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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E / 조던 필 2022

by 노D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 [프리드리히 니체]

세상은 바라보는 것에 대한 실체다. 보는 만큼의 세상이 존재하고, 보지 않는 만큼의 세상이 동시 현상적으로 죽어있다. 어리석게도, 보는 자는 스스로도 관측 대상임을 쉽게 간과한다.


보다 see의 어원은 sequi - ‘따라가다’ follow이다. 우리가 ‘본다’라고 말하는 행위의 바탕에는 그에 일치하는 평행적이고 대칭적인 ‘눈맞춤’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혹은 무엇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인가? 1984의 ‘빅브라더?’ 카라마조프 형제의 ‘대심문관?’ 멋진 신세계의 ‘무스타파 몬드?’


다양한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독재적 군림자들이 현실 세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진실이다. 개인의 자유가 개인의 정보와 신원으로 맞교환되는 재화가치 시대 속 외부의 힘은 세련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서사가 여과된 개인을 소비한다. 개인은 그러한 세상을 개인의 서사의 크기만큼 관측하고 안락한 규모에서 인생을 측정한다. 여지없이 아이러니는 눈맞춤 속에서 발생하며 아이러니는 그렇게 삶의 양식으로 수립된다.


하지만, 보는 만큼의 세상이 존재하는 동시에 여분 세상이 존재하지 않듯,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바로, 나의 세상은 나의 시선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여기서 말하는 시선이란, 개인이 현재까지 살아낸 총체적 시간의 물성과 그 속에서 빚어낸 개인의 정신적 세계를 말한다. 내가 곧 하나의 세계며, 그 세계의 움직임을 오롯하게, 그러나 불온하게 포착한다.



내가 인지하는 세상은 온전히 나에 의해 탄생하고 타자가 인지하는 세상은 온전히 타자에 의해 지속된다. 문제는, 무수한 세계들의 충돌과 대립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인데, 실은 그 과정이 없이는 개인의 세계관 자체가 형성될 수 없다는 것도 우린 잘 알고 있다.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줄곧 ‘나’이며, 타자와 타의에 의한 교정과 영향을 반복해도 ‘나’라는 굴레는 극복되지 않는다. 지구라는 별을 둘러싼 수많은 관망과 모니터링도 ‘정확한 세계’를 관측할 수 없다. 시선이 존재를 선행하듯, 나를 향한 시선은 외부에서, 그리고 내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치러진다. 마찬가지로, 내가 투사하는 시선은 외부로, 또 내부로 동시다발적으로 성사된다. 세계의 진실을 향한 객관성은 언제나 무른 주관성의 거센 빨판에 의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개인의 진실은 취약하기 따름이지만, 이 가망 없는 지점에서야말로 우리는 세계 자체와의 분열을 지켜볼 수 있다. 조금이나마 원초적인 세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조던 필 감독의 영화 '놉'(Nope)은 할리우드의 동물 조련사인 ‘OJ’ 헤어우드 주니어와 그의 여동생 에메랄드가 미확인 비행물체를 발견하고 이를 촬영하려는 과정을 그린다. 그들은 전자제품 판매점 직원 엔젤의 도움을 받아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유명 촬영감독 앤틀러스 홀스트를 고용해 비행물체를 촬영하려 한다. 인근에서 주피터의 주장이라는 서부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리커 ‘주프’ 예로우도 비행물체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이를 자신의 쇼에 이용하려고 한다. 비행물체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욕망은 영화가 결말에 이를수록 허망하고 참담한 결과로 드러난다.

'놉'은 조던 필 감독 특유의 다층적인 의미와 상징이 담겨있어, 해석과 이해에 깊은 사고를 요구한다. 이러한 특징은 일부 관객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 전작들보다 더 큰 호불호를 불러일으켰다. 공포, SF, 서부극 등 다양한 장르를 혼합하여 기존 장르 영화의 문법을 벗어난 독창적인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난해하다는 의견 또한 많았다. 영화 산업과 스펙터클에 대한 오마주와 동시 비평을 담고 있어,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과의 취향적 괴리를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불호의 양상에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난해함과 불친절함이 감싸고 있는 하나의 주제를 발굴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서문에서 말한 ‘눈맞춤’이다. 안개와 미로와도 같은 영화의 모호한 형식 속에서 자기반성처럼 튀어나온 ‘눈맞춤’이라는 주제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놉’에 등장하는 OJ와 에메랄드 남매는 비행선을 촬영해 유명세를 타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실이 아닌 쇼를 위한 도구로서의 욕망이 드러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라는 시선의 욕망체가 종종 사실을 왜곡하고 사유 없이 이를 제공받는 현대인의 반응은 우리가 진실을 받아들이는 편협한 태도를 지목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위험하며, 그렇기에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지속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하지만 정확한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현재의 현상에만 시선을 들이밀 수는 없다.

영화는 OJ와 에메랄드를 통해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목장과 영화 산업의 기원을 재조명한다. 생존을 넘어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유산을 찾으려는 여정이기도 하다. 비행선은 기원의 상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외계 물체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통제할 수 없는 존재와 사건 앞에 인간이 알고 있는 기원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놉’은 영화 산업의 시초에 설립된 시도와 가치들이 현재에서까지 막중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 남매는 비행선을 촬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전통과 현재를 엮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가장 새로운 것을 위한 퇴보. 가장 오래된 것들로부터 길어낸 새로움. 여기에 눈맞춤의 본질이 숨겨져 있다.


최초의 연속 동작 사진인 ‘달리는 말’에 대한 언급은 영화의 탄생 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 매체의 기원을 상기시키고, 주인공들이 외계 생명체를 포착하려는 시도는 현대 사회의 스펙터클 중독을 반영하며 그토록 특별한 것을 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욕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조던 필 감독은 '놉'을 통해 단순한 공포나 SF 영화를 넘어, 우리의 시선과 인식의 근원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유도한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세계의 본질과 그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다, 현재를 깊이 직시하는 사람은 현재를 있게 한 기원을 함께 본다. 눈맞춤은 단순히 수평적으로 나열된 다른 시선과의 교환이 아닌,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교집합으로의 접근이자 참여이다. 너와 내가 존재하기도 전에 선재했던 본질의 세계를 현재의 타임라인으로 길어 올리는 행위, 기원을 향한 시선은 곧 ‘길어냄’ 즉 Schöpfen - 창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것은 가장 오래된 것, 기원에 가장 근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며 창작은 기원에 기인한 새로움을 제시하는 행위이다. 아이러니 투성인 현재의 난잡한 현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무엇인가를 보는 힘, 그것이 눈맞춤의 정확한 작동일 것이다.


세상은 바라보는 것에 대한 실체다. 보는 만큼의 세상이 존재하고, 보지 않는 만큼의 세상이 동시 현상적으로 죽어있다. 어리석게도, 보는 자는 스스로도 관측 대상임을 쉽게 간과한다. 우리가 ‘본다’라고 말하는 행위의 바탕에는 그에 일치하는 평행적이고 대칭적인 ‘눈맞춤’이 있다. 그러니 이제는 다시 물을 수 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향한 집요한 눈맞춤의 대상은 무엇인가? 누가 (혹은 무엇이)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인가?


[Nope <놉>, Jordan Peele, 2022]

Casts: Daniel Kaluuya, Keke Palmer, Brandon Perea, Steven Yeun, Michael Wincott, and more

Universal Pictures, August 17, 2022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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