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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하 Iam May 23. 2024

여행에서 날씨의 영향은 999%

파리-아를-아비뇽



우리가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 날씨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남프랑스에는 갑자기 우박이 쏟아졌고, 파리도 겨울처럼 엄청 추워졌다는 말에 걱정했다. 그런데 파리 드골 공항에서 리옹역 근처 숙소로 이동하면서 바깥을 봤을 때 흐리긴 했지만 걱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차를 타고 파리 시내로 들어서니 칙칙한 그러나 파리스러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에 프랑스를 왔을 땐 '우아' 감탄하며 영상 찍기 바빴는데 이번에는 작년만큼 예뻐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날씨가 흐려서일까?


'정말 파리에 왔구나'


숙소 도착하니 저녁 7시 30분. 기내에서 피자 조각을 먹고 내린 터라 배가 고프진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상황 보면서 저녁을 먹을지, 간단하게 커피를 마실지, 숙소에서 쉴지 선택하자고 했다.


사촌동생은 피곤했고, 나는 숙소 주변을 구경하고 싶어 했다. 프랑스에 여행 왔는데 기분이 들뜨거나, 설레는 기대감이 없어서 내가 프랑스에 왔다는 걸 실감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사촌동생을 꼬셔서 결국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동생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멀리 가지는 못하는 상황에 급하게 찾은 곳인데 카페보단 술집에 더 어울리는 레스토랑이었다.


디저트보다 안주류가 더 많았다. 우리는 살짝 추웠지만 파리에 온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노상에 자리를 잡았다.

 


카푸치노와 핫초코를 시키고 크림브륄레를 시켰다.

아, 망했다.


작년 프랑스 여행에서 가장 맛있던 음식이 핫초코였다. 느 카페를 가도 진한 핫초코가 나오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때 갔던 카페의 시그니처가 진한 핫초코였던 것을 몰랐다. 으아. 핫초코는 밍밍했고 카푸치노도 맛이 없었다. 크림브륄레 역시 그저 그랬다. 파리에서 먹는 디저트는 다 맛있는 거 아니었나?


더 최악은 커피와 디저트가 나온 지 10분 채 되지 않아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곧 비가 엄청 쏟아질 것만 같았다.


밤 9시가 되니 해가 저물기 시작해서 어두워졌다. 비를 쏟아질까 봐, 그리고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 먹지도 못하고 일어서서 숙소로 뛰어갔다.


파리 첫날부터 망했다.


우리는 새벽 6시 기차를 타고 아비뇽으로 이동한다. 날씨를 확인하지 않고 흰 치마를 입었다. 날씨를 확인했다고 해도 바지를 챙겨가지 않아서 다른 옷을 입을 수는 없지만... 결론은 하루종일 비가 오고, 엄청 추웠다. 나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다녔다.


아를과 아비뇽에는 론 강이 있다.

빈센트 반고흐 작품에 나오는 론 강.

맑은 날에는 론 강의 색깔은 에메랄드와 진한 파란색으로 꽤 예뻐 보인다. 우리가 간 날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강물이 뒤집어졌다. 흙탕물이었다.


아비뇽 교황청과 대성당을 구경했다. 아비뇽 대성당 꼭대기에는 금색의 성모마리아상이 있다. 흐린 날 봐도 금색으로 된 성모마리아상이 반짝거렸는데 맑은 날 보면 눈이 부시게 반짝거려서 예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대성당 뒤로 올라가면 사람들이 많이 산책하는 공원이 있다. 공원에서 아비뇽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고, 아비뇽 다리로 유명한 생 베네제 다리도 볼 수 있다. 흐리고 비가 와서 안개가 꼈는데 풍경이 아쉬웠다.


여행에서 날씨가 주는 영향력은 999%였다. 

돌이켜보니 10년 동안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날씨가 안 좋았던 적이 없었다.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일본, 프랑스 등 어떤 나라를 가더라도 날씨가 좋았다. 비도 거의 내리지 않았고 흐린 적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할 때 우산도 챙기지 않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운이 좋았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이 날씨가 여행에 영향을 준다고 했을 때 '그렇지'라고 말은 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다. 늘 날씨가 좋았어서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느꼈다. 여행에서 날씨는 999% 영향을 준다. 날씨가 좋으면 어딜 가든 좋고, 날씨가 안 좋으면 어딜 가든 아쉽다.


작년 프랑스 여행을 했을 때 파리에 4일을 머물렀다. 4일을 머물면서 비가 온 적은 딱 2시간이었다. 그 외에는 하늘은 파랗고 동글동글한 구름에 바람은 선선했다. 파리 날씨가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파리에서 유학하던 동생이 '언니~ 진짜 날씨 운이 좋았네요. 파리는 비가 자주 오거든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날씨 요정이었다.


다행히도 첫날 이후로 날씨가 흐린 적이 하루 빼고는 없었다. 남프랑스에서도, 파리에서도 모두 화창했다. 날이 좋은 날의 남프랑스와 파리는 새벽, 오전, 오후, 저녁, 밤 이렇게 하루에 5번이상 '예쁘다'라는 감탄사를 불러일으켰다. 기분 좋은 감정도 몽글몽글 피어나고. 여행에서 날씨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p.s 이 정도면, 날씨 요정이 맞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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