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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Oct 14. 2021

‘프리랜서 상근직’이라는 신인류

열심히 일하며 기다리면 정직원이 될거야 

<(나의)노동의 미래> #03


첫 번째 해고를 당하고 실업급여로 지낸 지 4개월이 지났을 때 취업에 성공했다. 첫 두 달은 오히려 좋았다. 일하지 않아도 나라에서 월급을 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받았던 실업급여는 당시 최저임금 수준이었는데 그렇더라도 잡지 어시스턴트 월급보다는 몇 십만 원이 높았다. 먹고살만했다.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며 남산의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는데 처음으로 동네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날마다 남산 이쪽저쪽의 공원을 걷고 SNS에서 유명하다는 카페도 가봤다. 모두 걸어서 5분 거리지만 바쁜 일상으로 인해 그동안 누리지 못하던 환경이었다. 



지금까지 3번의 해고를 당하고 3번의 실업급여를 받았다. 매 번 6개월로 기간은 같았으나 내게 책정된 금액은 달랐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있다는 걸 2년꼴로 받았던 실업급여로 체감했다. 내 연봉은 오르지 않지만 나라의 최저임금은 오르고 있었다. 내 집의 월세도 몇 년 동안 오르지 않았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누군가는 나랏돈으로 먹고 산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다.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듯 나는 해고의 대가로 실업급여를 받게 되었지만 단 한순간도 실업급여를 받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일이 하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3번의 실업 급여 중 6개월을 모두 채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실업 기간이 3개월이 되면서 여유롭다 생각했던 시간의 대부분을 불안이 채웠다. 다시 에디터로 일할 수 있을지, 취업은 할 수는 있을지 모두 걱정이었다. 날마다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새롭게 올라온 입사 공고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잡지계의 경우 공채는 없다고 말할 수 있고 도제식인 만큼 선배가 후배를 다른 매체에 '꽂아'주거나 소개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잡지 에디터 공고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암감에 습관처럼 사이트에 들어갔다. 



취업 사이트에 방문 후 확인하는 곳은 포털사이트의 카페다. 잡지 에디터 준비생을 대상으로 만든 이 카페에는 어시스턴트를 구한다는 공고가 주로 떴다. 당시엔 좋은 매체라면 어시스턴트부터라도 다시 시작할 의향이 있었기에 어시스턴트 구직 공고도 날마다 확인했다. 그리고 어느 날 이거다 싶은 구직 공고가 올라왔다. 



공고 속 매체는 여성 대상의 로컬(국내 기업이 만든 잡지) 잡지로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했다. 모태가 되는 회사는 잡지는 물론 아동서나 만화책 등을 내는 출판사와 신문사까지 거느린 거대 미디어그룹이었다. 특히 기업의 역사와 함께 한 매체인만큼 잡지계가 위기인 와중에도 폐간될 가능성이 낮았던 것이 내게는 가장 큰 매력이었다. 글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내게 사회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기사 또한 매력적이었다. 해고 후 내가 직장을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은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탄탄한 기반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에디터가 됐다. 실업급여를 받은 지 4개월이 막 지나던 때였다.               



사실 재취업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월 190만 원이던 월급은 월 140만 원이 됐고 에디터라는 직함 앞에는 ‘프리랜서 상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프리랜서와 상근이라니 붙을 수 없는 두 단어가 붙어 있었다. 프리랜서이지만 다른 직원들처럼 9시에 출근해 야근이 없다면 6시에 퇴근해야 했다. 직원은 아니지만 직원처럼 일해야 했고 직원이 누리는 복지는 누리지 못했다. 내가 받은 140만 원이란 월급은 경력이 있기 때문에 많이 쳐준 것이라고 했고, 열심히 일하면 정직원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다시금 희망고문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참 순진하기도 했지).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다시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새롭게 일하게 된 매체는 <에스콰이어>보다 마감 기간이 3~5일 정도 더 길었고 그만큼 한 달에 써야 할 기사도 더 많았다. 내가 있던 팀은 정재계는 물론 연예계 이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팀으로 인터뷰가 가장 주요한 기사였다. 좋은 물건을 매체만의 시각으로 소개하는 전직과는 일의 결이 달랐다. 입사와 함께 그 해에는 국정농단 사태와 대선이 연이어 이어지며 어느 때보다 다이내믹한 시기를 보냈다.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몰라 항상 대기하는 마음이었다. 



인터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새로운 직장에서 내게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은 바로 유명인 섭외였다. 연예인이 될 수도 있고, 정치인이나 유튜버가 될 수도 있다. 업계를 막론하고 대중의 관심이 높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인터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간혹 마감 직전 섭외가 성사되면 인터뷰와 기사 마감까지 단 이틀 만에 이루어질 때도 있다. 가끔은 ‘헤딩’이라는 것도 나가는데 특종을 잡기 위해 잠복하는 것으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기에 헤딩이라고 부른다나. 고작 두어 번 해본 것이 다지만 나는 특히나 이 헤딩에 취약했다. 



인터뷰가 아닌 기사로는 대중적으로 관심이 높은 이슈나 사람에 대한 기사를 썼다. 당연하게도 흥행하는 드라마와 연예인 이슈가 주된 내용이었다. 누군가의 힘든 상황이 내게는 한 달치 기사 아이템 중 하나일 뿐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며 한 방송 뉴스 사회부에서 제보를 받는 알바를 한 적이 있다. 3교대로 일하며 로테이션을 돌며 한 달의 1/3 정도는 새벽에 일을 했는데 고요하던 어느 날 새벽 당직이던 한 기자가 ‘사건 좀 안 생기나’라고 말했던 것에서 묘한 환멸을 느꼈다. 무탈을 기원하면서도 사건이 생기지 않으면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직업에 대한 연민도 생겼다. 몇 년 후 내가 바로 그 직군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당시 나는 대중이 사건사고로 구설수에 오른 젊은 가수들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보통 그런 기사의 경우 개인적인 생각은 거둬내고 객관적인 사실들을 나열하여 쓰게 된다. 완성된 기사의 내용은 둘째치고 기사를 쓰기 위해 그 사람의 행적을 쫒다 보면 오히려 그 사람이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기사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잡지 표지를 장식하게 된다. 잡지 제작에 있어 필요한 업무일 뿐이다. 내게도 그랬다. 몇 년이 지나 내가 기사를 썼던 연예인 중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자로서 이런 일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타인의 사건사고가 내 업무성과가 되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열심히 일했다. 3일 동안 잠 한숨 자지 못한 적도 있고,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면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회사 수면실에서 쪽잠을 자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업무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하면 정직원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회사 측에 정직원 여부에 대해서 재차 물었다.'저 정직원 시켜주시는 거죠?' 용기 낸 질문이 무색하게도 돌아오는 답은 열심히 하며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3개월이 지나면, 6개월이 지나면 정직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9개월이 될 때까지 아무런 기약은 없었다. 티오가 가뭄에 콩 나듯 생기는 잡지계이지만 내가 일했던 자리는 이미 티오가 있는 자리였다. 정직원으로 근무하던 전임자가 퇴사하고 그 자리에 앉게 된 것이 나였기에 실력만 인정받으면 수개월내로 정직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더 이상 일을 열심히 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소진되어 버렸다.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장기간 지속된 저임금으로 인해 통장은 마이너스를 넘어 이미 카드값을 돌려 막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월세는 그대로일지언정 일상의 비용은 높았다. 명품이나 해외여행은커녕 차비를 아끼고 밥값을 아껴 아껴 일상이 구질구질해지는 만큼 나란 인간도 구질구질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공포에 떨었다. 그때 전 직장의 편집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이직 제안을 했다. ‘지금 받는 거 두 배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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