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호기심이 불러온 지적 대참사에 대하여.
1부에선 오만가지 알바를 주저리거려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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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부까지 갈 정도로 알바를 많이 했던 건 아니예요. 일도 하고 직장도 다녔으니까요..ㅋㅋㅋ.. 긁적긁적.. 대신 알바만큼 많이 했던 게 쓰잘데기 없는 것들 공부하기였어요. 덕분에 성적은 폭망했지만 당시엔 재밌었답니다. (당시에만)
뭔가 어렸을 땐 주인의식 뽐뿌가 솟구쳐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게 좋았어요. 인정욕구에 챱챱 쩌들어서 '조낸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물론 지나고 나니 부끄럽고 손발오글이토글이지만... 그 혼란찌질한 시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에요. 나름 얻어간 것이 있었답니다.(....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그 썰을 한 번 풀어볼까 해요.
믿기지 않겠지만 저는 잡학지식을 굉장히 사랑해요. 그 시작은 6살 때였었는데, 엄빠의 사랑이 가득담긴 공룡대백과가 그 시작이었어요. 놀라운 건 지금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나는데... 공룡의 이름뿐만 아니라 공룡뼈의 구조와 치골의 위치, 근육구조를 달달 외우는 걸 좋아했어요..(왜 그랬지?)
이후론 신생대의 시작에서 유카탄 반도의 운석대충돌로 사랑하는 공룡들이 다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지구과학에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어요. NHK에서 해줬던 '생명, 그 영원한 신비' 라는 다큐를 보고 완전히 중독이 되버린 거예요.
그래서 지구의 45억년 역사를 달달달달 외우고 다녔었어요. 달은 왜 생겼고..DNA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맨틀은 어떻게 형성되고..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 대멸종은 어떻고... 주절주절....물론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진 않았어요.
초등학교 때 아부지가 친척형네 집에서 뭔가 빨간 잡지를 잔뜩 가져왔어요. 뉴튼지였죠.
아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아요. 뉴튼 지는 조낸 재미있어요. 당시만 해도 온통 빅뱅과 초끈이론, 블랙홀 등등의 내용이 가득했었죠. 뭔가 뉴튼지는 지금도 그런 내용들이 가득한데 은근 과학계의 가십지같은 느낌도 들어요. 초끈이론을 어떻게 초딩나부랭이가 이해하겠어요? 그냥 뭔가 11차원이 있다는 게 너무 놀랍고 신기했을 따름이었죠. 그래서 일단 모르겠고 달달달 외우고 다녔어요.
그렇게 달달 외우고 다닌 채로 중학생이 되었는데..중학교도서관에 만화로 된 겁나 재미있는 물리학시리즈가 있었어요. 그중에서 제 눈길을 확 잡아끈 것은 프랙탈이론과 양자역학이었죠. 특히 양자역학 이론중에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충격 그 자체였어요.
상대성이론보다 더욱 마법같은 이야기들이거든요. 양자역학은 어찌보면 좀 초자연적인 내용같기도 하고..한편으론 철학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해요. 그래서 흠뻑 빠져들고 말았죠. 지금도 쿼크단위의 세계에 대해서 흥미진진한 호기심이 가득하답니다. 그러나 아무와도 이런 말을 할 수 없음....(그랬다간 아싸되벌임)
고등학생이 되고나니.. 확실히 교과목에 집중해야 했어요. 그 중 수학은 루비콘 강 너머의 지옥문과 같았고, 영어는 샘이 너무 재미없었어요. 그 와중에 국사선생님이 오지게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국사를 달달 공부하게 되었어요. 샘이 재미있었던 이유가..단순히 년도별로 외우라는 게 아니라 인과관계를 잘 설명해주셨거든요. 그 와중에 야사도 중간중간 섞이기도 하구요. 너무 재미있었음...
예를 들면 고려시대에는 오히려 여성의 위상이 높아서 부엌에 남자가 안들어간게 아니라 못들어간 것이라는 (부엌은 여성의 전용공간 내지는 금남의 공간이었거든요.) 이야기 등등 말예요.
거기에 플러스해서 누구나 한번쯤은 관심가져봤을 심리학서적도 찾아보곤 했었어요. 왜냐면 한참 성욕폭발일 때였던 지라... 프로이트의 리비도개념이 뭔가 크게 공감갔거든요(사실, 리비도는 그냥 하앍하앍 성욕에 대한 얘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심리학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이건 2차세계대전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된 1961년 밀그램의 복종실험 때문이었어요. 당시엔 너무 큰 충격이었거든요.
그 때 이후로 전 성무성악설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황보단 이이의 이통기국론에 손을 들어주게 되었죠. 기억이 새록새록 나시죠 문과여러분?...
고2때 담임샘은 생물샘이었어요. 초딩때 DNA의 탄생에 대해서 탐구했다고 했잖아요. 그 이후로 DNA의 복제에 대하여 늘 궁금했었어요.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서야 센트럴도그마의 개념이 이해되기 시작했죠. 이름부터 개멋져... 이건 1958년의 크릭이 내놓은 가설이었는데, 분자생물학의 기본원리라는 뜻이예요. 골자는 생명의 기원이 사실 DNA가 아닌 RNA일 수도 있단 내용이었는데.. 초딩때부터 믿어왔던 DNA가 사실은 훼이크일수도 있단 사실은 거의 카이저소제급의 대반전이었어요.
센트럴도그마를 공부하다보면, 예외사항이 하나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HIV바이러스예요. 바로 에이즈죠. 원래는 DNA가 RNA로 바뀌는게 정방향인데... 에이즈를 일으키는 레트로바이러스는 RNA를 DNA로 바꾸는 역전사효소를 지니고 있단 내용이었어요. *(바이러스는 RNA만을 지니고 있어요.) 본인이 가진 RNA를 이래저래해서 DNA로 바꾼 다음 몸 속의 면역세포안의 DNA와 결합해서 프로바이러스로 변신한다는 거의 마블세계관 같은 기똥찬 내용이었죠.
이 때부터 면역에 대하여 급하게 빠져들기 시작해서..암세포와 에이즈, 루푸스, 에볼라, 흑사병 등등..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주요 질병들의 메커니즘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거의 뭐 약간 미치광이 과학자느낌..?
물리학과 생물학을 얼핏얼핏 건들다보면 늘 등장하는게..바로 철학자들이에요. 사실 고대의 철학자님들은 죄다 투잡 쓰리잡이어서, 철학자를 전업으로 하신 분들은 거의 없었거든요. 대부분 발명가, 미술가, 물리학자, 의사 등등...겸업을 밥먹듯이 하신 분들이라 자연스럽게 철학자님들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전 사탐 선택과목이 윤리와사상이어서 달달달 외우기도 해야했구요.
특히 서양철학은 계파가 이성중심, 본성중심으로 쪼개져서 고대그리스 시절부터 하나의 스토리를 그릴 수 있거든요. 스토아학파의 후예들과, 에피크로스학파의 후예들의 이야기를 쪼개서 생각해보면 중간중간 나름 변절자 소리를 들었더 사람들도 이해가 가고, 왜 계파가 쪼개졌는지 뒷얘기들이 꽤나 흥미진진 했었어요. 동양철학보단 서양철학사를 더 좋아했었어요 :) (왜냐면 뭔가 영어단어를 주절주절하는 게 조금이라도 더 멋져보였나봐요..허세 지렸던 사춘기시절이라..... 부끄)
학원도 다니고...강의도 듣고, 개인레슨도 받고 했었는데...저는 말에 소질이 없었습니다...
음?...갑작스럽게 공인중개사 공부를 했어요. 1차 합격하고 2차는 안봤어요. 아부지가 씨알데기 없는 짓 하지말고 니 하는 거나 잘하라고 쿠사리주셔서.. 맘을 고쳐먹었죠.(안그래도 공법공부 하기 싫었는데 앗싸..)
하지만 1차 과목에 민법총론과 부동산법이 있는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특히 민법총론을 공부하다보면 아..........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 상식과 굉장히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느끼게 돼요. 다들 시간나시면 한번쯤은 공부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계약관계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내용들이 너무 많거든요. 혹시 2차까지 자신있으면 따놓으시면 더욱 좋을 것도 같고...
7 habit, 크리스토퍼, 피닉스, CS교육 등등... 영업뛸 때 오지게 리더쉽교육을 받았어요. 심지어 감기걸린 것도 긍정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대. 미쳐부러..... 확실히 사람은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다같이 막 기합넣고 구호외치고 나는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면 휩쓸리거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약간 다단계 느낌이기도 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고객님들에게 매번 개털리고도 다시 웃으면서 긍정긍정!!! 화이팅!!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약간...내 영혼의 몰핀?...느낌
공인중개사 공부하면서 '돈의 흐름' 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어요. 그 와중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다룬 빅쇼트랄지, 인사이드 잡, 마진콜등을 찾아보게 되면서 개소름을 느꼈죠. 일단 크리스챤 베일 연기가 미쳤거든요. 그 후로 세계경제가 어찌어찌 돌아가게 되는지 찾아보게 되었어욤. 엔화는 어떻게 달러돌려막기의 수단이 되는지, 금리정책이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자원전쟁은 실체화 될 것인지 등등...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가득하더군요.
이건 저희 아부지 영향이 커요. 아부지가 망하시기 전에는 증권회사에 다니셨던 터라, 뭣도 모르는 초딩이지만 매일 아침 MBN을 보면서 다우와 나스닥, S&P지수를 아버지께 보고해야 했거든용.. 그 땐 그게 뭔지도 몰랐는데... 이제 알겠움.
29살때는 청소년센터 활동진로팀에서 일했었어요. 덕분에 방송대 청소년교육과에서 열심히 공부도 했답니당. 전 대학교를 1학년 다니다가 때려쳐부렀기 때문이죠. 하지만..공부를 하면 할수록 현실과의 괴리와 슬픔이 커져만 갔어요. 열정은 폭발하는데 현실에는 제도와 절차라는 것이 있었으니까요.
5년을 교육계에서 열폭하며 지내다가..결국 하얗게 불타선 고갤 숙이고 뒤돌아서고 말았어요. 못해먹겄다...하고 손 털고 나온 것이죠. 그 이후로 본격 애프터모멘트가 시작되었답니다. 디자인공부를 우르르 해보았어요. 처음엔 핀터레스트를 겁나 베끼고, 미술사를 공부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이론서들을 사서 달달 외우기 시작했어요. 그 땐 무슨 책이 좋은 지 몰라서 "디자인관련 서가에 있는 책을 다 읽어불자!!!" 라는 목표로 공부했었어요. 물론 수백권을 다 읽진 못했지만... 되는 대로 마구 읽어댔던 건 후에 꽤나 도움이 되었어요.
툴도 책으로 공부해 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툴은 그냥 누군가에게 탈탈 털리면서 배우는 편이 효율이 높아욤.
지나고 보니 이래저래 잡다한 것들을 뒤적뒤적하며 살아왔네요. 사실 뭔갈 깊이 공부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하나하나 파고들 때 심하게 집중하는 스타일이라..중고등학교 때 성적은 죄다 말아먹었구요. 그렇다고 그 때 공부한 것들이 지금 뭐 인생에 도움이 되냐..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에요. 에이즈바이러스에 대해 달달 외우고 다니는게 뭔 도움이 되겠어요. 그냥 뭐랄까 지적허영심을 채우는 달콤케익같은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확실히 이런 건 있더라구요. 무언가를 공부할 때 어떻게 어떤 순서로 파고들어야 할 지.. 대강 알 것 같아요. 그냥 방법적인 것만 본능적으로 체화된 느낌이랄까요..?(근데 문젠 공부를 안함)
그러나.... 혹시 교과목을 공부하셔야 되는 분들이라면 수능 또는 자격증 성적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 쓸데없는 거 공부하지 말고..
끝. 앙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