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칭찬해 줘도..
초등학교 2학년 나의 학급엔 A라는 친구가 있다. 새 학기 첫날부터 이 친구는 눈에 띄었다. 알림장 쓰기 싫다고 엎드려 있거나 갑자기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가하면 내가 한참 설명하거나 이야기할 때는 딴짓을 하거나 읽고 싶은 책을 꺼내서 읽는다. 그러다가 밖으로 나가버린다. 화장실에 가서 숨기도 하고 학교건물 밖으로 나간다.
첫날부터 학부모와 상담하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자녀교육에 관심은 있으나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 몰라하는 학부모의 말에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밀려오는 부담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게다가 늦둥이로 얻은 아들이라 교사와 상담 중인데도 A는 엄마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앉아서 안겨 있고 한없이 어리광을 부린다.
A는 기분 나쁘게 자기를 쳐다본다고 친구의 머리를 자로 내리찍거나, 화장실 다녀오는 친구를 밀치거나, 헤드락을 건다.
분쟁 조정을 하려고 하면 내로남불이다. 운동장에서 자기에게 뭐라고 말하는 여자아이의 안경을 휙 벗겨서 던져놓고 자기는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고집을 부린다. 때론 교사에게 대들기도 한다."선생님도 해 보세요! 자기도 못 하면서!"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날씨라도 궂은날엔 "선생님은 악마예요!"라고 소리도 지른다.
이 친구는 기초학습 도움반으로 주 2회 국어. 수학 공부를 한 시간씩 한다. A는 국어보다는 받아 내림 뺄셈이 전혀 안되어 요즘은 남아서 계속 뺄셈 지도를 했다.
문제지를 들고 계속 딴짓을 한다. 하기 싫다는 것이다. 뺄셈이 없는 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다고 한다.
내 자리 옆 책상에 앉아서 같이 하자고 했더니 나와서 책상 밑으로 주르르 내려가 주저앉는다..
거의 드러누웠다.
"A님~10에서 6을 빼면 얼마죠?"40-6문제다.
끓어오를 짜증을 꾹 누르고 친절하게 물었다. 드러누운 채로 손가락 네 개를 가리킨다."와~~ 잘했어요."
A대신 4를 쓰고 십의 4자리에서 지운 3을 옆에 썼다,
"A님~그럼 이번엔 챌린지 문제예요."
13 빼기 7문제다.
"10에서 7을 빼고 나서 3을 더하면 얼마지요?"
한참 후 손가락 여섯 개가 책상 위로 빼꼼히 올라왔다.
"와.. A님 천재네.. 벌써 두 문제 풀었어요!"
물론 답은 내가 써줬다.
이렇게 몇 문제를 더하고 나니 A가 몸을 일으켜 문제지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써 내려간 답과 동그라미를 본다.
"이거 다 A님이 답 말해서 선생님이 쓴 거예요. 자~그럼 이 문제 볼까요.. 5에서 8을 못 빼네? 그럼 어떻게 할까? "
A가 드디어 연필을 잡았다. 55-8문제다. 십의 자리 5를 지우더니 4라고 쓰고 일의 자리 5위에 10이라고 쓴다."오~정말 잘했어요. 우리 뺄셈 문제들이 우리 A님 보고 벌벌 떨고 있네! 자~그다음엔 뭐를 해야 할까?"
한참을 보더니 10에서 8을 빼느라 연필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2를 어기적어기적 쓰자 내가 말했다.
"와 잘 뺐어요. 근데 위에 5는 어쩌지? "
그랬더니 연필로 2에 가위표를 쫙쫙하더니 7이라고 쓰고 십의 자리에는 4를 썼다. 나는 온갖 수식어를 붙여가며 왕칭찬을 해준 뒤 문제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주었다.
이제는 A가 몸을 굽혀 다음 문제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일의 자리에서 안 되니 십의 자리에서 가져온다. 있던 일의 자리와 더해 준다. 나는 일일이 동그라미를 쳐주면서 "와, 멋지다. 어쩜 이렇게 잘해요?", " 뺄셈 천재 맞네!", "엄마한테 선생님이 전화드려야겠어요. 수학 참 찰하고 있다고 말이에요~~."
결국 뺄셈문제 24개를 앉아서 다 풀었다. 아이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본인도 뿌듯한가 보다. 정말 잘 쌨다 칭찬하고 오늘의 간식 베라에서 나온 초코볼 '아빠는 딸바보'를 한 개 주었다. 전학 가고 싶다고 드러누워 생떼 쓰던 아이가 "안녕히 계세요!" 힘차게 가방 메고 간다.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한다. 작은 칭찬과 격려에도 아이는 변한다. 때론 좀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작은 성취엔 궁둥이 팡팡! 해 주면 그다음 계단을 오를 힘을 얻는다. 조금씩 선생님을 따르고 아이와의 래포가 형성되면 학부모의 신뢰는 덤이다.
누구에게나 '궁둥이팡팡!'의 여유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