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날개의 국제커플 연대기/ 국제연애 번외 편
여러분도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면 어떠세요, 결정을 잘하시는 편인가요? 저는 어릴 때는 깊이 생각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정을 가볍게 잘 내렸고요, 나이 먹고서는 어차피 고민해 봐야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쉽게 살고 있습니다.
말이 결정이지, 그냥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거예요. 예전에는 정말 고민이 되면 동전을 던졌습니다. 어차피 50대 50이면 뭘 고르든 똑같다는 거잖아요. 그니까 동전을 한 번만 던져서 그냥 나오는 대로 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까 어떤 때는 동전이 가리키는 게 기쁠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동전을 한번 더 던져보고 싶기도 한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일까요? 내 마음속에 이미 답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내 안에 확신이 없으니까 선뜻 결정을 못하겠는데, 동전을 던져서 나오는 대로 하자고 제약을 거니까 그제야 직관이 가리키는 내 마음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는 겁니다. 그걸 깨달은 뒤로 저는 더 이상 동전을 던지지 않습니다.
이번에 국제OO 연대기를 기획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까 감회가 참 새로웠습니다. 그때 일이 엊그제같이 눈앞에 선한데 벌써 십여 년이 훌쩍 넘은 일이라는 게 놀랍기도 하고요. 연애부터 하나씩 되짚어가다 보니까 그 당시의 즐거웠던 기억과 함께 좋았던 감정들도 같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일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이혼을 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는 게 엿같을 때마다 수백 번, 수천 번씩 곱씹었습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는!
절대!
죽어도!
이런 멍청한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
저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제 그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살았습니다. 한 순간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제 삼사십 대가 통째로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나이 서른에 아기가 겨우 돌을 지났으니 이 아기가 열여덟이 될 때까지 앞으로 17년을 어떻게 혼자서 이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나 앞이 깜깜했어요.
저는 그때까지 살면서 억울하다거나 분하다는 감정을 딱히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외도나 돈 없이 쫓겨나고 뭐 그런 게 힘들었던 게 아니라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게 견딜 수 없이 억울하고 분하고, 그래서 나 자신이 비참해질 때마다 생각했어요.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는 남자 하나 믿고, 내 인생을, 내 모든 것을 내던지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인생이 웃긴 게, 제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현재에 비슷하게 반복은 되더란 말입니다. 국제연애 상, 하편 시절로부터 딱 10년 뒤에 맥주 씨를 만나서 저는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취직과 결혼 사이에서 전남편과의 결혼을 선택하면서 유럽으로 넘어오던 그 해로부터 딱 10년 뒤에 저는 다시 맥주 씨를 두고 비슷한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평행선처럼 10년의 시차를 두고 이 두 사건이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양상으로 벌어지는 걸 보면서 저는 정말 소름이 끼쳤습니다.
“아니, 어떻게 나라는 사람은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무직일 수가 있지?” 농담입니다. 아무튼, 놀랍더라고요. 이혼하고 지금껏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또다시 원점이라니, 내가 헛살았나? 싶어서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희가 적은 나이도 아니었고, 서로 삶이나 가족에 대한 가치관도 비슷했기 때문에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기는 합니다.
맥주 씨도 결혼 상대자로 제가 적당하다고 판단을 해서 긴 싱글생활을 청산하고 저한테 대시를 했던 거고, 저도 또다시 가정을 꾸린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맥주 씨와 인연을 맺은 거죠.
그래서 연애하면서 제가 독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자연스럽게 살림을 합쳐야지 하는 생각으로 서로 잘 만나고 있었는데, 문제는 대역병이 돌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면서 학업에 대한 스케줄이 완전히 어그러지고, 결국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채로 제가 생활전선에 내몰리게 되는 거죠.
저는 취직해서 돈도 벌고, 연애도 좀 더 길게 하면서 천천히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었는데, 대학은 졸업도 못했죠, 졸업장이 없으니 제가 생각했던 분야로 취직도 안되죠, 그런데 당장 생계는 책임져야 되죠. 그래서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정말 타는 목마름으로 구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맥주씨 입장에서는 이런 제가 이해가 안 됩니다. 당장 정부보조도 있고, 남자친구인 자기도 옆에 있는데 왜 생계를 걱정하냐는 거예요. 게다가 그 시기쯤 맥주 씨가 살던 집에서 나와서 이사 갈 집을 보러 다니게 되면서 둘이 살림을 합칠 수 있는 시기가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됩니다.
이 사람 입장에서는 이참에 둘이 살림을 합치고 자기가 버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제 직장은 되는 대로 경력 쌓으면서 천천히 옮겨 가면 되지 왜 그렇게 저 혼자 힘들어하는 건지 이해도 안 될뿐더러 이런 시간이 길어지니까 슬슬 저한테 서운해하는 겁니다.
자기가 버젓이 옆에 있는데도 나 혼자 세상 짐을 다 짊어지고 있는 사람처럼 구냐면서 내가 설마 너네 굶어 죽게 내버려 두겠냐고 마음 상해하는 거죠.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이 불쾌한 기시감을 버리지 못하겠는 겁니다. 10년 전에 제가 딱 맥주 씨 같은 생각으로 전남편이랑 결혼해서 독일로 넘어왔잖아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맥주 씨와 저는 결국 헤어졌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부수적인 다른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핵심은 그거였어요. 겸사겸사 이제는 그만 결혼해서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던 맥주 씨와 경제적으로 자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이런 식으로 가정을 꾸리고 싶지는 않았던 저.
그래서 저희는 그렇게 헤어지고, 그 후로도 저는 몇 달을 더 취직해 보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바등거리다가 울고불고 좌절하기를 반복. 결국 가을이 되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종교에 귀의합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시작해서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게 되는 거죠.
그전에는 사실 별 고민이 없었습니다. 경제력 없이 전남편과 결혼했던 저의 선택은 당연히 틀린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경제력 없는 재혼은 당연히 No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맥주 씨랑 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두려웠어요.
전남편과 비슷한 제안을 해오는 맥주 씨도 의심스러웠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사랑 앞에 또다시 마음이 흔들리는 저의 여전한 나약함도 마음에 안 들었고요. 또다시 불행이 반복될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맥주 씨는 꽤 좋은 사람이죠? 그래서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이혼으로 인한 나의 피해의식은 아닐까? 이렇게 좋은 사람을 두고 전남편과 그런 일이 있었다고 두 사람을 동일시하면서 괜한 생사람을 잡는 건 아닐까? 하는 맥주 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요.
어쩌면 나는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이혼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 다시 누군가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여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맥주 씨의 손을 더더욱 잡아야 하는 걸까? 진정한 행복을 찾고자 한다면 한 번쯤은 넘어야 하는 산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해도 그보다 더 깊은 저의 내면에서 이게 끝이 아니라는 뭔가가 자꾸 올라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많은 감정들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상황을 하나씩 면밀히 뜯어보기 시작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얼핏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은 나와, 그런 나를 결혼해서 서포트해 주겠다는 사랑하는 독일남자”라는 구도가 비슷한 상황처럼 보이죠.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릅니다.
그 당시에는 독일어도, 독일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이제는 독일어도 할 줄 알고, 9년째 독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보다 삶의 경험이 훨씬 더 풍부해진 채 10살을 먹었고, 그 사이 제가 책임지고 있는 아이도 하나 생겼죠. 맥주 씨 역시도 저의 전남편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에 불안해서 끝없이 정착할 곳을 찾아 헤매던 10년 전의 어린 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10년이 지나고도 다시 원점에 선 줄 알고 허탈했는데, 그 고생스러웠던 길을 돌아 돌아오는 사이에 저 자신도 많이 성장을 한 거예요.
또 하나는, 전남편에 대한 얽혀있던 감정들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작년 봄에 공식적으로 전남편을 용서하는 글을 쓰면서 저는 더 이상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 용서를 통해서 과거의 선택들이 모여서 바로 현재의 제 삶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금의 삶을 제가 무척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만의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던 제 소망대로 현재 저는 빈이와 함께 가정을 꾸렸습니다. 물론 규모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저히 작지만 우리는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객관적으로 상황을 되짚어본 뒤에 저는 ‘과거 나의 이혼’과 ‘현재 나의 선택’이라는 두 사건이 내 마음 안에서 여전히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종속사건이 아니라 별개의 독립사건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저의 선택을 방해하던 전남편과의 기억들, 잡념들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는 거죠. 그리고 다시 저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자, 과거는 지나갔어!
이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리고 깨닫게 되죠.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다시 누군가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공동의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인생이구나! 그리고 이건 과거로부터의 트라우마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아닌 나의 순수한 욕망이구나!
저는 제 힘으로 일궈나가는 저의 미래가 궁금하고 그게 기대되는 거였어요. 그런 욕망이 제 안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까 그때부터는 선택이 두렵지 않더라고요.
우리는 보통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면 고르려고 애를 씁니다. 무엇을? 옳은 선택을. 그런데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그 길을 가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또 삶이 재미있는 게 그 당시에는 누가 봐도 명백하게 어리석은 선택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이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하고, 또 시간이 더 지나면서 그 신의 한 수가 다시 어떤 일의 화근이 돼서 재앙을 부르기도 하고요. 또 그 재앙을 잘 이겨냈더니 결국 큰 복으로 돌아오기도 하는, 이렇게 끝없이 돌고 도는 게 우리 인생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길게 놓고 본다면 결국 절대적으로 옳은 선택이라는 건 없습니다. 다만, 내가 한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일궈진 나의 삶만이 남을 뿐이죠. 그렇게 본다면 그렇게 일궈진 삶 속에서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 결국 그것이 바로 선택의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년에 저는 남자친구와의 결혼 대신 직업적인 성장을 선택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저는 사랑하던 남자친구를 잃었고, 이별의 아픔을 감당해야 했으며, 그 친구와 가정을 꾸리게 되었을 때 누릴 수 있었을 또 다른 행복들도 놓치게 됩니다. 이것이 앞으로 저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그것이 결국 좋은 일이었는지 나쁜 일이었는지는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제가 감당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비교적 정확하게 볼 수 있고, 또 제가 어떤 것을 더 기꺼이 감당하고 싶은 사람인지 스스로 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저와 제 현재 삶이 마음에 듭니다.
여러분들께서 지금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서 나보다 더 나를 위해 훌륭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오롯이 스스로 원하는 결정을 했을 때에만 그 결정에 따르는 결과도 책임질 수 있는 완벽한 힘을 동시에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 인생에 책임이라는 무게를 지고 살 때에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여러분 삶에서 당당하게 결정하시고, 그 결과에 담담하게 책임지시면서 자유롭게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영상이 즐거우셨기를 바라면서, 저는 그럼 국제결혼 상편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
https://youtu.be/manza0FuXlw?si=0NAnBjZhJMI3y7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