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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Oct 16. 2021

성희롱 진정서 제출 후 회사를 떠났다

재계약이 코앞인데 그러면 어떡해

<(나의)노동의 미래> #4


장기근속. 전 직장을 얼마나 오랫동안 다녔느냐는 이 사람이 우리 회사에서도 얼마나 성실히 오랫동안 근무할 것인가를 예측해 준다. 한 사람을 채용해 성과를 내는 직원으로 만들기까지 회사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니 어렵사리 뽑은 직원이 가능한 오랫동안 회사에 다녀주길 원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다.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재일지라도 몇 개월 혹은 1년 텀으로 이직을 한 사람이라면 많은 후보자 중 선택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뼈를 묻고 싶던 회사에 다닐 때는 ‘너무 자주 회사를 옮겨 다녀서 이 회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래 다녀야 해. 장기근속한 경력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한 선배의 이야기에도 ‘그런가 보다’하고 말았다. 한 번의 해고와 고질적인 저임금에 시달리니 장기근속이란 것이 생각보다 대단히 어려운 것이란 걸 깨달았다. 한 회사를 5년 이상 다니고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땐 존경심마저 일었다.



장기근속이란 것은 일의 고난과 시련과도 맞바꿀 수 있는 값진 타이틀이다. 30대의 내 커리어를 위해서 내게도 장기근속이란 타이틀이 필요했다. 그러나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나는 어렵사리 다시 들어간 잡지사 에디터 자리를 9개월 만에 박차고 나왔다.



일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고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대한 불만만 쌓여가는 시기에 전 직장 상사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너 요즘 뭐하니? 얼마 받고 있어?’ 숨길 것이 있을쏘냐. 나는 약간의 원망을 담아 대답했다. ‘일하죠. 월에 140만 원 받고 있어요’. 상사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너 지금 받는 거 두 배 줄게. 내 밑에서 일해 볼래?’



거절할 이유는 많았다. 그가 새롭게 일하게 된 회사는 신생 광고 회사였고, 내 포지션은 광고 AE였다. 광고 콘텐츠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클라이언트의 ‘컨펌’을 받아야 하는 일이고 그 과정은 지난하고 고단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시는 잡지 에디터가 될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겐 그 제안을 승낙할 단 한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두 배의 월급. 나는 구질구질한 삶을 개선하기 위해 입사 9개월 만에 다시 이직을 선택했다.  



새롭게 일하게 된 회사에서는 직함이 생겼다. 나는 ‘김대리’가 됐다. 선후배 관계로 직함 없이 일하는 잡지사에서는 '00 씨', '00아', '00님' 혹은 '기자님’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는데 직급으로 조직이 구성되는 새로운 회사에서는 내 포지션을 정의해 줄 직함이 필요했다. 내가 속해 있는 팀은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하던 회사에서 새롭게 꾸린 광고팀으로 나를 포함해 내 상사, 다른 동료 한 명으로 총 3명으로 구성됐다.



모델 에이전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기업에 광고 모델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광고 촬영을 위해 브랜드가 모델 의뢰를 해 오면 브랜드의 이미지나 광고 콘셉트에 맞는 모델을 물색해 제안하고 그렇게 성사된 계약에서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지불받는 것이다. 배달앱의 구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수수료 비율 자체는 크지 않으나 몇 억대를 호가하는 광고 모델료를 생각하면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다. 회사는 모델 에이전시 이후의 스텝으로 콘텐츠 제작을 하기로 했고 이를 이끌 팀장으로 잡지 편집장 출신인 내 EX상사가 선임된 것이다.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대표로 인해 입사하자마자 대기업들과의 미팅이 이어졌다. 정신없이 이동하며 미팅을 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 있었고 언제 적응한지도 모른 채 나는 광고회사 직원이 되어 있었다. 광고를 위해 광고주와 제작사가 미팅을 할 때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갑의 권한을 행사하고 싶은 자와 을이지만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말해야만 하는 자들의 보이지 않는 혈투가 진행되는 것이다. 나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무장을 했다.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했다. 작은 키와 비교적 어려 보이는 얼굴로 혹시라도 ‘만만’하게 보일까 봐 외모를 한껏 치장했다.



광고 AE였던  업무는 사실 콘텐츠 제작이 아니었다. 3명이서 볼륨이  대기업의 광고를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역할은 브랜드와 제작사의 사이에서 광고 제작이 문제없이 진행될  있도록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었다. 광고 제작에 가장 중요한  크리에이티브라고 했나? 맞다. 내게도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광고주가 흡족해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제작팀이 일을 진행할  있도록 창의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했다.



‘말씀하셨던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콘셉트에 맞게 각각의 요소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혹시 수정하고자 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수정 부탁드릴게요. 아시잖아요. 제가 정말 이 시간에 이러고 싶겠어요. 저도 클라이언트 때문에 죽겠어요. ㅠ.ㅠ 저 봐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부탁드려요. 저 좀 살려주세요.’  


말하자면 위와 비슷한 대화들이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광고 영상 촬영은 새벽까지 이어졌고 나는 클라이언트와 제작사 사이에서 의견 조율에 여념이 없었다. 수월한 편집을 위해서는 완성도 높은 촬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현장에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내용이 전달되었고 나는 그로인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을로서 일하는 것이 당연했고 사회의 부조리와 부도덕에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수치심은 감당해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날이 밝고 나는 고용노동부를 찾았다. 그리고 성희롱에 따른 진정서를 접수했다.



며칠 후 회사 대표 앞으로 우편이 하나 날아왔다. 내가 낸 진정서에 의해 고용노동부에 출석을 하라는 내용이었고, 거기엔 해당 광고주도 출석해야 했다. 소식이 전해지고 가진 첫 미팅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곧 있으면 재계약인데 이런 걸 하면 어떡해’.





회사의 여성 비율은 95% 이상이었고 내게 그 말을 했던 이도 여자였다. 내가 한 행동이 회사의 이익에 영향을 주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의 이익에 앞서 일말의 공감 혹은 측은지심 등을 내보였다면 조금 다른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상황을 파악한 회사 측에서 뒤늦게 위로를 해왔지만 회사에 대한 내 마음은 이미 식어 있었다. 회사를 떠나기로 했고 회사도 내가 떠나기를 원했다. 진정서는 철회했다. 내가 떠난 후 내 일을 이어서 해야 할 동료에게 큰 짐을 지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는 내게 약소한 위로금을 줬다.  



두배가 된 월급. 그것은 내가 꿈꿔왔던 모든 것을 놓을 정도로 삶을 풍요롭게 해 줬다.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만큼 일의 질도 중요하단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철없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고임금을 보장해 주는가. 내 커리어를 업그레이드시켜 줄 것인가. 워라밸이 지켜지는가. 복지가 좋은가. 인간관계에 따른 스트레스가 있는가. 집과 가까운가 등. 사람마다 각각 자신만의 기준을 지니고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와 어긋난다면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누군가에겐 나쁜 회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을 일 년 만에 퇴사했다는 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궁금해지지 않나. ‘그 좋은 회사를 들어갔는데 왜 나왔대?’   



내 장기근속에 대한 염원은 또 이렇게 9개월 만에 깨지고 말았다. 그러나 후회하진 않는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회사라도 나와 다른 것을 추구한다면 내게 좋은 회사가 아니다. 나는 얼마큼의 돈을 버느냐보다 어떻게 돈을 버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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