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막을 가지고 싶었다. 상자 속 양이 태어나던 곳, 어린왕자가 네 개의 가시를 가진 장미가 있는 별을 그리워하던 곳, 훌륭한 화가가 되기를 포기한 어른이 선 두 개와 별하나로 그려버린 곳도 물론 좋았지만, 나의 사막이 가지고 싶었다. 어떤 곳인지 내가 직접 본 단어로 꾸미고 싶었고 나만이 아는 표현들로 기억하고 싶었다.
저는 KF한중녹색봉사단으로 중국 북경과 내몽골자치구 쿠부치 사막을 다녀왔습니다. 사막화 방지 나무 심기 및 생태 복원활동을 하고 왔어요. 해외봉사 룰루
나의 사막, 첫 번째 끄적임
파란 하늘색의 하늘과 뿌연 모래색의 모래. 그리고 거기에 추가된 쨍한 초록색의 초록, 아니 초록색의 우리. 사막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마냥 벅찼다.
정말 예쁘다. 내가 그렇게 오고 싶었던 사막. 밀려 들어오는 모래바람에 살짝 걱정됐지만 결국 욕심껏 꺼내 든 카메라 셔터를 몇 번 눌러보았을 때 담기는 모습도 역시나 예뻤다. 하늘과 맞닿은 뚜렷한 지점도. 삐죽 돋아난 나뭇가지가 얽힌 언덕도. 후루룩 바람이 그려내는 물결모양도 예뻤다. 눈에 담기도 바빴고 자꾸 넘치듯 예뻐서 아쉬웠다.
아직 낯설다. 신발 속을 파고드는 모래의 느낌. 가장 체력이 많았던 초반이었지만 가장 많이 멈춰 섰다. 신발에 조금이라도 모래가 들어오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신발을 벗어 털어내기 바빴다. 점점 그 행위의 부질없음이 증명되고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로 꼼지락 모래를 밟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마냥 벅차다.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
육하원칙 그 여섯 가지가 모두 벅찼다. 내가 지금 사막에서 걷는다 언덕을 오른다 사막을 담는다 설렘을 마주한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무 심으러! 또... 내가 사막이 보고 싶었고 오고 싶었으니까!'라는 점이, 온전히 내가 원해서였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초록색 뚠뚠 개미가 뚠뚠 걸어간다. 한 줄로 뚠뚠. 앞으로 뚠뚠 붙으세요 뚠뚠. 간격 뚠뚠 촘촘히 뚠뚠. 거리감 뚠뚠 없애세요 뚠뚠.
나의 사막, 두 번째 끄적임
모래에 쑥 발이 빠진다. 아니 빠진다는 표현보다는 모래가 행위의 주체가 되도록 문장을 쓰고 싶은데. 모래가 발을 먹는다. 발을 삼킨다. 그리고 스며든다. 이 느낌 자체만 놓고 보면 정말 좋은데 그걸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은 내리막일 때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항에 있는 무빙워크나 침대칸이 있는 기차와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 나는 가만히 있거나 심지어 자고 있지만 무언가 나를 둘러싸고 생산적인 일들은 일어나고 있는 느낌. 하지만 오르막에서 내 발을 삼키는 모래는 그 반대의 기분을 선사한다. 온전한 나의 노동을 보상받지 못하고, 잠깐 숨 고르는 시간도 재촉하며 스르르 제자리, 아니 더 뒤로 돌아와 버리게 만든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자본주의 경쟁 사회의 잔혹함이 떠오르려던 찰나 아니 근데 찰리 채플린의 톱니바퀴도 잠시 가만히 있는다고 거꾸로 가진 않는데요. 입을 채우는 건 까끌한 모래요,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건 숨이고, 입술에 매달리는 건 나올 뻔한 욕이다. 이렇게 효율성 없이 꾸역꾸역 오르다 보면 막바지에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체력과 따뜻한 마음씨를 지켜낸 친구들이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는 지점이 오는데 그때 정말 인류애란 무엇인가. 경외심이 차오르는 순간이다.
나의 사막, 세 번째 끄적임
높고 낮은 수많은 언덕을 지나 정말 느낌상으론 건물 십몇 층 높이에 달하는 에바레스트를 오르고 나면 아 사막 정말 예쁜데 더이상은 못 해먹겠다 으으 하면서 드러눕게 되는데 실제로 사막트래킹은 에바레스트가 거의 끝이다. 참으로 탁월한 코스 선정이 아닐 수 없다.
높긴 한데 하늘과 닿을 정도로 높지는 않고 근데 사진은 마치 하늘과 닿은 것처럼 나오는 곳이다. 사진은 찰나의 기록이라 다행이다. 힘듦을 딱 1초만 숨기고 웃으면 되니까. 하지만 점프까지 하기엔 몸과 마음이 지친 나... 대신 젊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조 민정이의 (실명써도 되나) 점프샷을 화질 낮춰 넣어본다.
에바레스트에 걸터앉아 발로 모래를 찰박대며 챙겨 온 햄버거와 닭다리와 바나나를 먹는다. 힘든 노동의 대가로 얻을 수 있는 멋진 풍경을 보며 먹는 햄버거와 닭다리와 바나나는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모래가 좀 많이 씹히는 샌드버거이긴 하지만 값진 땀방울을 훔쳐내며 먹는 그 시간은 정말정말 의미 있다. 모래바람을 등지고 홀로 서서 먹어도 의미 있고 친구들과 다닥다닥 붙어 앉아 먹어도 의미있고 닭다리를 하늘 배경 삼아 사진 찍으며 먹어도 의미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때 먹지 않고 나중에 차에서 먹었다. 모래 씹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사막, 네 번째 끄적임
"수백만 개 수천만 개 별 중에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으면,
별들만 쳐다봐도 행복한 거야.
속으로 저기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 생각하니까."
포플러나무를 심었다. 메마른 땅에서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나무라고 한다. 나무를 심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복잡하고, 쉽지만 힘들다.
먼저 터를 잡고 줄을 맞춰 내 나무 뉘일 곳, 아니 심을 곳을 살펴본다. 그다음엔 고운 건사를 걷어내야 한다. 앞서 나의 발을 먹었던 아이들과 같은 부드럽고 내리막일 때만 기분이 좋은 아이들을 걷어낸다. 하지만 은근슬쩍 쓸데없이 관성의 법칙에 충실하고 능글대는 그 아이들은 자꾸 비집고 들어와 내가 기껏 파놓은 구덩이를 메운다. 어느 정도 걔네들을 치우고 나면 촉촉한 흑설탕 같은 흙이 나온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고, 나의 노동이 값진 것은 파다 보면 그래도 언젠가는 촉촉한 흙설탕(건사랑 정반대의 뜻이란 게 단어만 봐도 드러나게 쓰고 싶은데 습사는 어감도 별로고 이상해)이 나오기 때문이다.
흙설탕을 마주한 찰나의 기쁨을 지나 다시 삽질을 시작한다. 흙설탕이 능글건사가 되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에 파낸 흙설탕은 꼭 한 곳에 잘 모아서 쌓아 두어야 한다. 흙설탕이 나온 지점부터 1m 이상 파야 한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 나는 항상 1m보다는 컸기 때문에 키든, 깊이든, 뭐든 1m라는 숫자가 가지는 어려움과 역경과 힘듦과 고난과 시련을 알지 못했는데 이제 와 깨달은 바로는 1m는 그 자체로도 존중받아야 하는 수치다. 존중의 마음을 키우며 삽질을 한 뒤에는 트럭으로 양동이 하나 가득 소중한 물을 받아온다. 존중의 구덩이에 포플러 나무..라기보단 아직까진 포플러 작대기에 가까운 그것을 넣고 물과 아까 쌓아놓은 흙설탕을 찰박찰박 채운다. 중간중간 발로 꼭꼭 밟아 뿌리와 흙 사이의 빈 곳을 메워야 한다. 다리 길이가 1m 이상인지 이하인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다 심고 나서는 잘 자라라 쓰담 쓰담 해준다.
이렇게 심은 내 나무가 중국 내몽골 자치구 쿠부치 사막에 남아있다. 힘들었던 일이든 즐거웠던 일이든 기억은 과거의 시간 속에 남겨지는 것이고, 장소에 남는 것이 아니다. 어디를 가든 어쩔 수 없는 그 점이 항상 아쉬웠는데 이번엔 다르다. 내 나무가 있는 쿠부치 사막. 중국어 한마디 못하고 한자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나에게 중국은 지금도 너무나 낯설고 무서운 곳이다. 그나마 가장 많이 들어본 수도 베이징에서도 밤새 기차로 달려야 갈 수 있는 곳. 정말 내 삶의 한 켠에 들어올 일이 없었을 쿠부치 사막이었는데. 없'었'을 쿠부치 사막 이'었'는데. 방금 이 문장을 내가 과거형으로 썼다는 사실이 새삼 기쁘다. 사막을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한거야. 속으로 거기 어딘가에 내 나무가 있겠지 생각하니까.
나의 사막, 다섯번째 끄적임
"양이 꽃을 먹었나 안 먹었나... 양이 소리 없이 나가 꽃을 먹어버리기라도 했다면... 이런 생각이 들면 별들의 소리는 모두 눈물로 변해버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 나무 하나를 사막에 남기고 온 나는, 장미를 자신의 별에 남기고 온 어린왕자와, 또 그런 어린왕자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근심거리를 안고 와버린 것이다. 열심히 삽질을 하며, 내 나무에게는 촉촉한 흙만을 주기 위해 그 곱디 고운 건사를 매몰차게 걷어내고, 1m 아니 그 이상의 깊이를 꾹꾹 애정으로 채워냈던 나는 나의 사막이라는 크나큰 의미를 그 살아남을 확률이 80% 정도인 나의 나무에게 쏟아 붓고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즉, 사막 어딘가에 내 나무가 있겠지 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은 80%. 내 사막의 소리가 눈물로 변해버릴 확률은 20%...
모래바람이 매섭겠지. 뿌리가 촉촉한 흙에 잘 닿을 수 있을까. 나는 1조라 좀 가장자리에 심었는데 어디든 터를 잡을 때 가장자리는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쿠부치에는 굴레를 매지 않은 양도 있어. 심지어 떼거지야. 먹이사슬을 고려해 우리가 양꼬치를 더 많이 먹고 왔어야... 죽으면 안 돼 내 나무야ㅠ
*그간 선례를 보면 활착률, 즉 심은 나무가 사막의 강한 모래바람을 이기고 살아남을 확률은 80%정도라고 한다. 초기에 비해 상당히 높아진 수준.
우리는 나무를 심기 위해 사막에 갔다. 이 글에서 사막은 열심히 낭만적으로 묘사된 느낌이 없진 않으나 당초 우리는 점점 더 넓어지는 황토색 사막을 푸른 나무로 막고 또 채우기 위해 사막을 간 것이다. 가만히 사막을 응시하고 있으면 사막도 가만히 머물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방금 내가 지나온 길에 새겨졌던 나의 발자국은 뒤돌아본 어느 순간 모래바람에 덮여 사라져버린다. 발자국 없는 지금의 내가 좀전의 나와 어떤 흔적도 공유하지 못하고 외딴 섬처럼 덩그러니 떨어져 버린다는 느낌을 받을 때 뭔가 알 수 없는 위기감 비슷한 게 찾아온다.
나의 옷과 가방에 실려 한국에 함께 온 모래바람은 나의 아쉬움처럼 며칠을 따라다녔다. 자꾸 빼꼼 나오는 모래를 볼 때마다 주르르 풀려나오는 기억은 신기하게도 뿌연 황톳빛으로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문득문득 황금빛으로 일상을 찔러온다.
아 진짜 재밌었다!
눈앞에 그려질 듯 생생히 써본다고 썼지만 실제로 보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촬영감독님들이 멋지게 만들어주신 영상링크를 공유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였다아아아 보고나니 또 가고싶다아아아
<2019 미래숲 KF한중녹색봉사단 활동영상>
저를 사막으로 데려가 준 고마운 미래숲은 지난 2006년부터 우리나라로 불어오는 황사의 약 37%가 발원하는 중국 내몽고자치구 쿠부치사막에서 대규모 사막화방지 사업을 진행해 온 멋진 곳이에요. 지난해까지 천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4천30ha의 사막을 녹색숲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미래숲 홈페이지
http://www.futurefores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