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서울경제 라이프점프에 격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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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육아의 병행은 노동의 덧셈이 아닌 자아실현의 곱셈"
Intro.
우리는 매일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저마다의 생각과 언어가 다르듯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소통의 기본은 ‘피드백’ 에 있다. 그것이 내가 사회에서 일한 댓가로 받는 월급이든, 내내 함께 붙어있는 아이가 건네는 포옹이든 또는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라도 나를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피드백은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디자인씽킹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기업 ‘와우디랩’ 이미경님은 다시 일을 시작하고 달라진 자신을 보면서 소통의 기쁨을 발견했다. 성수동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와우디랩은 구성원 대부분이 정말 젊은 조직으로 알고 있는데요, 미경님은 꽤 긴 시간 쉬던 일을 다시 시작하시면서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저는 평소 제 아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분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하고요. 예전부터 루트임팩트에서 주관하던 임팩트 베이스캠프, 임팩트커리어Y 같은 청년 대상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지금 일하는 방식에 큰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즐거워요. 와우디랩의 팀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대상에 구애받지 않고 열린 사고로 능동적으로 일하는 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걸요(웃음). 물론 처음엔, 팀원들이 나이로 인한 장벽을 느꼈을 수 있지만, 같이 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그 장벽이 많이 무너졌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동료 ‘레아’로 불리우며 함께 소통하고 굉장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경력 공백이 길었던 건 한동안 육아에 집중했기 때문인데요. 아시다시피 육아라는 게 단기간에 그 결과가 드러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무언가 만들어내고 결과를 확인하는 성취에 대한 갈증이 컸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커뮤니티로 어우러져 활동하는 것을 큰 행복으로 느끼는 편인데, 아이와의 소통은 그 결이 좀 다르기에 제 생활에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컸었죠. 지금은 매일 동료들과 깊이 소통하고 있고, 또 눈에 보이는 결과물도 있어서 그런 점이 만족스러워요.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도 만족하시고, 일에도 만족하시는 것 같아요. 너무 잘 됐네요! 주로 어떤 결과물을 보고 계세요?
재무, 행정을 비롯해서 경영지원 업무 전반을 담당하고 있어요. 일을 쉬기 전, 마지막 직장에서 담당했던 일과 크게 다르진 않아요. 그런데 그때는 대기업 계열의 회사라서 시스템이나 정책 등이 자리잡은 곳이었다면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요. 이제 막 시작한 곳이라, 제도 하나하나를 처음부터 만들어 가야하죠. 그래서 어려운 면도 있지만, 반대로 전 직장에 비해 제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많다는 점이 좋아요. 효능감을 느낄 기회가 많은거죠.
예를 들어, 직원들을 위한 복지 제도 같은 경우에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환경이어서 제가 먼저 나서서 알아보고 제안했어요. 제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죠. 물론 제가 합류하기 전까지 아무도 경영지원 업무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 조직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았어요. 어느새 인턴을 포함하여 20명 가까운 규모의 조직이 되었거든요.
-정말 빠르게 성장하고 있네요.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경영관리 직무는 정말 중요한 뼈대가 되는 것 같아요. 미경님께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계시네요. 와우디랩이 예전에 일하시던 곳과는 성격이 너무 다른 곳일텐데, 그런 점은 어떠세요?
와우디랩은 디자인씽킹으로 일하는 방식을 디자인하는 회사에요. 여러 개의 프로젝트가 다양한 기관들, 다양한 대상자들과 함께 진행되는데, 저도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흥미로워요. 특히, 경영지원 담당자는 그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문화라서 관심있는 미팅에 참석할 기회도 종종 생겨요.
기억나는 미팅 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주제가 가족 간의 소통 및 대화였어요. 그 중 “왜 가족 간에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 못 할까?” 라는 질문이 있었고, 저는 부부 간의 대화에 대해 제 경험을 토대로 얘기할 수 있었죠. 그런데 저희 팀원들 중 저만 결혼을 했고 다른 분들은 다 아니었던 거예요. 제가 다른 관점에서 의견을 낼 수 있었던 순간이었죠. 제 직무가 아닌 일에서도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고, 그 과정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답니다.
비슷한 경험으로, 한양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행했던 워크숍의 주제가 ‘경력보유여성의 자신감 신장’이었어서 가설 검증을 위한 인터뷰에 참여했던 적도 있어요. 저의 실제 경험에서 느꼈던 감정과 문제점, 그리고 현재 와우디랩의 ‘레아’로 살아가는 재취업 과정을 공유했던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체인지메이커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뜻깊은 기억으로 갖고 있습니다.
-미경님의 일 뿐만아니라 회사의 사업에도 크게 공감하고 계신 것 같아 좋네요. 이렇게 일과 회사를 좋아하시니, 미경님의 가족은 어떤지 궁금해지는데요?
예전에는 엄마가 일하면 아이에게 충분히 잘해주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제 에너지를 100으로 놓고 일에 쓰는 양이 많아지면 그만큼 아이에게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줄어든다고 생각했던 건데요. 지금은 제 에너지의 최대치가 100이 아니라 그 이상, 200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분배의 개념이 아니라 파이를 더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죠. 몸은 이전보다 힘들지 몰라도 행복한 표정으로 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요즘 아빠가 더 주 양육자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저보다 아빠랑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웃음). 서운한데 한편으로는 굉장히 기분 좋은, 양면적인 감정이 들어요. 결국 제가 일하지 않을 때보다 일을 다시 시작한 요즘, 아이 둘과 남편, 이렇게 우리 넷 사이의 관계가 훨씬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서로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관계. 제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에 가까워진 것 같아 하루 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Outro.
아이와 가족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신비롭고, 만들기 어려운 존재일지 모른다. 때문에 육아와 가족 돌봄을 통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지 않고 섣불리 ‘경력단절’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러한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세상과 행복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미경님의 일상을 응원하며 더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