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인간을 배신한 적은 없다

인류가 설 자리를 찾아서

by 성해밀

AI는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로봇은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

AGI는 결국 인간을 필요 없게 만들 것이다.


기술 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비관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위의 모든 말에는 공통된 정서가 있다. 기술이 인간을 결국 해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이 두려워했던만큼 기술이 인류에게 해가 된 적은 없다.


기술은 늘 어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을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역할이 바뀌는 과정이었다.


산업혁명 당시, 기계가 등장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 두려워했다.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류는 더 이상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단순 반복 노동에 쓰지 않아도 되는 길로 들어섰다. 기술이 인간의 역할을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할을 바꿔 놓은 것이다.


자동차의 등장은 마부의 일자리를 줄였다. 하지만 운전자, 정비사, 설계자, 도로를 만드는 사람들을 탄생시켰다. 인터넷으로 수많은 오프라인 직업이 사라졌지만, 크리에이터, 개발자, 웹 디자이너 등 수많은 온라인 직업들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기술의 발전은 역사 속에서 늘 이렇게 작동해왔다. 누군가에게는 위기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였다. AGI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 기술은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사고 영역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은 공포를 느낀다.


“생각하는 것마저 기계가 대신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앞으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질문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기술이 인간을 배신했는가? 아니면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기계가 잘하는 영역’에만 묶어 두었는가.


계산, 기억, 속도, 정확성. 이 모든 것은 오래전부터 기계가 인간보다 잘해온 영역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은 의미를 묻고, 방향을 정하고, 선택의 책임을 지는 존재로 자리를 옮겨왔다.


AG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AI는 답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는 최적의 선택지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다.


기술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묻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이제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


어쩌면 AGI는 인간을 쫓아내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더 인간적인 자리로 이동하도록 밀어붙이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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