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서사가 없는 AI

해석하는 존재 3

by 로미코샤Romicosha

최근 들어

인간의 사고 속도가

기술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AI의 발달은 이미

인간이 예측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고,

우리는 그 변화의 결과를

뒤늦게 해석하는 위치에 서 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이 시대에

인간이 가진 고유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기술은 이미 인간의 많은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계산은 더 정확해졌고, 기억은 더 방대해졌으며, 판단은 점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변화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능력의 관점에서 보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혼란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고유성이

‘무엇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결핍한 채 살아가느냐’에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핍을 다루는 방식으로

인간은 늘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인간은 결핍 때문에 서사를 만든다.


결핍을 설명하지 않은 채 두면

감정은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사람은 사건을 묶고,

의미를 연결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 서사는 감정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이자

자신을 견디기 위한 임시 구조물이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서사는 감정을 처리하게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 빠른 결론으로

현실을 단순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서사 없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결핍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AI는 이 지점에서 인간과 다르다.


AI는 오류를 수정하지만

그 오류를 ‘부족함’으로 느끼지 않는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상처를 기억하지 않으며,

다음 상태를 위해 의미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AI에게 수정은 개선일 뿐이고,

과정은 기록일 뿐이다.

그 안에는 견뎌야 할 감정도,

설명되지 않은 불안도 없다.


그래서 AI는

성장의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다.


결핍이 없기 때문에

서사가 필요하지 않다.

서사가 없기 때문에

AI의 세계는 언제나 패턴으로 구성된다.


패턴은 정확하지만

삶은 아니다.


인간은 결핍을 견디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AI는 결핍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 바깥에 머문다.

이 차이에서

두 존재의 방식은 처음부터 갈라진다.


그래서 AI는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층위가 있다.


AI는 기술적 대체물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정답을 계산하며, 효율을 극대화한다.


반면 인간은

의미를 해석하는 존재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붙잡고,

왜 이 일이 나에게 중요한지를 묻는다.


기술은 답을 만든다.

인간은 질문을 만든다.


이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결핍이고,

그 결핍을 다루는 방식이

서사다.


이 차이가

인간의 생명력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서사가 언제나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서사를 과도하게 붙이면

현실은 왜곡되고,

서사를 완전히 거부하면

의미는 사라진다.


인간은 서사 없이 살 수 없지만

서사에 지배받아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서사와 세계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감각이다.

이 해석이 지금 나를 돕는지,

아니면 나를 우회시키는지

가만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감각이 있을 때

우리는 기술의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으로 남는다.


서사를 만드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서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매거진의 이전글서사로 자신을 이해하는 일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