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정,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다. 함정에 빠졌다.
나는 먹었으면 싼다. 책도 마찬가지다. 읽었으면 쓴다. 브런치, 블로그, 유튜브에 서평을 올린다. 그래야 발 뻗고 잘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는 얘기가 다르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흥민이 월드클래스 아닙니다."의 주인공인 손웅정 감독이 썼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축구선수 손흥민이 누군지 알 것이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럼 손웅정 감독과 관련한 최근의 사건도 접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이런 상태다
1. '그 논란' 있기 전에 책 읽음
2. 서평 쓰려고 개요 적고 나니, '그 논란' 터짐
3. 도저히 서평 발행을 못 하겠음ㅠㅠ
나는 초등교사다. 아동 학대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우리 업계에서 아동 학대는 금기어 중에 금기어다. 이거랑 엮이는 순간 나락행 티켓 예약이다. 그런데 아동 학대 혐의에 엮인 사람의 책 리뷰를 하겠다고? 간도 크다.
가정 1) 내가 이 책을 조금이라도 호의적으로 리뷰할 경우?
=> 초등교사가 감히! 아동 학대 혐의 있는 사람의 편을 들어? 너도 아동 학대범이지?!
가정 2) 내가 이 책을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리뷰할 경우?
=> 교육자가 '무죄 추정의 원칙'도 모르나? 당사자도 아니면서 언론과 대중의 의견에 휩쓸려? 나중에 혐의 없는 걸로 밝혀지면 어쩔래?
이런 상황 왠지 익숙하다. 내가 올해 초에 겪었던 사건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1. 여느 때처럼 책 읽고 리뷰함
2. 그런데 그 책의 저자가 논란의 중심에 서버림
3. 내 리뷰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의 파도를 탐
4. 15000명 정도 내 영상을 봄
(평소 내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10~20 정도임)
5. 평생 먹을 욕 그때 다 먹음
나는 그 저자를 무작정 편들지도, 까지도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내 잘못은 딱 하나였다. '논란이 있는 저자의 책을 리뷰한 죄' 말이다. 나는 그저 대중의 죽창을 받아들여야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손웅정 감독의 케이스는 달랐다. 이건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논란이 먼저였고 내 후기가 나중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영원히 후기를 발행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책 제목이 나를 다시 쳐다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책의 서평을 발행하기로. 욕을 먹든 말든 상관없다. 그래야 내 루틴을 지킬 수 있다. 먹었으면 싸야 하고, 읽었으면 써야 한다. 그게 내 철칙이다. 그래야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바탕화면을 떠올려 보자. 이 녀석은 조금이라도 방치하면 어느새 아이콘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버릴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중요한 파일과 잡동사니 파일이 섞인다.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컴퓨터 속도가 느려진다. 새 컴퓨터를 사고 싶어 진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다. 뇌에는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입력된다. 걔네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바퀴벌레처럼 뇌 곳곳으로 숨어든다. 알게 모르게 우리 뇌 용량을 잡아먹는다는 거다.
'오늘 점심 뭐 먹지?'
=> 빨리 메뉴를 정해서 버려야 한다.
'친구 결혼식 토요일이었던가?'
=> 모바일 청첩장 다시 확인하고 캘린더에 박아놔야 한다.
점심 메뉴, 주말 일정 같은 정보는 가볍다. 그런데도 우리 뇌를 괴롭힌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책 한 권은 어떻겠는가? 정리하지 않으면 뇌가 터질 거다. 그래서 나는 서평을 쓴다. 뇌를 보호하기 위해서.
지금도 망설여진다. 이 서평 발행하기 싫다. 손웅정 감독의 책을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논란의 소용돌이에 같이 빨려 들고 싶지 않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원칙은 원칙이다. 먹었으면 싸야 한다. 읽었으면 써야 한다. 그게 버리는 거다. 그래야 새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읽고 쓰고 버리고....
그냥 욕먹겠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