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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이 Oct 12. 2021

런린이의 하프코스 도전기

런린이에게는 어려운 언텍트 마라톤



인천 국제 하프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하프코스를 선택해 등록했다. 이런 동기라도 있어야 하프코스도 한번 달려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훈련 : 책으로 배우기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의 최장거리 기록이 15km였고 그때 완주 후 더 달리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에 21km도 왠지 그냥 달리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인증 만료일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이 더해져 갔다.


책 '달리기의 과학'에 나오는 훈련법 중 <초보자 하프마라톤 프로그램>을 참고했다. 총 12주 프로그램인데 아주 성실히 따라 하지는 못했지만 주 3회 이상 달리는 거리와 시간을 늘려가며 따라 하려 애썼다. 하지만 정말 애만 쓴 것 같고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끝없이 의심이 들었다. 책을 보고 운동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 아니었다. 이건 마치 머털도사가 스승님도 없이 혼자서 산꼭대기에 집 짓고 수련하는 느낌이었다. 독학자의 자세로 이론과 실기의 괴리를 혼자 꿰뚫어 가야 할 것만 같은 어색하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준비 : 식사와 급수계획

인증 만료일인 10월 10일 일요일을 D-day로 정했다. 사실 기록을 위해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라면 기량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겠지만 나는 그저 도전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참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큰 준비는 필요치 않았다. 온라인으로 각자 기록을 인증하는 대회라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았으니 그저 전날 잘 자고 컨디션이 좋은 타이밍에 나가서 달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긴 거리인 만큼 식사나 급수는 준비와 계획이 필요했다.  


식사는 경주 시작 2-3시간 전에 가볍게 하되 에너지원이 되는 탄수화물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돼 도록 섬유질이 적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오트밀을 따뜻하게 해서 한 그릇 먹고, 그릭 요거트에 견과류를 넣어 먹었다. 그리고 9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달릴 때는 달리는 중간에 영양 공급을 해 줘야 해서 대회 사은품으로 온 에너지 젤과 프로틴 바를 러닝 벨트에 챙겼다.  


그리고 달리는 중에 물을 마시는 급수가 가장  문제였는데 집에서 남쪽으로  길로 달리면 끝없이 직진할  있어 달리기 좋은 코스지만 그늘이 거의 없고 7km 지점이 되어야 편의점이 나오는 길이었다. 날씨가 제법 더워 그전에 물을 마셔줘야   같았다. 그래서 집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달리면 4km 지점에 공원 매점이 있어서 북쪽으로 출발해서 4km 지점에 급수를 한번 하고 반환점을 돌아 남쪽으로 오면 10km 지점이  앞이니 여기서    급수를   있다. 그리고 집을 지나 남쪽으로 계속 달리면 다시 17km 지점에 편의점이 있으니 거기서 급수를 하고 다시 돌아오면 하프 코스를 완주할  있었다. 이렇게 집을 중심으로 반씩 돌아오는 코스를 짰다. 오프라인 대회라면 특별히 고민하지 않았을 일인데 언텍트는 여러모로 편하면서도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전략 : 그저 완주

21km 달리는 하프코스는 7km  번으로 나누어 전략을 짜는 것이 보통이다. 나의 전략은  7km 마이 페이스인 630 유지하고,  번째 7km 힘들어도 700 페이스 아래로 떨어트리지 않기였다. 실제 대회라면 다른 선수들의 무리를 보면서 포지션을 잡고 처음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정석인데 나는 혼자 달려야 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분명 페이스가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고 그래서 마지노선을 긋고 무리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7km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며 포기하지 않는 것과 마지막 500m 남기고 전력질주하는 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출발

매일 내가 스트레칭을 하는 나의 스트레칭 존에는 어느 가족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한쪽 구석에서 폴짝거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달릴 코스로 나오니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괜히 비장한 표정이 지어졌고 시선을 의식하며 발을 굴렀다. 사람이 많아서 그랬을까 오버페이스로 출발해버려서 첫 7km가 좀 힘들었다. 나는 보통 3km 정도 달리면 호흡이 트이는 느낌이 드는데 이 날은 유달리 호흡 컨트롤이 힘들었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다가 전략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 들었다. 10km 정도는 늘 달리는 거리였는데도 두배를 넘게 달릴 거라는 생각에 미리 겁을 먹고 무의식속에서 어설픈 전략따위 포기 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4km 지점에 있는 공원 매점에서 포카리 스웨이트를 한 캔 사서 마셨다. 딱히 목이 마르지는 않았지만 이미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고, 10km 지점인 집 앞에 물 한 병을 풀숲에 숨겨두는 계획을 까맣게 잊고 그냥 출발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첫 번째 급수를 하고 공원에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달렸다. 그러다 사람이 없는 길에 다다르자 호흡이 좀 안정되었다. 하지만 페이스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워터보이

떨어지는 페이스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 달려 집 앞을 지나 13km 지점쯤 되었다. 그때 강한 갈증이 밀려왔다. 입이 바싹 마르고 목이 탔다. 물을 마시려면 아직 한참 더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근처에 보이는 파크골프장 사무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 물을 얻어 마셔 볼까, 피크닉 나온 사람들에게 물을 얻어 마실까 온갖 고민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마침 남편과 맥도널드에 간다며 나간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오는 알람이 들렸다.(아이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어플의 알람) 바로 전화를 걸어 위치를 알려주고 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갈증을 참으며 한참을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큰아이가 보였다.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잠시 서서 시원한 물을 나눠 마시고 에너지 젤도 먹었다. 에너지 젤은 처음 먹어봤는데 박카스를 찐득하게 농축시킨 것 같은 맛이 유쾌하지 못했다. 설명서에 물과 함께 먹으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지막 급수

큰 아이에게 완주지점까지 같이 가겠느냐 하니 고민이 되는지 망설이기에 아이는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계속 가던 길로 달렸다. 그렇게 세 번째 급수 지점에 다다랐다. 여기는 핑크 뮬리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계획은 작은 이온음료를 마실 생각이었는데 캔 음료는 보이지 않아서 500ml 물 한 병을 사서 마셨다. 다 마시면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이 될 것 같아 반만 마시려 했는데 너무 덥고 입이 바싹 말라서 그랬는지 물 한 병이 단숨에 원샷되어버렸다. 물 병이 완전히 비워지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분명 달리면서 배가 아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출렁출렁 뱃속에서 흔들리는 물이 옆구리 통증을 일으켰다. 쿡쿡 쑤시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속도를 늦춰보고 걸어도 보고, 멈춰서 스트레칭도 했다.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통증에 페이스는 사정없이 떨어졌고 이젠 페이스고 뭐고 걷지나 말자 하는 마음이었다. 마주 오거나 나를 추월하는 자전거들이 얄밉고 부러웠다.  


완주

완주 1km를 남겨두고 조금 더  힘내서 달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남편이 보였다. 예고되지 않은 등장이라 어리둥절 했는데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를 뒤따라 오며 남편이 물을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목이 타고 갈증은 느껴졌지만 뱃속은 아직도 물로 출렁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물은 많이 마셨으니 집으로 돌아가 차를 몰고 오라고 했다. 완주 1km 전인데 집까지는 4km 넘게 남았으니 남은 거리를 차를 타고 가면 완벽했다.  


골인 지점까지 500m가 남았을 때 전력질주가 계획이었는데 내게는 500m나 전력 질주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쥐어짜면서 달렸다. 러닝 어플에서 축하합니다 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제발 빨리 좀 축하한다고 말해"하면서 이를 악물고 달렸다. 이윽고 "축하합니다.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거리 21.1km 시간~"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끝났다.  




축하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들으니 큰 아이가 내게 물을 가져다주고 난 후 작은 아이와 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었단다. 완주 메달과 작은 아이가 만든 상장을 챙기고 얼음물과 수건을 들고 나왔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먼 거리까지 간 상태였다. 땡볕에 자전거를 타고 한참 가다가 지쳐버린 작은아이는 못 가겠다고 했고 그래서 아이들을 다시 집에 데려다주고 뒤늦게 남편 혼자 온 것이었다.   


집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현관에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피니쉬 라인을 만들어 놓고 만세를 불렀다. 현관에 얼음물과 컵을 두고 호두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상장을 주고 메달을 걸어주며 축하해 주었다. 너무 귀엽고 고마웠다. 집에 들어와 스트레칭을 하며 물을 더 마셨는데 갈증은 가시지를 않고 배는 물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씻고 나와 아이싱을 하고 스트레칭을 좀 더 했다.   


21km는 절대 만만히 볼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훈련을 충실히 해야 하고 D-day를 앞두고 미리 천천히 거리를 늘리면서 준비를 했어야 했다. 다행히 특별한 부상 없이 무사히 완주했지만 혼자서는 좀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급수나 코스에 대한 걱정 없이 달릴 수 있게 오프라인 대회도 얼른 다시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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