 이를 위해 고음만을 담당하는 멤버(a.k.a. 컬)가 따로 있다.


진지 님의 평론에도 나왔듯 뉴진스의 노래, 특히 이번 앨범은 이지 리스닝으로 분류되고 있다. 다른 아이돌 음악과 달리 고음(하이라이트)으로 치닫는 구성이 아닌 특정한 Verse 1, 2의 반복구조라는 얘기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듣기에 편하다고, 부르기 편하다는 뜻은 아니다.


뉴진스에는 메인 보컬이나 메인 댄서가 따로 없다. 심지어 곡의 콘셉트에 따라 센터가 달라지고, 곡 안에서도 수시로 센터는 교체된다. 이들은 (솔직히 멤버마다 아예 편차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전성기의 동방신기처럼 누가 어느 파트를 할당받아도 노래든, 춤이든 평균 이상을 해내버린다. <Cool With You>의 "Cooooooool" 부분을 부를 때 유려하게 이어지는 밴딩은 굳이 고음을 꺼내지 않더라도 멤버들의 내공이 느껴진다.


뉴진스 멤버들의 가창력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 영상이 있다. 아이유가 호스트로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 <아이유의 팔레트>에서 뉴진스가 부른 아이유의 <Celebrity>다.







뉴진스에는 동시대 탑티어 걸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브의 안유진, 르세라핌의 김채원 같은 끼쟁이 멤버들이 없어 보인다. 기본적으로 아직 예능 프로그램에서 풀어낼 만한 에피소드 자체가 없는 연령이기도 하거니와, 출연했던 <유퀴즈>나 <아이유의 팔레트>를 보면 그들에게서 재치 있는 드립을 기대하는 것까지는 무리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끼 없음'이 어떤 곡에도 어울리는 콘셉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콘셉트 장인이라 불리는 총괄 프로듀서 민희진은 이 글 서두에 밝힌 나의 걱정에 묘한 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걱정 마, 뉴진스와 풀어나갈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니까


데뷔 당시 검은 생머리와 과하지 않은 메이크업, 하이틴스러운 무대 의상으로 뉴진스라는 신인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민희진의 초창기 전략은 어쩌면 이후 그려낼 다채로운 채색을 위해 스케치만 그려진 빈 캔버스를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빈 캔버스에 순백의 물감으로 티 없는 배경색을 만든 후에야 스케치를 허락한 느낌마저 든다.


꾸며내지 않아도 충분한 멤버들의 매력과 어떠한 콘셉트도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는 멤버들의 천부적인 재능, 앞으로 이어나갈 스토리텔링에 자신 있었던 민희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데뷔 때 이렇게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을 것이다.


뉴진스의 노래에 뉴진스다움이 없다는 걱정을 잠깐 해 봤다. <Hype Boy>에서 <Ditto>, <OMG>에서 <Super Shy> 사이에는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그 어떤 공통점도 느껴지지 않는다.(전문가들의 유튜브를 보니 전작과 이번 앨범의 주요 곡들에서 UK 개러지와 저지 클럽이라는 장르에 근간한 비트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지만 흠... 막귀인 나는 운용하는 멜로디와 리듬의 차이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정정했다. 뉴진스다움이 없다는 것이 뉴진스다움이 아닐까. 나중에 트로트마저 트렌디하게 섭렵할 것만 같은(?) 이 다섯 명의 천재소녀들에게 다음을 기대하고, 나음을 기약해도 괜찮겠다 싶다. 이제 막 스케치에 어울리는 색채들이 칠해지고 있다. 그림이 완성되면 완성되는 대로, 미완이면 미완인 채로 언제나 그들은 스스로를 다른 이들과 구별지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