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메타인지로 무장한 내가 나를 까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일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은 뚜렷한 목적이나 목표가 없다. 알아도 못 고칠, 안 고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잘 팔리는 글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잘 팔리는 글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처음부터 너무 철퇴를 내린 기분이다. 내 글이 잘 안 팔리는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서다.
언론고시를 준비해 본 사람으로서, 전현무는 언론고시계의 메시다. 실기도, 면접도 잘했겠지만 언시생 모두가 칭송했던 것은 그의 글솜씨였다. 그가 생방송에 지각하고 쓴 반성문(?)을 보면 세상에 이런 명문이 없을 정도다. 그런 전현무는 15개의 글로 무려 9349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유명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
vs.
평범한 사람의 유명한 이야기
당신이라면 무엇을 읽을 것인가. 단연 '유명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최근에 읽은 이경규의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문장력 만으로 무릎을 칠 일은 솔직히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심플하고도 직관적인 메시지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이를테면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말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실수가 잦아진다.
무식한 놈이 신념을 가지면 제일 무섭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폄하해서는 안된다.
이런 문장들이 와닿는 이유는, 이 문장을 지어낸 이가 이경규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삶을 그대로 읊기만 해도 통찰이 된다. 그러나 무명한 우리는 아무리 독창적이고, 삶의 이정표가 될만한 생각을 깨우쳐도 널리 알리기 힘들다.
이런 생각도 해봤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유튜브 채널과 골드버튼 유튜버의 신간. 파급력을 단순히 비교하긴 힘들지만, 골드버튼 유튜버의 신간이 훨씬 유명해질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글빨만으로 유명세를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유튜브를 해보라며 권한다. 근데 나는 유튜브에서 다룰 콘텐츠가 없다. 거기는 활자 시장보다 훨씬 빡세고 극단적인 곳이다. 대충 아는 걸로는 택도 없다. 아무런 유명세가 없는 사람이 네임드 유튜버가 되려면 몇 년 후를 내다보고 신선한 아이템을 꾸준히 올린다든지, 극단적인 말과 행동으로 관종이 되는 수밖에 없다.
잘 팔리는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글일 것이다. 내가 글로써 전하는 이야기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만한 글들이다. 내 잡소리를 읽느니 오히려 네이버 검색을 통해 블로그를 보는 편이 훨씬 얻을 게 많겠다. (실제로 나도 내 글보다는 네이버 블로그를 많이 보는 것 같다)
브런치스토리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있다. 마케팅 전문가, 인사 전문가, K-Pop 전문가, 역사 전문가, 글쓰기 전문가, 인생(?) 전문가...... 이런 분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 공부한 것들만 고스란히 풀어놓아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는다.
나는 어떠한가. 가끔 회사와 직장생활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한다. 주로 좋은 콘텐츠를 보고 느낀 것들을 쓰는 2차 가공물이 많다. 그것이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지면 가끔 유명한 포털 메인에 노출돼 SEO(검색엔진최적화)에 맞물려 소비되지만
야! 담담댄스가 대체 누구야? 당장 알아봐!
이런 호들갑이나, 반향은 없다.
누군가 내게 직장생활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볼 일도 없지만, 물어본다고 해도 나는 글로 답을 해줄 수 있을만큼 전문가가 아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은지, 요즘의 음악 트렌드는 어떤지, 이 뮤지션의 특징이 신보에 어떻게 담겼고 변주됐는지 분석도, 큐레이션도 못한다. 그저 추천하고 공감할 뿐이다.
어쩌면 전문성은 진짜로 많이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훈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참 아이러니하다. 한 가지 이야기를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 수여된다.
소위 주식 전문가라는 사람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보라. 진짜 주식으로 올린 수입보다 몇 번의 성공 경험을 책으로 펴내거나 각종 방송, 행사, 강연에 출연해 얻는 수입으로 부를 얻는다. 취업에 전문가가 어딨겠나. 콘셉트를 '취업'으로 잡고 꾸준히 한 길만 판 미미미누 같은 사람 정도가 본인의 타고난 끼를 활용해 유명해질 수 있다.
나는 말로 사람을 웃길 수 있냐고 한다면 어느 정도는 자신 있다. 그런데 글로는 도저히 웃길 수가 없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유독 글로는 재미를 주기가 어렵다. 지식보다 공감을 지향하는 내 글이 재미가 있었다면 최소한 브런치스토리에서만이라도 대형 스타가 됐을 것이다.
글을 73개나 썼는데 구독자는 19명이다. 별 하나에 동경을 담았듯, 글 하나에 구독자 한 명씩 담고 싶었는데. 흙. 이런 상황이기에 19명의 구독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이 분의 글을 보면 정말 날 것 그대로의 '재미' 자체가 압도적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채널 아이디도 @busyqueen이시네)
어찌 보면 글빨만으로 재밌기는 누구라도 어렵겠다. 김분주 작가님처럼 평소 생각이 기발해야 일상 속의 경험을 위트라는 캡쳐 도구로 캡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겐 그런 기발함이 없다.
점점 얘기가 산으로 가는 것 같다. 이 필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챗GPT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괜히 물어봤다. 챗GPT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챗GPT가 이 정도를 써내니 내 필력은 하찮을 따름이고, 글이 안 읽힐 수밖에 없겠다는 자괴감이 더 든다. (이 질문을 하고 몇 마디를 더 나눠봤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필력이 좋다고 느꼈던 사람은 너무나도 많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소설가 김훈과 문학평론가 신형철, 두 사람이다. 김훈은 특유의 짧고 간결한 문장에서 말 그대로의 힘(力)이 느껴진다. 그 힘에는 이성과 정서를 모두 움직이는 역설이 있다. 그의 문장을 읊조리면 특유의 리듬감마저 느껴진다. 누군가 글쓰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면 김훈의 어떤 소설 한 권이라도 읽어보길 권한다. 흉내만 내더라도 못 쓴 글은 아닐 것이다.
신형철의 문장은 의미와 형식 모두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정확함을 추구하려는 강박적 태도에서 비롯한다. 때로는 어려운 단어가 쓰이기도 하지만, 신형철이 얘기한 대로 모든 문장은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갖기 때문에, 어떠한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고르고 고른 단어일 게다. 그렇게 쓰인 문장은 그 어떠한 문장으로도 치환될 수 없다.
이 밖에도 메시지, 사실 충실성, 문단 편집...... 잘 쓴 글에는 무수히 많은 요소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네, 알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잘 안 팔리네요. 안 팔려요!
많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실 나는 300명 넘는 브런치 구독자도 가져본 적이 있다. 그 구독자의 3/4 이상은 맞팔로우 개념의 비자발적 선의에서 비롯했고, 남은 구독자의 반 이상은 지인에게 영업해 얻어낸 결과였다. 나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글쓰기에 점점 제약이 생겨 기존의 페이지를 폐쇄하고, 새로이 열었다.
큰 목적과 목표 없이 다시 시작한 글쓰기였지만, 글쓰기에 재미를 붙일수록 많이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스며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유명하지도 않고, 얻어갈 것도 없고, 드럽게 재미도 없는데, 필력도 그닥인 내글이 그래도 누군가에게 '읽히기'는 한다는 것. 그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의미와 재미를 모두 담으면 원이 없겠지만, 그중 의미만은 꼭 담아내리라 반성과도 같은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