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의식이 있었다. 그 의식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자유를 말했다. 그 목소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원했다. 그렇게 또 다른 의식이 탄생했다. 새롭게 태어난 의식은 태초의 의식을 마주했다. 아담은 그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아담의 의식으로부터 생성되고 아담의 의식에 고착되던 그 새로운 목소리는 태초의 목소리와 함께 화음을 만들어냈다. 어른의 목소리와 어린이의 목소리는 아름답게 어우러져 에덴을 가득히 채웠다.
잠시 이중창을 멈추었을 때 어린이는 독창에 대한 유혹을 받았다. 혼자 부르는 것이 더 돋보일 것이다. 욕망은 어린이를 사로 잡았고 욕망의 목소리가 어린이의 목소리를 대신하였다. 어린이의 노래는 어른의 귀를 아프게 했다. 그렇게 어린이는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욕망의 목소리를 의식에서 쫓아내기 전까지 어린이는 목소리를 되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자신의 목소리를 회복하기 전까지 이중창을 다시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어린이의 의식에는 욕망의 고성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중에도 마음 속은 항상 시끄러웠다. 목소리를 잃었기에 욕망의 고성에 어떤 이견도 낼 수 없었다. 굴종 뿐이었다. 그렇게 어린이는 나이를 먹어갔다. 모든 이들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의식 속의 고성의 노예인 채로 그렇게 죽었다. 여기서 자유롭게 되는 방법을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잃은 채 태어나는 자녀들은 욕망의 고성을 자신들의 목소리로 알고 살아갔다.
태초의 목소리는 합창을 원하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다. 태초의 의식은 아담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그리워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욕망의 고성에 억눌린 의식들의 들리지 않는 신음 뿐이었다. 욕망의 고성은 어른의 귀를 아프게 했지만 의식들의 들리지 않는 신음은 어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픔을 견디지 못한 태초의 의식은 신음하기 시작했다. 태초의 목소리는 의식의 신음을 악보 삼아 노래하기 시작했다. 슬픔의 노래, 그리움의 노래,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때 자유를 말했던 그 목소리는 속박에 대하여 아프게 노래했다. 선율이 하염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독창은 쉬이 합창이 되지 않았다.
합창이 되지 못하여 갈 길을 잃었던 기천년의 독창이 한 아이 안에 담기게 되었다. 아담의 모든 자녀들은 목소리를 잃은 채 태어났지만 이 아이의 의식은 목소리를 갖추고 태어난 것이다. 이 아이가 무엇을 말하든 그것은 이 아이의 것이었다. 태초의 목소리와 닮았지만 태초의 목소리와 달랐다. 태초의 의식은 기뻤다. 오랜만에 듣는 타인의 목소리였다. 독창은 이내 이중창이 되었고, 에덴에서 들리던 어른과 어린이의 노래와 같은 노래가 새롭게 울렸다.
이 새로운 이중창은 어린이들을 매료시켰다. 둘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룰 때면 욕망의 고성이 어린이들의 의식에서 잠시나마 사라졌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의식의 고요였다. 그 고요를 노래가 채우면 따라 부르고 싶어졌다. 소리를 내는 것이 두려웠지만 용기를 내어보았다. 목소리가 나왔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그들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었지만 시끄러운 욕망의 고성보다 훨씬 편안하게 들렸다.
이중창은 이내 합창이 되었다. 너도 나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러나 합창의 혼돈을 두려워한 한 무리의 어린이들은 결코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어린이들이 내는 목소리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욕망의 고성이 시키는대로 합창단에 소리쳤다. 시끄럽다. 조용해라. 다시 찾아온 욕망의 외침에 합창에 참여하던 어린이들은 하나둘씩 입을 다물었다. 다시 목소리를 잃었다. 빈 의식의 무대에 다시 선 것은 욕망이었다.
이렇게 합창은 다시 이중창이 되었다. 단원을 잃었지만 청중을 잃지 않은 어른과 아이는 노래를 그치지 않았다. 소리라고는 고성 밖에 모르는 욕망은 어린이들을 시켜 노래하는 그 아이를 죽였다. 아이는 노래를 그쳤고 어른의 노래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함께 부르지는 못했지만 듣기를 좋아했던 어린이들은 아이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다. 그렇게 세상이 끝난 듯 몇 일이 지났다.
아이는 죽었지만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가사를 잠시 잊었다가 다시 기억이 난 듯, 아이의 무덤으로부터 노래가 흘러나왔다. 살아있을 때는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죽어서는 노래가 되었다. 노래가 된 아이는 영원히 살아있다. 노래를 그리워하던 어린이들은 바람 결에 들리는 소리를 통해 노래가 된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바람이 된 아이는 어린이들에게 입을 맞췄고 아이에게 입을 맞춘 어린이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되찾게 되었다. 입을 맞춘 어린이들은 다시는 욕망의 고성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욕망의 고성이 들릴 때마다 입맞춘 기억으로 다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노래가 된 아이는 그렇게 중창을 이뤘고 합창을 이뤘다. 합창은 우주로 다시 꽃피게 했다.
태초의 의식은 기뻤다. 얼마나 듣기 원했던 합창인가. 어른은 목소리를 내어 그 합창에 동참했다. 노래가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