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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트임팩트 Jun 15. 2020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픈 내 일

본 콘텐츠는 서울경제 라이프점프에 격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루트임팩트 웹사이트에서 읽기 : http://www.rootimpact.org/blog/view/index.php?seq=98&order=

서울경제라이프점프에서 읽기: https://lifejump.co.kr/NewsView/1Z3Z107F2A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에 출연한 아역배우가 등장하는 한 광고가 있다. 아이를 두고 못 내 미더운 마음으로 출근하는 엄마. 그런 엄마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고사리손으로 저금통을 뜯어 간식을 사들고 씩씩하게 엄마의 회사로 간다. “사장님 말씀 잘 듣고 밥 잘 먹고 있어야 해” 라며 세상 쿨하게 엄마를 위로한다. 늘 보살펴야 하는 존재인 줄 알았던 아이가 실은 엄마를 지탱해주고 있었음을 유쾌하게 말해준다.


여성의 일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이와 함께 그리는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소비와 기부를 연결 지어 지속가능한 월경용품 지원을 만들어가는 월경 셀렉트샵 ‘이지앤모어’ 김민지 브랜드 매니저가 그렇다. 엄마를 쏙 빼 닮은 어여쁜 딸아이와 함께 언젠가 엄마의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꿈꾸는 김 매니저를 성수동에서 인터뷰했다.



- 민지님은 육아휴직에 이어 경력공백의 시간이 잠시 있었고, 프리랜서로 경력을 이어갔던 시기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민지님이 다시 조직에 속해 일하기로 결심하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이었나요?


"이지앤모어라는 조직이 하는 일과 그 안에서 제가 맡게 된 고객 서비스라는 직무, 두 가지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아무래도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부분이에요. 특히, 일하는 시간을 제가 원하는 수준으로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었던 점이요. 요즘은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 30시간 일하고 있어요. 저보다 출근 시간이 늦은 남편이 아이의 등원을 담당하고, 하원은 퇴근 시간이 빠른 제 몫이죠. 부모님이나 다른 누군가의 도움없이 저희 부부가 온전히 아이의 돌봄을 책임지고, 또 각자의 일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워요. 물론 제도가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겠죠.


누구나 눈치보지 않고 그 제도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감사하게도 이지앤모어는 그런 문화가 잘 자리잡은 조직이에요. 사실 유연근무제가 저처럼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자 하는 여성에게만 좋은 제도는 아니잖아요. 성별, 결혼 여부나 자녀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만의 상황과 선호가 있을 수 있고, 조직이 이러한 요구에 유연하게 열려 있다면 성과도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령, 저희 회사는 시간제 근무 뿐 아니라 한달에 한번씩 노마드 데이를 갖는 문화도 있어요. 노마드라는 단어 그대로 사무실이라는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날이죠. 저의 경우엔 대체로 아이의 상황에 따라 재택이 필요한 경우 노마드 데이를 활용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더 자유롭게 각자 그 날의 일터를 선택하곤 해요.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웃음) 사무실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저까지 리프레시되고 좋더라고요."


김민지 이지앤모어 브랜드 매니저



- 이지앤모어에 합류하면서 마케팅에서 고객 서비스로 직무에 변화를 주셨어요. 새로운 일을 하며 민지님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고객 서비스가 결국 마케팅과 브랜딩으로 연결되는 일이더라고요. 그런 관점으로 보면 이전과 유사한 일을 하고 있어요. 저는 이 일을 고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객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커뮤니케이터라고 생각하는데요, 일을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을 더 많이 알려주고 싶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그 욕심이 자칫 과하지 않도록 매 순간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너무 몸 사리는 것 같고, 밋밋하고 재미없어 보일 수 있죠. 이전 직장에서도 비슷한 내적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회사 일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경쟁 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고, 때로는 공격적이고 자극적이고 메시지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잖아요. 그런데 그로 인해, 제 의도와 달리 누군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해롭지 않은, 그저 제 진심이 잘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을 꾸준히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2019년 스타트업 거리 축제 당시 월경 셀렉트샵 이지앤모어의 캠페인 문구



- 저희가 예전에 이야기 나누던 중에, 민지님께서 ‘경력은 물결같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어떻게 보면 저의 생각을 확장시켜준 순간이었죠. 기억하고 계신가요?


"제가 그런 말을 했나요? (웃음) 많은 분들이 경력이라는 단어에 알 수 없는 중압감을 느끼시는 것 같은데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에 그렇게 비유했던 것 같아요. 작은 냇물이 흐르고 흘러 큰 바다를 이루고, 바다에 다다르기 전에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합쳐지기도 하고, 또 잠깐 탁해졌다가 이내 정화될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일단은 크든 작든 물꼬를 트고, 그 흘러가는 방향이 내 마음과 같은지 수시로 점검해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아니라는 판단이 들 때, 과감히 물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겠죠. 이지앤모어에 합류하기 전, 마케터로 경력을 쌓으며 자꾸 매출이라는 숫자에만 몰두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 당장의 매출보다는 그 제품 또는 서비스가 고객과 정말 소통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고민 끝에, 마케팅에서 고객 서비스라는 직무로 제 경력의 흐름을 바꿔보기로 결심하게 되었어요.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막상 시작해보니 다시 그 물결이 마케팅이라는 분야로 합쳐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앞으로도 어떤 방향으로 저의 경력이 흘러가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고객 한 분 한 분과 소통하며 그들의 건강, 나아가 그 가족의 건강에 대해 생각해보는 저의 일이 꽤 마음에 들어요."


- 그렇게 물결이 흐르고 흘러, 앞으로 민지님이 만들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졌어요.


"아주 먼 미래까지는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지 않았어요. 어떤 계획을 세우면 계획 그 자체에만 몰입하는 저를 잘 알기 때문이죠. 다만, 저의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알게 되었을 때, 엄마의 일을 뿌듯해하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그래서 최소한 저의 딸이 초경을 할 때까지 이 조직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요. 이지앤모어가 하는 일이 여성들이 겪는 월경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다보니, 딸이 나이를 먹고 월경에 대한 경험이 쌓일수록 이야깃거리가 더 풍성해질 것 같거든요.


저는 이지앤모어가 여성들이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다양한 월경권을 누릴 수 있도록 월경컵 수입에 앞장섰던 점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한창 ‘깔창 생리대'가 사회적 논란이 되기 전부터 저소득층 여학생들에게 월경용품을 지원하는 일을 시작하였고, 이후 그 기부 방식 역시 학생들 개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요. 제 딸이 이지앤모어의 이러한 활동을 알게 되면 같이 공감해주지 않을까요? 또 제 딸이 친구들에게 건강한 월경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상상하면 벌써부터 벅찬 기분이 들어요. 역시 더 많은 분들이 저희 회사를 알고 그 미션에 공감할 수 있도록 남은 오후 시간도 열심히 일해야겠어요. 아마도 7~8년 쯤 후, 제 딸이 초경을 할 때 이지앤모어가 더 멋진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만나본 적 없는 고객과의 진실된 소통을 꿈꾸던 마케터 김민지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답답하고 어리석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민지님이 다시 시작한 일, 그 고객의 끝에는 민지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딸이 있다. 엄마와 딸이 여성이라는 공통 분모를 바탕으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일, 그렇기에 작은 부분 하나 하나까지도 진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일, 오늘 민지님의 즐거운 수고로움을 통해 더 많은 여성이 건강한 월경 라이프를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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