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들은 숫자를 이용할 궁리를 한다." -캐롤 D. 라이트(1840~1909 통계학자, 미국의 초대 노동부장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흔히 듣는 말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절반의 진실이다. 숫자 자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 숫자를 선택하고, 가공하고, 해석하고, 보여주는 방식은 충분히 거짓말과 동일한 효과처럼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 상의 평균이라는 수치는 객관적인 현실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또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가리게 할 수도 있고, 현실을 직시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통계라는 도구는 날카로운 칼과도 같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다치게도 할 수 있기때문이다. 조사 표본의 구조와 선정방식을 비롯하여 해석의 방식에 따라 마법처럼 바뀌는 정치관련 여론 통계조사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숫자와 통계를 접한다. 뉴스에서 전해지는 소득 수준, 부동산 가격, 혹은 병원 대기시간 같은 수치는 사회 현실을 이해하는 지표가 된다. 하지만 이 숫자들이 언제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평균’이라는 수치는 겉보기에는 객관적이고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객관적인 수치 자체로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평균의 함정’이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
평균은 전체의 모습을 단순화해 보여준다. 그러나 평균은 극단적인 값, 즉 소수의 매우 높은 값이나 매우 낮은 값에 쉽게 흔들린다. 이를 '올려치기 평균'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이 사장을 포함하여 총 10명이 있다. 이중 9명의 직원은 각각 월 200만원을 받는다. 사장은 월 2, 000만 원을 가져간다. 그래서 이 회사의 월 평균 월급은 380만원, 평균 연봉은 4,560만 원으로 공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이 회사 직원의 90%가 연봉 2400만원에 월 200만원을 수령하고 있으므로, 실제로 이 회사의 직원들이 어떤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는지를 전혀 드러내지 못한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평균치가 눈앞에 제시되는 순간, 우리는 이른바 '평균의 함정', '평균의 착시' 속에 빠져든다.
이러한 현상은 부동산, 교육, 의료 등등 일상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가 12억 원이라고 할 때, 서울에 거주하는 수많은 이들은 ‘집값이 그 정도면 내 평생에 과연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수십, 수백억원의 초고가 아파트가 평균을 끌어올린 결과일 뿐, 중산층 가구가 접근 가능한 현실적인 가격은 이보다 훨씬 낮다. 학교 성적도 마찬가지다. 평균 점수가 높다고 해서 모든 학생이 고르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생은 매우 우수하고, 또 다른 학생은 거의 바닥에 가까울 정도로 뒤처지고 있을 수 있다. 병원 대기시간이 평균 30분이라 해도, 어떤 환자는 5분 만에 진료를 받지만 누군가는 2시간 넘게 기다려도 차례가 오지 않는다. 평균이라는 단순한 숫자에 숨어 있는 불균형은 결국 개개인의 현실 경험을 가려 버린다.
특히 소득과 자산 문제에서 평균의 함정은 사회적 착시를 심화시킨다. 한국은행의 '2024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 통계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6천624달러다. 원화 기준으로는 4천995만5천원이다. 통계청 자료( 2024년 4/4분기)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근로 소득은 324만 천원이다. 명심해야할 것은 평균소득은 호프집 알바생부터 재벌회장까지 소득 전체를 합산하여 근로자 수로 나눈 평균값이다.
소득의 현실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평균소득이 아니라 중위소득이다. 기준 중위소득은 우리나라 모든 가구의 소득을 순위대로 주욱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을 100% 기준으로 잡은 수치다. 2025년 기준 중위소득(100%)은 1인가구 239만 2천원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대략 60%~70%가 기준 중위소득 75%(179만4천원)이상~ 150%(358만8천원)이하 구간에 분포한다. 실제 현실에서 절반 이상(대략 60%)의 사람들이 월소득 200~300만원대 구간에 형성되어 있다. 실제 현실과 더 가까운 것은 소득 평균값이 아니라 소득 중위값(중앙값)인 것이다. 결국, 평균소득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 전체 근로자의 소득수준을 가늠한다면 이미 통계의 함정, 평균의 착시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인터넷이나 SNS, 유튜브 등에서 보여지는 중산층의 기준은 현실과 큰 괴리가 있다. 예를 들어, 부채 없는 서울 30평대 아파트, 월 500만원 이상 급여, 1억 원 이상 예금 잔고 등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한국 가구의 평균 소득(2024년 기준 월 324만원)과 비교했을 때 실제 현실과 극명하게 다르다.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위의 표처럼 월 500만원 이상 급여를 받는 사람은 상위 20%, 부채 없는 서울 30평대 아파트에 1억 원 이상 예금 잔고를 보유한 사람은 순자산으로 계산하면 최소 10억원 이상으로 대한민국 전체 상위 20% 이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실제 중산층의 소득과 자산 기준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은 중위소득의 50%에서 150% 사이의 소득을 가지는 가구로 정의하고 있다. 2025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4인 가구의 중위소득(100%)은 약 610만 원이다. 따라서 실제 중산층의 소득 구간은 1인 기준으로 대략 300만원(50%)~900만원(150%) 사이에 있다. 순자산은 상위 20~60% 정도를 중산층으로 본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중산층의 자산규모는 대략 순자산 2억 원 후반에서 7~8억 원 사이에 있다. 결과적으로 상위층의 소득과 자산이 평균을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린 결과, 실제 중산층은 평균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올려치기 평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실질적 중산층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중산층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올려치기 평균'의 결과로 나타나는 이러한 착시는 현실 인식에 대한 사회적 감각을 상실하게 만든다. SNS, 유튜브,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미디어와 상업광고는 이를 더욱 심화 확대시킨다. 예를 들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여성들의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게 설정되어 있다. SNS, 유튜브, 인터넷, 미디어 그리고 상업광고의 영향이 아주 크다. 이들에 의해 올려치기된 평균에 결혼조건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결혼을 생각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요구하는 결혼조건으로 대표적으로 ①4년제 인서울 졸업자, ②키 180이상, ③월급 500만원 이상 또는 연봉 1억이상, ④30평이상 아파트, ⑤보모노후준비 등을 들고 있다.
현실은 이렇다. ①인서울 4년제 졸업자 남자는 대학졸업자 전체에서 대략 7%, ②키 180이상은 남성 전체 중의 11 %, ③월급 500만원이상(상위 20% 이내), ④연봉 1억이상(상위 10% 이내), ⑤30평이상아파트(30대 13%, 소득 상위 20~10%이내), ⑥부모노후준비(상위20%). 이렇듯 각종 자료와 대조해 보면, 대한민국 상위 20%이내에 속한 소수의 20~30대 남성들만 이 기준의 일부 또는 전부를 충족한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20~30대는 상위 10%이내의 극소수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평균 혹은 평균에도 못미치는 보통의 여성들이 너도 나도 결혼 대상을 상위 10%이내의 고소득 남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간은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이마누엘 칸트
누구든 꿈꾸는 것은 자유다. 꿈은 꿈일 뿐 실현가능성이 없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간에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결혼을 단순히 사회 경제 문화적 신분상승의 수단로 삼고 있는 셈이다. 서로에 대한 사랑, 신뢰, 책임감, 배려, 헌신 등의 요소가 결핍되어 있는 결혼은 그저 재물을 매개로 한 남녀의 관습적이고 합법적인 짝짓기 교합에 불과할 뿐이다. 수단이나 도구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언제든 버려지거나 방치될 수 있다.
평균의 착시는 현실 지각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현실 지각'은 사람이 오감(시각, 청각, 촉각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객관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는 개인의 경험, 감정, 그리고 인지 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클 경우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SNS와 각종 미디어에 영향을 받은 일부의 사람들은 이른바 '신데렐라 신드롬'에 빠져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데렐라 신드롬이란, '현실의 어려움과 책임을 회피하고, 타인의 도움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은 이러한 현상을 '아노미(anomie)' 로 설명했다. 아노미(anomie)는 '문화적 목표와 제도적 수단 간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회학의 종주(宗主)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아노미(anomie)를 '사회적 규범의 붕괴로 개인이 삶의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진 상태'라고 정의했다.
아노미 현상이 일어나면서 SNS와 각종 미디어가 제시하는 올려치기 평균을 사회적 현실로 인식하고 그들이 제시하는 목표와 수단을 마치 자동인형처럼 그대로 수용하여 사회 경제적 현실의 기준 척도로 삼는다. 이른바 '국평오(국민 평균 5등급)'와 같은 신조어는 대중의 우매함을 비판하는 맥락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는 사회 전반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져 소수만이 중간에 속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처럼 '올려치기 평균'의 결과로 나타나는 착시는 심리·사회적 문제를 낳는다.
과연 상위 10%이내에 해당하는 젊은 사람들과 그 부모들이 과연 어떤 이성을 배우자로 원할까? 평균 이하 또는 평균인 사람들이 원하는 결혼 상대의 기준이 상위 10% 이내라는 사실은 곧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토록 원하는 이상형은 현실적으로 그림에 떡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번 지나가버린 꽃다운 나이, 청춘의 전성기는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4~50대의 독거 노처녀가 급증하고, 특히 여성의 경우 나이를 먹을수록 독거 삶의 현실은 더욱 외롭고 각박해지고 비참해지며, 그와 발맞추어 젊은 남성들의 결혼기피, 한국여성 기피, 국제결혼의 증가, 그 결과 심각한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제시된 기준의 평균보다 못하다는 인식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정책 역시 평균을 기준으로 설계되면, 진짜 도움이 필요한 계층은 배제된다. 중산층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사람들은 평균을 따라잡기 위해 과소비와 대출에 매달린다. 상위 10% 이내의 삶이 마치 보편적인 평균의 삶처럼 비춰지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불필요한 과소비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상위 10% 이내의 삶을 보고 잘못된 기준을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생존자 편향'과 유사하다. 생존자 편향은 소수의 성공한 사례만을 바탕으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생존자 편향'의 결과, 직장생활 5년 이내의 실수령 월급 2~300만원대의 이른바 사회초년생이 남들처럼 평균인의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 은행 대출로 해외여행을 다닌다. 할부로 중형 자동차를 몰고, 월세 100만원이 훨씬 넘는 오피스텔 또는 원룸에 나홀로 거주한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고가의 브랜드를 온몸에 두르고, 대출을 받아 명품을 사고, 끼니마다 배달음식에 주말마다 고급호텔에 풀빌라 숙박에 오마카세에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며 여가를 즐긴다. 마치 경쟁하듯 일거수 일투족을 멋진 사진 혹은 일상의 브이로그에 담아 SNS에 올린다.그야말로 인터넷이 그려주고 점지해 준 평균의 럭셔리(Luxury)한 삶을 누리는 것을 대중에게 보란듯이 과시한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다. 과연 이들이 어떤 직장, 어떤 직업, 어떤 업종에 종사하고 있을까? 확실한 것은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화려한 삶, 과소비가 주는 순간의 달콤함과 만족감을 누린 그 댓가는 참혹하다.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온 세상이 두려운 곳이 되고, 세상 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일생이 모두 한낱 꿈속이 된다. 자기 분수에 넘치도록 복(福)을 추구하는 것은 곧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이고, 자기 본분에 맞게 분수를 지키는 것은 복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진계유(陳繼儒, 1558~ 1639), 『소창유기(小窓幽記)』
지출은 소득과 비례한다. 정상적인 소비는 쓰고 남은 것을 저축하는 게 아니라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춰 저축하고 남은 것을 쓰는 것이다. 이른바 선저축 후소비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미혼일 경우, 누구나 월급의 30~50% 저축이 가능하다고 한다. 참고로 일반 직장인이 사회초년부터 월급의 30~50%를 꾸준히 저축할 경우, 대략 7~8년이면 1억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특별한 변수가 없다는 전제하에서 비교의식이나 과시욕이 없고 경제관념을 갖춘 근면성실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사실이다.
과소비는 습관이다. 마찬가지로 저축 또한 습관이다. 경제관념은 하루 이틀만에 자리잡는게 아니다. 과소비의 결과는 뻔하다. 직장 생활 10여년을 넘게 해도 통장엔 모아 둔게 거의 없다. 매월 고정지출, 소비지출로 다 빠져 나가고 늘어나는 건 마이너스 통장뿐이다. 사채를 내어 은행 대출이자와 카드빚를 갚는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새파란 젊은 나이에 사채까지 손을 대는 순간 인생은 막장까지 다 간 것이다. 평생 빚에 쪼달리는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다. 결국 평균이라는 단순한 수치가 사회 불평등을 가리고, 오히려 사회적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함정을 넘어설 수 있을까?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랭이가 찢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인생은 잠시 반짝 빛나고 끝나는 한탕의 삶, 일장춘몽같은 환상의 삶이 아니다. SNS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했거나 삶의 최고의 순간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를 현실의 평균으로 받아들이면 상대적 박탈감과 불행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장 행복하고, 화려한 최고의 순간들을 멋지게 연출하여 보여준다. 심지어 그러한 삶을 연출하여 보여주는 것이 먹고 사는 생존의 직업인 사람들도 허다하다.
이외에도 SNS 등에서 멋지고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일상의 삶을 보여주는 젊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비정상 혹은 비합법적 또는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방식의 직업군에서 불로소득이나 음성소득을 누리는 자기과시적인 관종의 사람들일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추측해 본다. 어째튼 상위 10%가 보여주는 평균의 삶, 또는 연출된 화려한 삶, 자기 과시형의 럭셔리한 관종의 삶이 결코 대한민국 보통 사람의 삶, 평균의 삶이 될리는 만무하다. 인터넷, 미디어, SNS, 유튜브 등에서 보여지는 평균의 삶에 속아서는 안된다.
옛글에 이런 글귀가 있다. "만족을 알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요, 탐욕을 채우는 일에 힘쓰면 근심에 이르게 될 것이다"(경행록). 자신에게 주어진 것,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일컬어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고 한다. 만족을 모르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국에는 행복을 모르는 불행한 사람이 될 뿐이다. 자기 분수를 편안하게 여기고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다운 행복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포함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는 눈, 현실을 지각하는 눈이다.
"이상한 역설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우리는 변화할 수 없고, 또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때, 변화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칼 R. 로저스(Carl R. Rogers), 『On Becoming a Person. 1961』
통계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 데이터의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평균값에만 집중하여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 결국은 평균값을 소득의 절대기준치로 삼아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열등감이나 불안감을 느끼게 하여 불만족스러운 삶을 초래할 수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평균’이라는 환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만의 기준과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사회 평균에 집착하여 타인과의 비교 대신에 자신의 성장을 위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평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평균을 절대적인 지표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중위값, 최빈값, 분산과 표준편차 같은 다양한 수치를 함께 살펴야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상·하위 각 계층의 분포를 보여주는 분위값(구간별 분포) 자료를 활용하면 격차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정책 설계 통계 자료에서는 평균 소득 대신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결국 평균은 현실을 단순화한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다. 평균 너머에 숨어 있는 분포와 맥락을 읽어내는 힘이야말로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에 다가가는 길이라 하겠다. 숫자와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 해석에는 언제나 함정을 품고 있다. 우리가 평균의 환상, 아니 평균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2025.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