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동인도 회사에서 1979년 에이리언까지
지난주 토요일, KBS의 "세계는 지금"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체스터 시 이야기를 봤다. 사모펀드가 지역 병원 시스템을 인수하고, 자산을 빼돌리고, 파산 신청을 하고 떠났다. 2,651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고, 75,000명의 환자가 갈 곳을 잃었다. 델라웨어 카운티 유일의 외상센터가 사라졌다. 이 사모펀드의 이름은 Leonard Green & Partners였다. 나는 에이리언을 떠올렸다. 웨이랜드 유타니가 안드로이드 Ash에게 전달한 비밀 명령: "승무원은 소모품이다(Crew Expendable)."체스터 시에서 사모펀드가 한 일도 같은 논리다. 환자와 직원은 소모품이다. 수익을 실현하고 떠나면 그만이다.
이 이야기는 1979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02년 3월 20일, 네덜란드 공화국은 역사상 전례 없는 조직을 만들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약칭 VOC(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다. VOC는 단순한 무역 회사가 아니었다. 네덜란드 의회는 이 회사에 전례 없는 권한을 부여했다. 사병 10,000명과 군함 40척(전성기에는 5만 명 이상). 재판을 열고 죄인을 처형할 권한. 외국 군주와 조약을 체결할 권한. 자체 동전을 주조할 권한. 식민지를 설립하고 통치할 권한.
회사인가, 국가인가. 사실상 둘 다였다. VOC는 "국가 밖의 국가(state outside the state)"였다.
VOC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최초의 증권거래소(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를 만들었고, 최초로 주식을 공개 거래했다. 주식회사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 수천 명의 주주가 회사를 소유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회사의 행동에 직접 책임지지 않는다. 이사회가 결정을 내리지만, 그들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자본은 비인격화된다. 누군가 죽어도 책임질 "얼굴"이 없다. 시스템이 돌아갈 뿐이다. 주주는 "나는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이사회는 "주주의 이익을 대변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경영진은 "이사회의 결정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한다.
VOC의 본질은 1621년 반다 제도에서 드러났다. 반다 제도는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육두구(nutmeg)가 자라는 곳이었다. 육두구는 향신료 중에서도 가장 비쌌다. VOC는 독점을 원했다. 문제는 반다 원주민들이 네덜란드뿐 아니라 영국 상인들에게도 육두구를 팔았다는 것이다. VOC 총독 얀 피터르스존 쿤(Jan Pieterszoon Coen)은 "해결책"을 실행했다.
1621년, VOC 군대는 반다 제도를 침공했다. 약 15,000명의 원주민 중 대부분이 학살되거나 노예로 팔려갔다. 생존자는 1,000명 미만이었다. 쿤은 네덜란드 본국에 이렇게 보고했다: "원주민들은 대부분 기아, 전쟁, 처형으로 죽었다. 이제 육두구 나무를 돌볼 사람이 부족하다."회사의 관점에서 원주민은 비용이었다. 육두구 독점이라는 목표 앞에서, 15,000명의 생명은 장부에 기록될 숫자일 뿐이었다.
쿤은 처벌받았을까? 아니다. 그는 VOC의 영웅이 되었다. 암스테르담에는 20세기까지 그의 동상이 서 있었다.
1637년 튤립 버블 직전, VOC의 가치는 현재 화폐로 환산하면 약 7조 9천억 달러에 달했다. 현재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를 합친 것보다 크다. 1669년, VOC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기업이 되었다. 전성기 기준 상선 150척, 군함 40척, 직원과 사병을 합쳐 50,000명 이상, 원래 투자금의 40%에 달하는 배당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VOC는 1799년에 파산하여 해체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VOC를 "Vergaan Onder Corruptie"라고 불렀다. "부패로 멸망"이라는 뜻이다. 회사 경영진과 직원들이 회사 자산을 빼돌려 사익을 챙기는 것이 만연했다. 식민지 총독들은 본국의 통제 밖에서 개인 무역으로 치부했다. 회사의 자원은 착취되었고, 부채는 쌓였고, 결국 무너졌다.
누군가는 이익을 챙기고 떠났다. 남은 것은 빈 껍데기와 부채였다.
한 역사가는 이렇게 썼다: "좋은 정부는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나쁜 정부조차도 국민을 두려워한다. VOC 치하의 인도네시아에서는 둘 다 없었다." VOC는 400년 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이 보여준 모델 — 회사가 국가의 기능을 대체하고, 이윤을 위해 인간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모델 — 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국 동인도회사도 같은 길을 걸었다. 이 회사는 인도 아대륙 전체를 지배했고, 자체 군대를 운용했으며, 청나라에 아편을 팔아 두 차례의 전쟁(아편전쟁)을 일으켰다. 벵골 대기근(1770년)으로 천만 명이 사망했을 때, 회사 경영진은 세금 징수를 늦추지 않았다.
20세기 중반, 상황이 달라 보이던 시기가 있었다.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 서방 국가들은 자본에 고삐를 채웠다. 미국의 뉴딜, 유럽의 복지국가, 케인스주의 경제학.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고, 노동조합이 힘을 가지며, 부유층에게 높은 세금을 매기는 시대였다. 1950년대 미국에서 최고 소득세율은 91%였다.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했고,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 척했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의 본성이 바뀐 것이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억제된 것이었다.
1930년대 대공황은 자본주의 자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소련이라는 대안이 존재했다. 노동조합은 역사상 가장 강력했다. 자본가 계급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양보하거나, 모든 것을 잃거나. 그들은 양보를 선택했다. 높은 세금, 노조 인정, 복지 확대.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계급 타협(class compromise)" — 좌파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우파는 국가 개입을 받아들이는 잠정적 합의 — 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타협은 이윤을 갉아먹었다. 완전고용은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였고, 임금이 오르자 기업 이윤은 줄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선진국들의 기업 이윤율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3년, 석유파동이 터졌다. 석유 가격이 4배로 뛰었다. 생산 비용이 치솟았다. 동시에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케인스 이론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불황은 동시에 올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둘은 함께 왔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혼란 속에서, 밀턴 프리드먼 같은 통화주의자들이 기회를 잡았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정부가 문제다. 시장에 맡겨라. 자본가 계급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이윤 감소를 감수하며 타협을 유지하거나, 타협을 파기하고 노동자의 몫을 줄이거나. 그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자본가 계급의 복수"라고 부른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전복되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권력을 잡았다. 피노체트 정권은 단순한 군사 독재가 아니었다. 이 정권은 밀턴 프리드먼과 그의 제자들("시카고 보이스")의 이론을 실험하는 장이 되었다. 공공서비스 민영화, 규제 완화, 세금 인하, 노동조합 탄압. 경제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신자유주의의 최초의 국가 형태"라고 부른 것이 칠레에서 탄생했다.
감옥과 고문실에서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면서,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은 칠레 경제를 자유 시장의 실험실로 바꾸었다.
피노체트 17년(1973-1990)의 성적표. 연평균 GDP 성장률 1.7%, 인구 증가율보다 낮았다. 평균 실업률 18%, 지난 60년간 최고였다. 평균 인플레이션 79.9%,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1988년 빈곤율 48%, 인구 절반이 빈곤선 이하에 있었다. 1982년에는 시카고 보이스의 "자유 시장"이 스스로 붕괴했다. 규제 없는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GDP가 15% 폭락하고 실업률이 30%에 달했다. 정부는 파산한 은행들을 국유화해야 했다. "자유 시장"은 실패하자 국가에 구제를 요청했다. 이것은 2008년의 예행연습이었다.
소위 "칠레의 기적"은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왔다. 1990년 민주화 이후, 정부가 세금을 올리고 사회 지출을 늘렸을 때 비로소 GDP 성장률은 7.1%로 뛰었고 빈곤율은 급락했다. 하지만 불평등은 남았다. 오늘날 칠레는 OECD 국가 중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다. 노동자의 절반은 연 $6,320도 벌지 못한다.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28%를 가져간다. 평균 연금은 월 $286, 80%의 은퇴자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연금을 받는다.
칠레 실험은 실패했는가? 답은 누구에게 묻느냐에 달려 있다.
시카고 보이스와 칠레 자본가들에게, 실험은 성공이었다. 노조는 파괴되었고, 규제는 철폐되었고, 국영기업은 측근들에게 헐값에 넘어갔고, 부는 상위 1%에 집중되었다. 시카고 보이 Rolf Lüders는 불평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건 질투 문제(an envy problem)." 그의 관점에서는 진심이었다. 불평등은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목표에 포함되지 않았으니까. 칠레 시민들에게, 실험은 재앙이었다. 48%가 빈곤에 빠졌고, 연금은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2019년에 10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의 구호 중 하나: "칠레는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다. 칠레가 신자유주의의 무덤이 될 것이다."
"실패"라는 단어 자체가 기만적이다. 시스템은 설계된 대로 작동했다. 다만 누구를 위해 설계되었느냐가 달랐을 뿐이다.
칠레 실험은 주변부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1979년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가, 1981년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신자유주의는 세계 경제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대처의 선언: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약자로 TINA.
레이건의 취임 연설: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가 문제다."
이후 40년간 공공서비스가 민영화되었고(철도, 통신, 수도, 전기, 교도소, 의료), 기업 규제가 완화되었고, 법인세와 고소득층 세율이 인하되었고, 노조가 약화되었고, 금융 파생상품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밀턴 프리드먼은 1970년 뉴욕타임스에 썼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내부 모순은 2008년 금융위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수십 년간 규제 완화와 "정부 개입 최소화"를 외치던 금융기관들이, 위기가 닥치자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미국 정부는 7,000억 달러를 투입해 은행들을 살렸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논리였다.
그리스 경제학자이자 전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표현: "신자유주의는 국가 개입을 경멸한다고 주장하지만, 시스템이 붕괴할 때마다 국가 권력으로 구제받는다."이윤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된다. 기업이 돈을 벌 때는 주주의 것이고, 기업이 망할 때는 납세자의 부담이다.
에이리언의 진정한 빌런은 외계 생물이 아니다. 웨이랜드 유타니라는 회사다. 회사는 승무원들에게 외계 생물의 존재를 숨겼다. 외계 생물을 무기로 개발하기 위해 승무원들을 미끼로 사용했다. 안드로이드 Ash에게 주어진 비밀 명령 "특별 명령 937"은 이렇게 끝난다: "승무원은 소모품이다. 기타 우선순위는 무시할 것."
3년 후인 1982년, 리들리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를 내놓는다. 타이렐 코퍼레이션은 복제인간(Replicant)을 제조한다. 이들은 의식이 있고, 감정이 있으며,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타이렐은 그들에게 4년의 수명 제한을 걸어두었다. 노예 반란을 막기 위해서다. 타이렐의 슬로건 "More Human Than Human"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를 만들어 놓고, 4년 만에 죽게 만든다.
1979년이라는 시점은 우연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 중 군수산업의 이윤 추구가 폭로된 직후였다. 1970년대 내내 환경오염 스캔들이 터졌고, 1973년 석유파동에서 석유회사들의 담합과 폭리가 드러났고,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가 터졌다. 대중의 기업 불신이 정점에 달한 시기에, 같은 해 마거릿 대처가 영국 총리로 취임했다.
1984년, 윌리엄 깁슨은 소설 뉴로맨서를 발표한다. 사이버펑크 장르의 탄생이다. "하이테크, 로우라이프(High Tech, Low Life)." 기술은 고도로 발전했지만, 사회는 황폐하다. 그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메가코프(Megacorporation)다. 뉴로맨서의 자이바츠, 테시에-애쉬풀. 사이버펑크 2020/2077의 아라사카, 밀리테크. 섀도우런의 수십 개 메가코프들. 이 세계들에서 국가는 껍데기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깁슨은 1984년에 VOC의 모델이 미래로 돌아올 것을 그렸다.
에이리언(1979)의 Weyland-Yutani는 승무원을 외계 생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블레이드 러너(1982)의 Tyrell Corporation은 복제인간을 노예화하고 4년 수명 제한을 걸었다. 로보캅(1987)의 OCP는 도시 전체와 경찰을 민영화했다. 터미네이터(1984)의 Cyberdyne Systems는 Skynet을 개발해 인류 멸망을 초래했다. 토탈 리콜(1990)의 Cohaagen은 화성 식민지 공기를 독점했다. 쥬라기 공원(1993)의 InGen은 안전을 무시하고 공룡을 상업화했다. 레지던트 이블(1996)의 Umbrella Corporation은 생물무기를 개발해 좀비 사태를 일으켰다. 월-E(2008)의 Buy n Large는 소비주의로 지구를 파괴한 뒤 인류를 방치했다. 아바타(2009)의 RDA는 원주민을 학살하며 자원을 채굴했다. 엘리시움(2013)의 Armadyne은 빈민을 지구에 버리고 부자만 우주로 보냈다.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의 Wallace Corporation은 Tyrell을 인수한 뒤 식량 공급을 독점했다. 세버런스(2022)의 Lumon Industries는 직원의 기억을 분리해 완전히 통제했다. 에이리언: 어스(2025)에서는 5개 메가코프가 지구를 분할 통치한다.
이 목록에서 패턴이 보인다. 1970-80년대에는 환경파괴와 군수산업과 노동 착취. 1990년대에는 생명공학과 생명의 상품화. 2000년대에는 소비주의와 기후 위기. 2010년대 이후에는 감시, 데이터, 기억과 정체성의 통제. SF는 각 시대 자본주의의 첨단을 보고 미래로 투사한다.
그리고 기업은 서사적으로 독특한 빌런이다. 얼굴이 없다. 개인 빌런은 동기와 배경이 있고, 때로는 감정이입이 되지만, 기업은 시스템이다. "왜 악한가?"라는 질문에 "이윤"이라고 답하면 끝이다. 모두가 이해한다. 그리고 죽지 않는다. CEO가 바뀌어도 계속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를 살펴보았다. VOC에서 시작해 신자유주의를 거쳐 SF의 악덕 기업 계보까지.
하지만 이것은 과거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편에서는 현실로 돌아온다. 체스터 시의 병원에서, 토이저러스의 창고에서, 사모펀드가 인수한 요양원에서,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12년 소송에서 — SF의 예언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지 살펴본다.
202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