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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 Oct 11. 2015

쇼핑 한움큼과 걱정 한시름

[아프리카 여행 일기] Day 6.

Day 6. 나이로비


트럭킹 오리엔테이션 날이 밝았다. 오티 장소는 지금 묵고 있는 숙소에서 1k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Kenya Comfort Hotel. 어제 일 때문에 무서워서 걸어갈지, 택시를 탈지 고민하다가 일단 밥부터 먹자는 생각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갔다. "880m던데 그냥 걸어갈까?" "근데 어제 길거리에 사람들 너무 무서웠는데ㅠ"라는 일단 오티장소를 갈 걱정부터 "나 혼자만 동양인이면 어쩌지?" "영어도 못하는데 왕따 되는 건 아닐까"라는 3주간의 트럭킹 생활 걱정까지. 온갖 걱정이 스믈스믈 올라왔지만 일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출발 전 마지막 식사를 혼자 아주 야무지게 했다.


방으로 돌아와서 또 한참을 고민. 결국은 택시를 타기로 했다. ^^;;

지금은 저 정도 거리를 왜 택시를 탔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엔 뭐든지 낯설고 무서웠던 아프리카 새내기였으므로...

숙소 리셉션 직원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고 세상에서 가장 푸근한 미소를 지닌 택시기사 아저씨가 왔다. 친절한 아저씨의 이름은 조셉.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길이 막혀서 통성명을 하고 짧은 수다를 하며 올 수 있었다.



Kenya Comfor Hotel은 생각보다 호텔 같지 않았다. 그냥 도미토리. 방에는 이미 어제부터 그 방에 묵고 있었던 캐나다 친구 2명이 있었다. 매우 유쾌해 보이는 24살 매디와 21살 마리아. 케냐에서 인턴으로 약 한 달 반동안 갈 곳 잃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던 멋진 법학도 친구들이다.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떨다가 함께 나이로비 시내에서 열리는 마사이마켓에 가기로 했다. 매디와 마리아가 인턴을 하면서 알게 된 케냐 친구 월터도 함께 갔다.


분명 어제와 같은 나이로비였는데 오늘의 길은 달랐다.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그런지, 아니면 어제 내가 헤매던 그 길이 원래 조금 외진 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전혀 무섭지도 않았다. 가방 하나 안 들고 나와서 핸드폰을 손에 쥐고 다니던 나를 위해 월터가 자기 주머니에 내 폰을 넣어줬다. 누가 채갈지도 모른다고..ㅎ 친절한 월터.


마사이마켓에는 정말 색색깔의 아프리카스러운 모든 것이 있었다. 이런 건 글보다는 사진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카메라 배터리가 없어 숙소에 충전시켜놓고 나온 탓에 폰으로 찍은 사진밖에 없다..ㅠ

좌판에 앉아 전통 장식품들을 만들고 있는 여인.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아주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의 장신구들. 원색 계통이 많아 쨍쨍한 케냐의 햇빛을 받아도 그 색을 잃지 않고 마음껏 드러낸다. 좌판에서 장식품을 만들면서 동시에 판다. 생산과 유통과 판매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마사이마켓.

특히나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건 거친 천? 두꺼운 종이? 에 그린 그림이었다. 강렬한 원색으로 그려진, 아프리카의 사람들, 동물들, 풍경들.  그 색이 너무 화려하고 붓 자국이 거침없어서 단박에 시선을 끌었다.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아프리카스럽고 여기서 밖에 구할 수 없을 것 같아 다 사가고 싶었던 그림들...ㅠ 하지만 가격이 싸지 않았고, 이제 시작인 나의 아프리카 여행, 앞으로 또 많은 기념품을  사겠지.라는 생각에 2개만 구입했다. 한 장당 원래 3000실링 정도였지만 흥정 끝에 두장을 3000실링에 구입! 당시엔 꽤나 싸게 산 것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 장당 1000실링 이하로도 깎을 수 있었을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여기서 잠깐, 아프리카에서 흥정이란?

아프리카에서 흥정은 열과 성을 다해서, 반드시, 꼭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물건을 살 때 흥정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 익숙하지 않은 거 안다. 나도 처음에는 "여기까지 와서 뭘 깎아", "그거 한두 푼 깎아서 얼마나 아끼겠다고" 싶었다. 그런데 곧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깎아야 되고 그 한두 푼이 꽤나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애초에 원가의 3,4배는 기본이고 어쩔 땐 10배까지 부르는 것도 봤기 때문에 별 말없이 낼름 산다면 굉장히 손해를 보는 셈이다. 정색도 해보고, 애교도 부려보고, 화내는 척도 해보고, 삐쳐서 그냥 안 사려는 척도 해보고.. 참 여러 흥정스킬을 연마하며 상인들을 상대하다 보니 물건을 싸게 사게 된 것은 물론이고 물건 하나 사는데 하도 오래 얘기를 하다 보니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흥정하면서 느는 영어실력은 덤!ㅎㅎ


에피소드 #4 흥정스킬 대본

짐바브웨에서 나는 기념품 구경을 하러 홀로 길거리에 나섰다. 나서자마자 총 3명의 길거리 상인들이 나를 표적으로 삼아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목걸이 카드 지갑에 1달러짜리와 5달러짜리, 10달러짜리가 잘 분류되어 들어있는지 슬쩍 확인한 후, 그들의 말빨에 대적할 준비를 했다. 빠른 걸음으로 다른 두 명을 제치고  나를 선점한 길거리 상인1은 나에게 악어가죽 팔찌를 보여줬다.
아래의 장면은 실제 상황을 현실감 있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상인1: 헤이. 이름이 뭐야? 어디 가는 길이야?
나: Ju.(마이 네임 이즈.. 하기도 귀찮아 이름만 퉁명스럽게 내밷는다) 여기저기 구경하러 가는 길이야.
상인1: 내 이름은 알렉스야. 이 팔찌 한번 봐봐. 멋지지 않아? 진짜 악어가죽이야. 12달러에 줄게.
나: (악어가죽이라는 말에 혹했으나 내색하지 않으며) 관심 없어.
상인1: (팔에 채워주려 한다) 진짜 싸게 주는 거야. 하면 정말 멋지다구.
나: 아니. 안 멋져. 나 이런 디자인 안 좋아해 (사실 엄청 좋아해).
상인1: 그럼 10달러에 줄게.
나: 아니 안 좋아하는 디자인이라니까. 그리고 내 팔 봐봐 (팔에는 이미 팔찌가 3개나 있다). 나 여기 오기 전에 6개 나라 지나왔거든? 이건 말라위에서 산 팔찌고, 이건 케냐, 이건 탄자니아야. 더 필요없다고.

상인1: 아하. 그럼 사가서 친구 주면 되겠네. 친구 몇 명이야? 여러 개 사면 좀 더 싸게 줄게. 3개에 20달러 어때?
나: 내 친구들도 다 나랑 취향 비슷해서 이런 거 안 좋아해.
상인1: 그러면 1개에 5달러. 그 이하는 안돼. 엄청 싸게 주는 거라구.
나: 아니 그게 얼마든 상관없어. 왜 내가 관심도 없는 거에 5달러나 써야 돼?
상인1: 에이. 시스터. 왜 그래~
나: 아니 내가 왜 너 시스터야. 우리 엄마랑 너네 엄마랑 다른데.
상인1: 우린 모두 하나님 자녀잖아? (솔직히 여기서 터졌으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함)
나: 그런데 정말 솔직히 별 관심이 없어. (이제 슬쩍 흥정의 기색을 내비친다) 그리고 여전히 너무 비싸.
상인1: 비싸? 얼마면 살 수 있는데?
나: 1달러.
상인1: 1달러? 아니 시스터. 이러기야? 그건 만드는 값도 안돼. 3달러는 줘야 된다구.
나: 개당 1달러 아니면 안 살 거야. 대신 두 개 살게. 네가 싫으면.. 뭐 난 굳이  안 사도 돼 돼. (가려는 척 발걸음을 내딛는다)
상인1: 그래 그래. 1달러에 줄게. 여기 두 개.

알렉스에게 악어가죽 팔찌 두개를 2달러에 구입하고 헤어진 지 1분이 채 되지 않아 상인2가 다가온다.

상인2: 하이. 시스터. 기분 어때?
나: 매우 좋고 내 이름은 Ju야. (어차피 곧 물어볼 거 미리 말해버리자).
상인2: 하하하. 그거 좋네. 나는 릭이야.
나: 어 그래. 만나서 반가워. 안녕 (하며 벗어나려 하지만 역시나)
상인2: 잠깐만. 이거 한번 봐봐. (길쭉한 나무 가면을 꺼내며) 개당 10달러에 줄게.
나: 필요 없어. 너무 무섭게 생겼잖아. (진심이었다. 너무 무섭게 생겼음) 무서워서 어디 놓지도 못하겠다.
상인2: (동그란 나무 가면을 꺼냈다) 이건? 이건 안 무섭지?
나: (오? 얘는 좀 귀엽네) 얘도 가격 똑같아?
상인2: 응. 근데 두개 세트야. 남녀. 세트로 사면 좀 싸게 줄게. 18달러
나: 겨우 2달러 싸게 주는 거야? 안 사. 이미 숙소에 있는 내 가방엔 목공예품이 넘쳐나.
상인2: 그럼 얼마 정도면 살 거야?
나:  (이미 상인1을 만나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에 빨리 흥정을 끝내고 싶었다) 두 개에 6달러.
상인2: 뭐? 이거 만드는 데 그거보다 훨씬 더 들었어. 너의 best price를 다시 한번 말해봐 봐.
나: 무슨 "best pirce"야. 내 best price면 당연히 제일 싼 가격 아니야? 너 단어 선택 잘못한 듯.
상인2: 하하하. 아무튼 한 번만 더 올려봐 봐. 가격.
나: 아 됐어 그러면.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아. 6달러 안 해주면 나 간다. (그다지 탐나는 물건이 아니었기에 안 붙잡으면 진짜 그냥 가려고 했다.)
상인2: 알았어 알았어. 6달러에 줄게.
나: 오케이. 헐? 그런데 나 5달러밖에 없어.
상인2: 아 시스터.. 왜 그래
나: 진짜야. 봐봐. (지갑에서 5달러 한 장 들어있는 부분을 보여주며) 나도 6달러 주고 싶은데 5달러밖에 없다니까?
상인2: 그래. 그럼 하는 수 없지. 5달러만 줘.  

이렇게 악어가죽 팔찌 2개와 나무 가면 2개를 처음 제시 가격 '12달러 2개 + 10달러 2개 = 44달러'에서 37달러를 깎아서 총 7달러에 구입을 했답니다. 뿌듯. ^^

사실 모든 경우에 이렇게 원활하게 흥정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말라위나 탄자니아에서는 거의 깎지 못했다. 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게 주인보다는 길거리 상인이, 그리고 특히나 짐바브웨에서 흥정을 하기가 제일 좋았다. 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자국 화폐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고 미국 달러를 사용하는데, 일반 국민들은 달러를 벌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은 달러가 조금이라도 오래되거나 찢어져도 받지 않았는데 짐바브웨에서는 아무런 문제없이 쓸 수 있었다.


저 그림 두장 외에도 나는 아프리카 지도가 그려진, 나무껍질로 만든 종이와 목걸이, 팔찌, 머리띠 등의 장신구를 잔뜩 샀다.  첫날부터 너무 돈을 많이 쓴 것 같아 나의 쇼핑 욕구를 조금 반성했지만 사실 마리아나 매디에 비하면 나의 씀씀이는 아기 손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쨍쨍한 케냐의 햇빛에도, 현금이 모자라 두 블럭 떨어져있는 ATM기를 다녀와야 했음에도, 쇼핑에 끌려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은 월터의 힘겨운 표정에도. 그녀들의 쇼핑은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는 다들 살이 벌겋게 익었다. 심지어 아프리카 케냐인인 월터의 팔도 빨갛게 됐다. 그런데 내 팔은 아주 멀쩡해 모두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아니 African도 살이 익었는데 South Korean이 멀쩡하다니!"라며 한바탕 웃었다. 내 피부는 아프리카 환경에 최적화된 게 아닐까. 한 달 내내 선크림 한번 안 바르고 다녔지만 별 탈 없었. 좀 잘 못 씻어도 ㅎㅎ 괜찮던데..



다들 만족스러운 쇼핑을 끝내고 월터가 자주 가는 바에 갔다. 낮이었지만 아무래도 실내라 좀 어두웠는데도 전등을 키지 않아서 그냥 좀 어두컴컴한 곳에서 간식? 이른 저녁?을 먹었다. 5시에 트럭킹 오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현지 가이드 월터가 이끄는 대로 지름길을 찾아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드디어 오티가 시작됐다. 3주 간 함께 하며 우리를 이끌어 줄 가이드 크리스와 고프리, 운전사 스티브, 요리사 존이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뒤 크리스가 전반적인 트럭킹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이미 사전에 메일로 받은 정보들이 대부분이라 딱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사실 난 크리스가 안내해주는 정보보다 트럭킹 친구들이 더 궁금했다. 일단 대충 스윽 훑어본 결과,  한국인은커녕 동양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커플이 온 듯해서 아침에 했던 자잘한 걱정들이 모두 현실이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해졌다. 왕따가 되는 건 아닐까. 나의 허술한 영어 실력으로 말이나 한마디 할 수 있으려나.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친해진 마리아, 매디와 같은 일정임에도 다른 트럭으로 배치됐다. ㅎㅎ 설명이 끝나고 크리스가 질문 있으면 하라고 하자 다들 유창한 영어로 (나도 한국어는 유창하게 할 수 있는데..) 화기애애하게 질문과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소심히 있다가 오티가 끝나고 모두 다 회의실을 빠져나가고 나서 크리스에게 가서 내용도 소심한 질문을 던졌다. 아까 오티에 안 온 인원들도 있다고 했는데 그 인원들 중에 혹여 한국인이나 동양인이라도 있냐고..

오!! 다행히 있다고 했다!! 한국인 한 명, 말레이시아인 1명. 야호. 걱정과 근심이 조금 덜 어지는 느낌이었다.

내일 아침 7시에 숙소 1층 로비에 집합. 진짜 시작이다아~


제발 트럭킹 기간 동안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지 않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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