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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돋보기 이지금 May 31. 2019

설거지하는 남자

가사노동 분배의 딜레마

집안 일을 하는데는 ‘그림자 노동’이 필요하다.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일,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다 나르는 일, 재료를 씻고 다듬어 요리하는 일, 헝클어진 식탁 위를 정돈하는 일, 청소기 돌리는 일, 쓰레기 배출하기 등 비로소 원상의 상태로 돌아오기 위한 일들이다.


남편은 주로 설거지를 담당하고 있다. 치열한 경합 끝에 신혼때부터 줄기차게 담당해온 일이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할 수 있으면서도, 발생하는 변수가 가장 적다. 마무리되는 순간의 개운함도 최고다. 남편과 집안일 업무의 분배과정에서 두뇌싸움에서 진 결과다.


집안일 못하는척 하기의 기술 

능력의 100%를 보여주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처럼, 남편도 가사노동 능력을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마트에서 무조건 비싼 제품 사오기, 사용한 걸레를 내 속옷과 함께 세탁하기, 라면을 끓여 아이와 맛있게 나눠먹는 모습 노출하기 등과 같은 일들이다. 나는 그 고의적 사건들에 의연하기 위해 노력한다.


남편은 사고자 했던 제품이 없을 때 당혹감을 주는 마트보기, 열심히 허리를 반복하며 굽혔다 폈다해야 하는 걸레질, 습득해야 할 사전지식이나 재료의 준비까지 신경써야하는 요리의 귀찮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대학교 1학년때부터 자취를 했으니 경력으로도 가사노동 업력이 나보다 높다. 가사노동에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손해인지 모를리 없다. 신경전과 말싸움을 피하기 위해 설거지라도 묵묵히 하려는 남편을 지지하는 나는 집안일 위임 전쟁에서의 패배자다.


설거지하는 남자를 향한 악마의 속삭임
“어머, 남편이 설거지를 하네!”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은 남편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같은 말을 외쳤다. 부러움이나 칭찬이 담겨있었다. “설거지만 하며 생색내는 나쁜 인간!”이라고 외치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쥔다. 우악스러운 아내가 되지 않는 삶이란 참 많은 수행이 필요하다.


손님들의 칭찬에 길들여진 남편은 언젠가부터는 1층 현관에서 인터폰이 울리면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집에 들어온 친구들이 가장 먼저 보는 모습은 남편이 설거지하는 모습이었다. 그를 깍아내리는 대신 나도 함께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밥의 노동은 당연하거나 미화되는 사회  

시어머님은 ‘아들의 아침을 반드시 차려줄 것’을 결혼하기 전부터 거듭 당부하셨다. "저도 함께 돈벌고 있잖아요? 제 아침 먹을 시간도 없는데요"라는 말대답은 차마 하지 못했다. 간곡함이 묻어있었던 그 말의 역사를 찾느랴 헤맸을 뿐이다.


야근을 하고 있노라면 선배들은 “남편 밥 차려주기 싫어서 퇴근 안하는거 아냐?”고 물었다. 친구들에게 ‘반찬을 사다먹는다’고 말했을땐 팔자좋다는 비아냥 거림을 듣기도 했다. "저희집 밥 문제에 그만 관심을 가져주세요!" 혹은 “밥은 여자가 하는것이 고정값인건가요?”라고 말하는 대신, 짐을 싸 조용히 퇴근하거나 화제를 돌리곤했다.  그것이 우리 문화 안에서는 안부 인사와도 같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기에 .


‘밥’에 깃든 노동을 습관처럼 평생 해온 사람, 사회 맥락에 따라 그 노동을 착취하는 사람, 그 노동이 모성애라 여기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 매일의 밥이 탄생한다. 희생을 미화한다는 의심조차 하지 않는 문화가 때때로 그것을 당연하거나 아름다운 일로 일반화 시켜버리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내 어머니의 집안일 노동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겨왔던가 반성한다. 인정받지 못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세대에 걸쳐 전수받고 경험한 사회 문화적 관습을 깨는 일은 개인만의 투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변한 후에야 문화가 변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설거지하는 남자’를 ‘밥도 잘챙겨먹는 남자’로

‘설거지하는 남자’를 ‘밥도 잘챙겨먹는 남자’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나에게도 어려운 문제이다. 그 방법을 배울 좋은 사례를 경험할 기회도 없었기에 더욱 아득하기만 하다.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 남편을 보면 이상하게 미안해지는 마음을 어찌할바 모르고, 퇴근길에는 동동거리는 발걸음으로 마트에 들리는 스스로의 모습에 놀랄 뿐이다. 사회 문화적 맥락을 가진 밥이 모성애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고 부정할수도 없다.  


“니 밥은 니가 해 먹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되내인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인식을 깨뜨리려면, 합리적이고 세련된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남편에게든 세상에게든 가장 어려운 ‘밥’ 이야기를 할땐 나부터가 예의를 갖춰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남편이 만든 된장찌개와 생선구이를 먹을 수 있는 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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