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로 Jan 04. 2024

적당히 무난한

적당함의 함정

어디에도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른다. 튀지 않고 무난한, 오래도록 질리지 않을 적당한 옷을 나는 선호한다. 그 옷을 닮은 것일까? 나의 삶도 참 적당히 무난했다. 큰 굴곡 없이 평탄한 삶이라 스스로 생각하며 살았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평탄치 않은 사건들을 나는 평탄하다 여겼을 수도 있겠지만, 나름 긍정적이고 무딘 나는 적당히 무난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적당히 무난하다 보니 무언가를 할 때도 적당히 무난하게 한다는 것이다. MBTI에서 P형인 나는 꽤나 즉흥적인 편이다. 재미있겠다 싶은 것은 그냥 해버리는데, 거기까지는 경험이라 좋다 생각이 들지만, 그 끝을 보기가 참 어렵다는 게 문제다. 적당히 무난하게 하다 보니 첫 시작과는 다르게 끝으로 갈수록 흐릿해진다.


그래서 스스로 '선택과 집중'을 외치며 여러 자기계발서를 읽고 플래너를 쓰며 계획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작의 스파크만 있을 뿐 어느새 푸시식 조용히, 언제 꺼졌나 알 수 없게 꺼져버려 다른 쪽으로 그 관심이 옮겨갔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하긴 했지만 큰 성과가 없는 일들이 쌓이면서 스스로에게 꼬리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나는 게을러.'

'나는 끈기가 없어.'


그런데 이런 자기 비관도 오래가진 않는다.


'그래, 내가 이러니 받아들이고 넓고 얕게 살자!'


그럼에도 가끔씩 찾아오는 '나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화가 필요함을 계속 나에게 알려왔다. 아인슈타인의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다.'를 되새기며, 정신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읽었던 여러 자기계발서에서는 바닥을 딛고 올라선 성공스토리가 많이 등장했다. 그들은 인생에서 최고의 불행을 겪고 그 불행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닌, 그것을 디딤돌 삼아 일어섰다. 실연이라든지, 사업의 실패, 건강의 이상 등이 그 요인이 되기도 하고, 지독한 가난, 주변의 괴롭힘, 우울증 등도 그 바탕을 이루기도 한다. 나 또한 저런 불행들에 조금씩은 발을 담가봤었다. 하지만, 그렇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은 나에게는 그저 적당하고 무난한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징징거리고 쓰러질 만큼의 일이 아니었다.


나름 위기 상황에 침착하고, 긍정적이며,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적당하고 무난한 삶을 살기에는 최적화되어 있지만, 원하는 성공으로 향하기에는 발목을 요소들이 되었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고민했다. 그런 나, 적당하고 무난한 삶의 나도, 불행의 바닥을 딛지 않고도 쑥 올라설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가지지 못 한 요소들이 있었다. 혹시 그런 것을 가지면 나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끝까지 가게 할 동력은 무엇일까? 그런 게 있기는 할까?


 결국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하나를 정하고 파고들기.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해내기.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닌, 하기로 했을 때 하는 것. 그것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


올해 내가 정한 정체성이다. 즉흥적이고 유연한 나는 대안을 잘 찾는 편이다. A가 아니면 B, B가 아니면 C를 선택하는 것에 주저가 없다. 하지만 이제 주저하기로 했다. 나와의 약속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의 약속이니까. 내가 아니까.


그런데 이렇게 생각만 하다 보면 쉬 잊히곤 한다. 다시 푸시식 꺼지는 불로 만들고 싶진 않다. 그래서 각 잡고 기록하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그전에도 여러 기록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나를 움직이기에는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나에게 진정 나를 움직여 줄 기록이 필요하다. P형답게 나는 그를 위해 5개의 플래너를 준비했다. 어쩌면 6개일지도. 아무튼 MBTI P형의 기록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단 하나의 존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