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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자까 서랍 뿌수기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 혼자 묻고 답하는,

by 빨양c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 혼자 묻고 답하는,

Q. 끝은 무슨 끝이야? 아직 인터뷰 한참 남았구먼? 할 거 다 했지? 그럼 이제 질문 이어가도록 하지. 솔직히 말해봐 작가 선생. 이쯤 되면 그 "어둡지만 밝음" 못쓰겠다고 선언해야 하는 거 아냐? 크크.


A. 아냐. 언젠가는 결말 낼 거예요. 실제로 내 작가 서랍에 결말 작업해 놓은 게 있다구요. 아직 형편없어서 서랍 맨 밑바닥에 꽁꽁 감춰놨지만. 이 질문 이제 그만! 벌써 몇 번째 물어보는 거예요? 가뜩이나 이 인터뷰 올린 지 벌써 한 달도 더 넘어서 독자님들이 지루해하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구요. 다음 질문.


Q. 흠. 뭐. 그럼.. 아! 얼마 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전 결과에 빨양C 작가 없던데, 낙선 소감은?


A. 쉿! 아니아니 Shit 말고 쉿! 그건 노코멘트할래요.


Q. 그건 안돼. 저번에도 말했듯이 넌 작가고, 인터..


A. 하. 그만그만! 알았어요. 라떼꼰대 같으니. 무슨 당선 소감도 아니도 낙선이 소감 따위가 어딨담..

흐음.. 그럼 그날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일단.. 사실 결과 전날 밤인 12.20. 까지 전 담담했어요. 뭐, 알고 있었거든요. 수상자에게는 열흘 전 축하메일이 간다는 걸요. 저는 그 메일을 받지 못했고, 당연히 21일에 나는 없겠구나 싶었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알죠? 내심.. 올해에는 프로세스가 바뀌어서 제발 내 이름이 있길. 간절히 바라는 기도로 간신히 잠들었죠. 다른 작가님들도 그랬을 거야 분명. 헿.

그리고 발표 당일. 아고.. 늦잠 잤어요. 눈을 뜨니 아침 09:20이었고, 약 10분 전에 발표가 났다는 친절하지만 얄미운 브런치 알람.

역시 없었죠.

의외로 담담했어요. 사실, 발표 일주일 전쯤 저 쓰러져서 119에 실려갔었거든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드릴게요. 왜 쓰러졌을까요. 처음이었고, 아직 팔팔 창창한 나이인데 말이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발표일인 오늘까지 생각한 결론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꿈을 꿨고, 그 꿈이 깨졌구나, 깼구나. 깨꼬닥 말고 깼구나. 하는 결론.


마지막으로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걸 쫓았던 기억이 언제더라?

여러분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꿈을 쫓았던 게 언제셨나요?


저는 정확히 10년 전이더라구요.

취업준비생 시절 너무너무 일하고 싶었던 회사에 입사하고 싶었죠. 3년을 준비했고, 냉정하게도 3번의 실패를 맛봤습니다.

그리고 우리네 대부분이 그렇듯, 그때 어찌어찌 마음을 추스르고 살다 보니 10년이 흐른 거죠.

그렇게 흔한 직장인으로 살다 보니 10년의 세월 동안 뭔가를 간절히 바랐던 적이 없이 시간이 흘렀더군요.

그러다 올해, 제 생각엔 10년 만에 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라는 꿈에 제 진심을 가득 담았죠.

그동안 그래도 매 순간 진심으로 썼던 5편의 소설을 응모했어요. 퇴고를 하고, 나름 작품기획서와 표지도 예쁘게 꾸며봤답니다.

좀 보여드려 볼까요?

어떠세요? 반짝반짝하죠? 헿.


진심을 담은 꿈을 꿔서였을까요.

결과를 기다리는 그 긴 밤들 동안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은 꿈을 잔뜩 꾸기도 했답니다.

꿈해몽 검색만 해도 당장 로또사라고 도배하는 그런 꿈들 말이죠.

그래서 뭐, 될 줄 알았어요.


그리고 안 됐죠.


늦잠 잔 발표날 아침 확인한 브런치 수상 결과를 눈앞에 두고, 제가 제일 먼저 뭘 했을까요?

좌절? 낙담? 울기? 애써 태연? 다른 작가님들의 브런치 폭망 기원 찾기?

헤헿.

땡.

정답은,


라면을 끓였습니다.

만두도 두 개나 넣고, 새우도 세 개나 넣었어요. 얼마 전 직접 갈아놓은 국산 다진 마늘 넣고, 청양고추도 두 개나 넣었어요. 고춧가루에 후춧가루에 맛있을 만한 건 다 넣었습니다.

너무 먹고 싶었어요.

사실 지난주 쓰러진 이후로, 술, 라면, 커피, 치토스, 홈런볼(저의 최애 과자랍니다 헿)을 멀리했거든요.

공모전에 떨어졌으니, 그래도 수고한 날 위해 뭔가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면,

그래서 라면을 끓였다면..

저도 좀 특이한 작가이긴 한 거 같긴 하네요.

아니, 작가이긴 할까요.


욕심이 과했을까. 조급함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게 기대했고, 맛있는 걸 다 때려 넣었음에도 면이 설익었어요.

꼬들면이 개취긴 하지만, 너무 꼬들한. (물론 다 먹었죠, 얼마 만에 먹는 라면인데요 헿)


어쩌면 제 글들도 너무 섣불리 끄집어낸 건 아닐까 하는 조금 난해한 철학적 질문이 라면 먹는 동안 살짝 올라오더군요.

네, 무시했습니다. 얼마 만에 먹는 라면인데, 공모전에 떨어진 제 글 때문에 라면까지 좌절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꼬들면을 치우고,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봤습니다.

눈발이 날려, 세상이 하얗더군요. 우리 집 전망이 좀 좋거든요. 논밭view. 보여드리면 좋을 텐데 아쉽네요. 아쉽다곤 하지만 보여드리진 않을 거예요. 헿. 전 내성적인 사람이라 누가 집에 오는 게 싫거든요.


내 마음은 온통 새까맣게, 아니 시커멓게 탔는데, 창밖세상은 이렇게나 새하얗다니.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사람일에 별로 관심이 없죠.


"어떡할까.."

10년 전 3년 동안 실패했던 나는 꿈이 깨어지는 좌절을 어떻게 이겨냈더라.

잘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10년 만에 너무 간절히 꿈을 꾸니, 어떻게 이겨냈는지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그렇게 멍하니 새하얀 창을 지나, 문득 고양이의 야옹 소리를 따라 눈길을 돌리니, 책이 하나 보이더라고요.

집어듭니다.

그리고 시꺼메져 다 시든 내 마음에 꽃들을 향해 무수히 쏟아지는 새하얀 빗방울 같은 문장들이 박힙니다.

그 글은 맨 아래 따로 써드릴게요. 분명 도움 되실 거예요. 특히 이번 공모전에 좌절하신 작가님들이라면 특히. 저한테 감사하실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 마음은 넣어두세요. 부끄러우니까요.

아냐. 고마우시면 하트, 댓글이라도 부탁드려요. 지금 저는 생각보다 687분의 구독자 분들의 응원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요, 비록 50명의 편집자분들의 눈에 들진 못했어도, 제 글을 구독해주시는 687분의 작가, 독자님들의 숨결을 느낍니다.

네 뻥이에요. 숨결까진 아니고, 그래도 눈동자는 조금 느껴집니다.


사실, 공모전 떨어진 걸 직감했을 때, 저는 제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내드리려 했어요.

안녕 주과장, 안녕 김대리, 안녕 고대리, 안녕 축뽁이, 안녕 호랑이,

그리고 지금 일주일째 낙타 일기장 앞 좌절하고 있는 할머니까지..


앞에서도 보셨겠지만,

글은 물론이거니와 브런치북 표지, 작품기획서 그 외 공모전에 관련된 모든 것에 진심이었고, 그 진심이 너무 진심이라, 너무 최선을 다했어서,

더는 미련이 없었거든요.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것 같았구.

그래서 우리 주인공 여러분들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다 가세요. 안녕.

하고 싶었어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바들바들 떤 내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미안합니다.


아, 그래서 고양이가 인도해준 그 책의 문장들을 보고 힘내기로 했구나?

하는 진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책을 보고도 한참을 멍해져 버렸습니다.

꼬들면도, 새하얀 창밖도, 고양이의 그 책도 제 안 어딘가엔 있었지만,


그래서 어쩌라구. 난 실패했는걸이 가득했으니까요.


다음 얘기 궁금하시죠?

그건 다음 기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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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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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또 구독자수 줄어들 거 같으니까(오늘 사라진 2분 누구죠!!? 찾아낼거야! 킁.)


다음얘기는,

제 본업으로 돌아와,

아기를 안았습니다.

네, 저는 육아 중이거든요.


그렇게 멍한 상태로 아기에게 분유를 주고, 재우려 멍하니 안고 있는데,

아기 눈이 별 같더라구요.

음. 아닌가? 왜 별 같다는 문장을 치니 아기가 갑자기 우는 거죠?

아, 다시 얌전히 달래주었습니다.

네, 제가 또 한 육아합니다.


별 같은 아기 눈을 또 멍하니 보고 있는데,

제 글들이 저를 보는 눈빛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저를 그런 별 같은 눈빛으로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들을 봐주시는 우리 독자님분들의 눈빛도.


매 순간 진심으로 대했던 제 글들과, 제 주인공들이 별 같은 아기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그리고 멋진 독자님들까지 이 나약한 작가에게 괜찮다고 토닥여 주시니 어쩌겠어요.

저는 글을 써야겠습니다.


아직 잘은 모르겠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일까.

구독자 수, 조회수, 댓글, 라이킷.. 인기를 얻고 싶어서일까?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걸까.


그래서 그 답을 찾아 지금껏 그래왔듯이 쓰고 또 쓰다 보면,

언젠가는 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지금의 저는 모르는 그 답을 알려줄 날이 오지 않을까요?


끝!



Q. 님 뭐 하심?


A. 왜요! 낙선소감 말하라면서요!!


Q. 아니, 짧게 해야지 이거 너무 길어서 이 질문은 인터뷰로 못쓰겠네 이거 이거. 눈치껏 좀 줄여서 하라고! 당신이 맨날 말하는 그 짧게 하는 게 요즘 MZ트렌드 어쩌고~


A. 쉿쉿! 이번만 좀 봐줘요. 이번 대답엔 제 진심을 12000% 만이천 퍼센트 담았으니까.


Q. 흠흠. 그나저나, 그 고양이가 알려준 그 책엔 뭐라 쓰여있었길래?


A. 아 맞다! 잠깐만요! 보고 쳐야 돼서. 분명 오늘 낙담한 작가님들께 위로가 될 거야. 전 엄청 와닿았거든요.. 어디 보자.. 이런 고양이가 깔고 앉아있네요. 잠시만요!!


페이지는 326쪽.

우리가 실패하는 건 좌절감 때문이 아닙니다.
'조급함' 때문이죠.
좌절감과 싸우는 동안 조급함을 느끼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표 달성에 실패합니다. 우리는 한 지점에서 다름 한 지점으로 가장 빨리 가는 직선을 그리기 위해 조급함과 초조함을 안고 삽니다.


우리가 좌절감, 초조함, 조급함을 극복하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일터에 가서 일을 하고,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단 결심을 한 것은 절대 그 생각을 의심하거나,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타협하지도 말고요.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당신이 일터에 가서 일을 하고,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결심한 것을 바꾸지 않는 것 외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행했기 때문일 겁니다. 다시 말해 집중해야 할 대상이 많아져서 집중을 하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을 맞았기 때문일 겁니다.


명심하세요.
당신의 심플하지만 단단한 루틴과 습관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자세와 걸음걸이를 살펴보며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행운은 여기까지일 겁니다.
발전과 성과가 없다고 해서 자꾸만 자세를 바꾸고, 생각을 고치고, 이것저것 다해보는 사람에겐 좋은 조언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너무 변화무쌍하니까요. 정해진 일정 같은 건 잊어버리세요. 시간은 필요한 만큼 걸릴 겁니다.

요정도.


Q. 엥? 끝이라고? 아니 아니 어떤 책인지 제목은 알려줘야지.


A. 궁금해요? 그건 다음 서랍 뿌수기에서 알려드려야지 헤헿. 메롱. 아, 그리고 마지막 한 문장 더 있다.

제 시커멓게 탄 마음속 꽃들에 비를 내려줘 분홍초록한 꽃밭으로 만들어준 그 문장.


"당신이 찾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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