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

그냥 작은 UFO가 아냐, 그건 거대한 함선이었어

by Rooney Kim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야. 한 달 전이었나. 그랬었던 것 같애. 그날은 평소랑 크게 다를 게 없었던 토요일 오후였어. 하늘은 맑았고 구름도 그리 많지 않은 청명한 날이었지. 우리 아파트가 바로 바다 앞이라 베란다에서 고개를 내밀고 바다를 보면 기찻길 뒤로 해안도로가 있고 그 뒤로 앞바다가 보이거든. 원형통 모양의 시멘트 사일로가 있는, 선적을 위해 큰 배가 오가는 선적장이었지만 그래도 멀리 바다와 돝섬이 보이는 꽤 경치가 좋은 곳이었지.


형은 그날도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었어. 블루스 브라더스나 퍼즐게임 등을 할 땐 나도 종종 같이 게임을 하곤 했지만 삼국지 등 다른 게임을 할 땐 형이 거의 컴퓨터를 차지했지. 사실, 난 컴퓨터 게임을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해서 형이 게임에 빠져있는 동안 보통 다른 걸 해.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걸 바탕으로 판타지 세계관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그랬어. 암튼 오후 다섯 시쯤 되니까 그것마저도 지루해져서 부엌으로 가서 엄마가 끓여놓은 카레를 한 숟갈 떠서 먹었다가 과자가 없어서 냉장고에 보관된 아주 오래된 강정을 꺼내서 먹었는데 냉장고에 너무 오래 보관돼서인지 강정 맛보다 냉장고 냄새와 맛이 나길래 도로 냉장고에 넣고 베란다로 갔어. 우리 집은 거실과 베란다 사이의 문을 떼어내고 베란다에 나무로 바닥 틀을 짜넣어 거실과 높이를 똑같게 만들었어. 그래서 거실이 확장되면서 더 넓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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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보니 날씨가 기가 막혔어. 나가서 놀다 올까 했지만 형도 한참 게임 중이고 부모님도 두 시간 정도 지나면 돌아오실 것 같아서 관두고 창문을 열고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어. 그러다 자연스레 앞바다가 보이는 항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 다섯 시가 넘어서인지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며 동쪽과 남쪽에 파스텔톤 색의 하늘을 그려내고 있었지. 너무 예쁘더라고 그래서 한참 바다와 하늘을 번갈아보고 있었어. 그런데 그날따라 항구 쪽 그러니까 시멘트 사일로와 선적장처럼 보이는 곳 위로 연 같은 게 수십 개나 보이는 거야. 말 그대로 연 말이야. 설 명절에나 한 해 액운을 담아 날려 보내려고 하늘에 띄우는 그 ‘연'. 그런데 이상하잖아. 우리 앞바다는 그런 걸 날릴 만한 공공장소나 공원도 아니고, 이 전에는 한 번도 그런 걸 본 적이 없었어. 게다가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가 보이는 건 미심쩍을 정도였어.

혹시 연날리기 축제 같은 걸 하나 생각했지만, 이 가을에? 그것도 시멘트 공장 선적장에서? 수십 명이나? 이래저래 그 어떤 이유 하나 그 장소랑 너무 어울리지 않았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연 날리는 사람들이 있나 살필 겸 아래를 봤어. 아무도 없었지. 모래 부두 앞으로는 해안 도로가 있었는데 차도 몇 대 다니지 않았어. 부두에는 모래가 산처럼 쌓여있었고 주말이라 당연히 일하는 사람도 없었어. 그래서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지. 그런데 다시 쳐다보니 그건 연이 아니었어. 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창문이었던 거야. 아니, 그냥 창문이라기보단 빛이 나는 창문이라고나 할까? 마치 SF 영화에서 봤던 거대한 우주함대에서나 볼 법한 우주선에 달린 수백 개의 불빛 같은 것 말이야. '설마, 그럼 저게 뭐지?' 하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씻고 돌아보니 아깐 보이지 않던 희미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어. 수십 개 아니 이젠 족히 백 개는 넘어 보이는 반짝이는 창을 층층이 가진 거대한 함선 같은 형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거야. 하지만 불투명하고 희미하게 빛나서 완전히 선명하게 형체를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았어. 당연히 공중에 떠 있었고 자세히 보니 선적장 위가 아니라 조금 더 먼바다 쪽이었어. 저렇게 큰 함선이 연안에 있었다면 사람들이 모를 리도 없으니 말이야.


그러니까 이게 뭐냐고? 맞아, UFO였어.


점점 거대한 우주선의 형태를 드러낸 UFO는 아주 느린 속도로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었어. 빛나는 창들이 점점 사일로 뒤쪽으로 사라지면서 우주선의 다른 옆면이 드러나 보이는 거야. 연인 줄 알았던 불빛의 수는 뒤로 갈수록 줄어들었어. 우주선의 후미, 즉 꼬리 부분이었던 거겠지?. 맙소사! 생각났어 스타워즈의 우주선, 그 정도 크기의 우주선이었어! 내가 UFO를 발견했을 땐 바로 앞의 연처럼 보여서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대한 우주선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니, 생각보다 조금 더 먼바다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맞은거야. 어쨌거나 지금 우리 집 앞바다에 저렇게 거대한, SF영화에나 나올법한 우주선이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흥분됐어. 나도 정신이 없다 보니 게임을 하고 있던 형에게 말할 틈도 없이 망원경을 챙겨 들고 내방으로 달려갔지. 그런데 쌍안경이 아니다 보니 초점을 잡기가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그냥 맨눈으로 봤어.


아까 우주선이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 방 창문을 활짝 열고 이번엔 오른편 바다를 향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 아니나 다를까, 작은 불빛들이 하나둘씩 보이더니 곧 수십 개의 불빛을 가진 우주선의 옆면이 드러나는 거야. 이젠 우주선의 형체도 많이 보여서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빛의 함선 몸체가 웅장하게 드러났어. 더 이상 내 눈을 의심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진짜 내 눈앞에 보였으니까! 그런데 여전히 옆면만 보이는 거라 길쭉한 몸체만 보였어. 우주선은 동일한 속도로 계속 동쪽으로 향했어.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봤지. 지금이라도 형을 부를까 했지만, 형을 부를 틈도 없었어. 만약, 잠깐이라도 형을 부르러 간 사이에 우주선이 사라지면 난 어쩌면 내 생애 다시는 없을 UFO를 아니, 거대 우주선을 볼 기회를 놓치는 거니까. 여하튼 마침내 우주선의 후미 부분이 드러났어. 우주선 옆면에 붙어있는 백개도 넘어 보이는 불빛은 자칫 불규칙한 패턴으로 반짝이는 듯했지만 우주선의 형태에 따라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었어.


필름이 있으면 사진이라도 찍을 텐데 보통 어디 놀러 가기 전이 아니면 집에 여유 필름을 따로 사놓지는 않잖아? 게다가 사진기는 안방 장롱 안에 있는데 그거 찾다가 우주선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안 되니 난 그저 넋 놓은 사람처럼 우주선만 주시했지. 그때였어. 잠시 이동을 멈추고 허공에 떠 있던 우주선이 다시 서서히 움직이는 거야. 이번에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고 마치 남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 같았어. 왜냐하면 우주선의 앞쪽의 불빛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수십 개가 없어졌거든. 즉, 우주선의 앞쪽 머리를 남쪽 하늘로 돌린 거지. 그러자 기다랗던 우주선이 점점 타원형 비슷한 모양으로 변했어. 꼬리 부분, 즉, 우주선의 뒷부분만 보인거야. 거기에도 불빛은 몇 개 보이긴 했어.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거지. 저러다 사라지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번쩍'하는 작은 섬광과 함께 사라져 버렸어. 그냥 온데간데없이 그 큰 우주선이 그냥 사라졌어. 빠르게 날아간다거나 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그냥 그렇게 사라진 거야.


뭐랄까. 무엇에 홀린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어. 해안도로의 차들은 마치 5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무심하게 지나다녔고 길가에 보이는 몇몇의 행인들도 그냥 자기 갈 길을 가는 중이었어. 마치, 아무도 이 광경을 못 보고 나 혼자만 본 것 같았어. 나 혼자 가슴 뛰고, 순식간에 벙쪄버린 거지. 난 곧바로 형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어. 그런데 형은 한창 삼국지를 하느라 바쁘더군. 그래서 '어, 맞나? 진짜?' 이러고는 계속해서 게임을 했어. 아무렴 어때 난 정말 우주선을 봤거든.


예전부터 생각했어. 이렇게 넓고 광활한 우주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을 리 없잖아? 그리고 지구보다 더 뛰어난 과학 기술을 가진 생명체는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어. 그래서 기뻤지. 그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동시에, 단순히 작은 비행접시가 아닌, 거대한 우주선을 봤으니. 일생 동안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거 아냐? 언젠가 다시 그들을 만나길 바라며, 또 그들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지구로 오길 바라며.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u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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