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나고야>로

서론: 고베에서 나고야까지 12시간????

by 로운

나와 나고야와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다.

2013년 8월,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들고 고베에 들어갔다. 나는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쳐보고 싶었는데, 마침 관련 일자리가 고베에 있었기에 관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러운) 명함 한 장을 만들어 칸사이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고베에서 1년을 살 것이라는 데에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고베에서 만난 관계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일자리가 탐탁지 않았다. 이미 만 30을 앞에 두고 있어, ‘홀리데이’보다는 ‘워킹’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 나에게는 충분한 수입이 예상되지 않는 일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친구가 생각났다. 내가 도일(渡日)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 우연히 마음이 잘 맞는 일본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나고야 그 친구는 재일교포였고, 한국에서 6개월간 한국어를 배웠고, 곧 공부가 끝나 고향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성격이 비슷해 급속도로 친해졌었다.

어차피 일자리도 마음에 안 드는데, 일본에서 의지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나는, MBTI가 J임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노선을 틀었다. ‘가자, 나고야로!’ 그리하여 나는, 한달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나고야에 몸을 의탁하러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내가 고베에서 나고야로 가는 날, 일본에 큰 태풍이 왔다. 지금 생각하면 꼭 그날 나고야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일기예보도 보지 않고 이동을 감행했다. 게다가 신칸센을 탔으면 좋았을 걸, 돈을 아낀답시고 자이라이센(在來線)*을 탔다. 내가 탄 자이라이선은 마이바라(米原)라는 역에서 멈추더니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잠시 후에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그때만 해도 일본어가 완벽하지 않았던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 많은 짐은 기차 안에 두고!) 승강장으로 나가 상황을 파악하려고 우왕좌왕했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나는 태풍 때문에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때 처음으로 ‘미아와세(見合わぜ)*'라는 단어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 열심히 귀동냥을 하니, ‘신칸센은 운행을 재개했으니 역에 갇힌 분들은 OO번 승강장에서 신칸센을 타시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또 그 많은 짐을 가지고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기서 내가 일본에 문화 충격을 받은 것인데, 이 상황에서도 ‘할 건 한다’는 것이었다. 자이라이센과 신칸센은 가격이 다르니, 자이라이센에서 신칸센으로 갈아탔다는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이런 상황에선 융통성 있게 ‘다들 조심해서 나가세요’ 할 텐데, 일본에선 한 명 한 명 확인을 하고 내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이라면 누군가는 “그거 상황이 상황인데 대충 합시다”라고 할텐데, 일본인들은 다들 한 마디 불만 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결국 나는 나고야역에 내려서 개찰구를 나갈 때까지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차액을 냈는지 안 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시스템이 너무 충격이었다.

내가 고베에서 열차를 탄 것이 오전 10시. 나고야역 개찰구를 나온 것이 오후 10시. 자이라이센으로 고베에서 나고야까지 보통 3시간 정도가 걸리니, 그거의 4배의 시간을 써서 나고야에 온 것이다. 그때는 일본 시스템도 마음에 안 들고 그저 지쳤을 뿐이었었다.


서울에서 나고야까지도 3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데, 나는 무려 고베에서 나고야까지 12시간이 걸려 나고야에 오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도착한 도시는, 1년 후엔 '나의 두번째 고향'이 되어 있었고, 그 이후로 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가 될 것이라는 것은, 그때의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자이라이센(在來線): 고속열차 신칸센을 제외한 일반 열차. 한국으로 따지면 무궁화 같은 것.

* 미아와세(見合わぜ): 열차 등이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운행을 멈추거나 지연시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